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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 Oct 30. 2022

열 번째 레터. 시야를 기억해

2022년 7월 25일 (월)

기억하고 싶은 것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은 참으로 평범했습니다. 가장 런던스럽게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부터 계획 없이 다니다 헛짓 몇 번 하고 행복한 경험도 몇 번 해서 대충 '좋은 하루였다' 퉁치는 변치 않는 제 여행 방식까지 다요.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을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찜해둔 근처 가게가 월요일이라 문 닫았더라고요. 쿨하게 그제 그 그저께 갔던 똑같은 카페에 세 번째 방문해서 어제의 레터를 마무리했어요. 첫날엔 밥 먹기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라고 고백했는데, 저 오늘 런던에서 스테이크 집 예약해서 혼자 다녀왔습니다. '플랫 아이언'이라고 런던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가성비 좋은 스테이크 집이고요. 가게 분위기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아서 혼자 오는 분들 많이 있더라구요. 일단 아주 맛있었고, 혼밥 레벨이 이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여행 처음 하루 이틀까지는 끼니 챙기기가 두근거리고 시간을 어찌 다뤄야 할지 우왕좌왕했고요. 며칠 지나고 나서야 적응이 되어 즐기기 시작했어요, 일주일 넘어가니까 이제 외국이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느껴서 노래 부르고 밥 먹으면서 리듬 타고 약간 제 멋대로 하는 중입니다. 독립하고 나와 산지 1년이 훌쩍 넘어 혼자 뭔가 하는 거 당연히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이제야 제가 정말 혼자가 되는 법을 배웠단 생각이 듭니다. 헨젤과 그레텔이 왔던 길에 빵 조각을 흘린 것처럼 저는 제가 지나는 길에 제 겁을 조금씩 떼어 내려놓으며 다니고 있어요. 하루하루 지나며 세상에 겁먹었던 부분이 줄고 있는 기분입니다.  


 런던 사람들은 베를리너처럼 아무 데나 막 앉아 쉬고 그러진 않는 듯해요. 그래서 애매하게 붕 뜬 시간에 사람이 북적이는 템즈 강변을 걷고 걸어 빈 벤치를 찾아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 왜 이리 하루가 평범하고 잔잔하게 흐르지 생각하다 주변을 두리번 둘러보는데 제가 볼 수 있는 시야가 참 넓더라고요. 탁 트여서 왼쪽엔 꼭 빅토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은 옛 건물이 있고 오른쪽엔 매끈한 현대식 건물이 쭉 있고 가운데는 공사 중인 건물들과 나무 숲, 강에는 조정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바로 앞에는 계속 여행자들이 지나갔고요. 제 작은 두 눈으로 한 번에 볼 수 있는 게 이렇게 많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서 '평범'하다 느끼다니. 문득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는 다시 제 방에서 커다란 모니터 두 대만을 빤히 보다 밤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순간의 넓은 시야가 귀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겨우 모니터 두 대와 엑셀의 빽빽한 칸만을 내내 보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야도 자꾸 그만하게 쪼그라들곤 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 보이는 템즈 강변의 시야를 잊지 않기 위해서 다급하게 메모를 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그렸어요. 세상이 이렇게 크다는 걸, 내 눈으로 이렇게 넓은 걸 볼 수 있단 걸 잊지 말자구요. 아, 저는 지금 여행지를 유토피아로 두고 제 일상을 그 반대에 두려는 게 아닙니다. 일상을 사는 중에도 넓고 깊어진 제 안의 세계를 유지하고 싶어 이 장면을 세기는 겁니다. 미래의 저에게 힌트를 남기는 거죠. 세상이 좁게 보일 때 수첩을 뒤져 정답을 찾으라고요. 저는 모니터를 보며 골몰하는 저도 좋아하며, 이 여행이 저의 평범한 일상을 괴롭게 하는 잘못된 천국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정확히 기록을 했어요. '런던이 짱이다', '여행 다니게 퇴사하자'가 아니라 '내 세상은 여전히 넓다, 나는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고요.          


맘마미아의 정신


 뮤지컬 좋아하는 사람이 런던에 오면 최대한 많은 작품을 보고 가잖아요. 저도 하나쯤 더 보고 가고 싶더라고요. 런던엔 '데이 시트'라고 해서 당일까지 팔리지 않은 좌석을 아주 싸게 내놓는 문화가 있는데요. 이게 아침 일찍 각 극장에 가서 줄을 서서 사는 식인데, 요즘엔 어플로도 데이 시트를 구할 수 있다더라고요. 10시에 어떤 버튼 눌러보면 된다 해서 기억하고 잤죠. 근데 제가 멍을 좀 때리다 10시 8분에 눌러봤는데 그 사이에 다 팔렸더라고요. 이렇게 착실하게 정가 요정으로 살기도 힘들 텐데요.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취소표를 기다리기엔 마지막 날이 막연해지는 게 싫어 조금 비싼 돈을 내서 좌석을 구했습니다. Novello Theatre에서 하는 <맘마미아> 공연의 N열 9번 자리였습니다. 

 저는 이 노벨로 극장도 와봤지만 와 본 적 없습니다. 세븐 시스터즈와 마찬가지로 문 앞까지 와서 들어가 보지는 못한 곳이거든요. 친구랑 데이 시트 구한다고 아침 일찍 달려갔는데 런던의 많은 뮤지컬 극장들이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는 것만 쏙 몰랐어요. 굳게 닫혀 싸했던 노벨로 극장이 오늘은 북적북적 저를 맞아줬습니다.(이쯤 되니 조금은 여행에서도 철저해질 필요가 있어 보이는...) <맘마미아>는 한국에서 중학교 때 본 적이 있는데요. 노래는 익숙한데 한국어로 번역된 가사가 너무나 어색하게 들려서 기억이 좋지 않았어요. 무대 장치도 별게 없고 그리스 식 건물을 상징하는 둥글고 흰 벽을 뒤집었다 조금 돌렸다 하면서 이야기가 다 전개되거든요. 재미없던 뮤지컬이지만 제가 맘마미아 아바 노래를 정말 좋아해서 하나 더 봐야지 할 때 이게 가장 끌리더라고요. 전에 문 앞까지 와서 못 봤던 것도 떠오르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재밌게 봤고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세븐 시스터즈와 맘마미아, 어쩌다 보니 제가 과거에 제대로 하지 못해서 '망쳤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경험을 이번에 다시 시도하고 곱게 마무리하는 여행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이렇게 다시 고칠 기회가 있다면 인생에서 뭔가를 크게 망치는 일은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저는 게으르게 굴면 그 시간이 저주가 되어 기회를 놓치고 순식간에 인생을 망쳐버릴 거라는 이상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요. 정신줄을 줄다리기할 때처럼 팽팽하게 성실하게 잡고 있지 않으면 꽝 넘어지거나 줄줄 끌려갈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랄까요. 그 감각은 고3 때 느꼈던 이후로 사라지지 않는 것인데요. 고3이 되고 한참 공부하기 싫어서 평소엔 열심히 보내던 야자 시간에 내내 엎드려 자거나 해리포터를 돌려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내신에 들어가는 마지막 시험이 며칠 앞으로 확 다가 온 거예요. 제 머리엔 아무것도 안 들어왔는데. 그대로 인생이 망하는 듯한 '큰일 났다!'는 맘이 들어 한 일주일 중식, 석식 다 쫄쫄 굶고 다리를 달달 떨며 공부했었어요. 그 감각이 얼마나 찌릿하고 생생했는지 이후에도 기회를 놓치고 불행한 날이 오면 직전에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낸 날을 원인으로 삿대질하고 원망한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큰일'이라고 할만한 것은 그리 자주 있지 않더군요. 행운이 저를 지켜주어 가능했던 복 받은 소리일까 조심스럽지만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까지 겁먹으면서 살 필요 없다는 거죠. 망했다 싶으면 다시 해볼 수 있는 것도 많구요. 삶이 영화가 아니니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실수 따위는 그리 자주 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저는 이걸 '맘마미아의 정신'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아쉽고 망한 거 같을 때 언제든 다시 해보면 된다는 마음이자 겁먹을 필요 없다는 대장부의 정신입니다.  


댄싱퀸과 워털루 


 뮤지컬은 소피의 'I have a Dream'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낭랑한 피아노 반주부터 세션 하나하나 악기 소리까지 너무 익숙해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4년 전 한국에 돌아가 가장 처음 본 영화가 <맘마미아 2> 였더라고요. 제가 그 영화에 푹 빠져서 사운드 트랙을 몇 달 동안 내내 듣고 다녔던 게 퍼뜩 기억이 났어요. 대학 4학년 때 자신감이 필요하면 치트키로 '댄싱 퀸' 들으면서 '유 아 더 댄싱 퀀~! 영 앤 스윗 온!리! 세븐틴~!' 하면서 걸으면 '내가 제일 잘 나가' 만큼이나 효과가 좋고 긍정이 채워졌거든요. 정말 그 노래만 무한 반복으로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맘마미아>는 제게 크게 의미 없는 극이다 했는데 아니었네요. 제가 따로 의식적으로 의미 부여하지 않아도 조각조각 의미 있는 것도 있나 봐요.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듭니다. 


 노벨로 극장은 생각보다 되게 조그맣고 고전적인 느낌이에요. 들어갈 때 어라 무대가 왜 이렇게 작나 했는데 큰 무대 장치 없이 꽉 찬 느낌을 내기에 딱 적당한 크기였더라고요. 중학생 때 본 극장은 무대가 오리지널 극장에 비해 많이 커서 더 허전했나 봐요. 내내 꽉 채워지는 무대와 익숙한 노래 반주에 박수로 장단을 맞추는 관객들. 생소하지만 흥겨운 분위기. 맘마미아는 정말 참여형 쇼 같고 콘서트 같았어요. 시작 직전 안내 방송으로 '노래 따라 부르고 싶은 거 이해하지만 배우들에게 기회를 주세요.' 해서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반주 나올 때마다 육성이 나와서 입을 틀어막아야 했습니다. 어쩌면 위키드 보다도 더 시간이 짧게 느껴졌구요. 맘마미아는 마지막 커튼콜에서 인사 다 하고 댄싱 퀸, 워털루를 다시 불러주는데요. 조명을 아예 관객석 쪽으로 쏴서 다 같이 일어나서 막 춤추고 따라 불러요. 이때다 싶어서 흥겹게 춤추고 목 터져라 노래 부르고 왔어요. 하도 많이 들어서 가사가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점프점프 뛰어도 누가 절 아나요. 다 같이 신나서 창피할 것도 없었고요. 뮤지컬로 고조된 마음을 커튼콜에서 그렇게 터트려주니 이 극이 후기가 좋을 수밖에 없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예전 긴 여행 때 제가 '이건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여행이다.'라는 말을 되게 자주 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시기마다 그때만 할 수 있는 여행이 있는 것 같습니다. 4년 전엔 어리고 돈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길가에 소화전만 봐도 신기했고요, 더 많은 나라를 가겠다고 동유럽에서는 1박씩만 해서 짐을 풀자마자 바로 싸가지고 이동하는 식으로 뽈뽈거리고 다녀서 막 포도당 캔디를 먹으며 다녔어요. 지금은 돈은 조금 더 생겼지만 쉽게 피곤하고 살짝 무딘 감수성이 된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동안의 경험 덕에 그때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겹까지 볼 수 있단 걸 압니다. 그동안 만난 사람, 읽었던 책, 본 영화 뮤지컬, 나눴던 대화들이 제 안에 쌓여 전 2018년의 제가 볼 수 없는 걸 보고 깨달아요. 확실히 뭔가 다르지만 또 비슷한 것도 많고, 나름대로 재미있습니다. 타령처럼 말하고 다닌 '젊을 때만 하는 여행'이 있다면 나이 먹어야만 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단 걸 이젠 알게 되었지요. 그러니 젊음이 조금씩 조금씩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진 않습니다.


저는 이제 내일 마지막 도시로 갑니다. 이제 여행의 후반에 들어섰네요. 런던도 미련 없이 잘 인사하겠습니다. 내일 또 만나요 우리!  


*PS. 런던 마지막 날 빨간 수첩은 다 채워졌고요, 저는 런던 느낌이 가득한 새 노트를 샀어요! 


[오늘의 질문] 


- 지금 딱 생각하는 '평범한 하루'는 어떤 건가요?

- 시야가 좁아진다는 걸 느껴본 적 있나요?

- 자신만의 불안한 감각/믿음이 있나요?

- 어떤 때만 할 수 있는 여행이 있다는 거 경험해본 적 있나요? 



RE: [나니의 빨간수첩]  10. 시야를 기억해

2022년 7월 27일 11:46 

- from J


안녕하세요 나현 님! 오늘도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그것도 무료로!)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이번 편지에 적어주신 맘마미아 정신을 읽고 최근에 봤던 과학 관련 영상이 떠올랐어요. 주제는 '사람은 왜 후회를 하는가'였는데요, 과학적으로 인간이 후회를 하는 이유는 '상상'을 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본인이 하지 못한 선택을 했을 때의 상황, 즉 현실로 이뤄지지 않은 선택을 한 본인을 상상하기 때문에 후회를 한다는 거죠. 그럼 과연 동물은 후회를, 그리고 상상을 할까요? 대부분의 동물은 상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일부 고지능을 가진 유인원은 상상을 할 수 있다고 해요. 다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상상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로 제한된다고 해요.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고 본 적도 없는 외계인이나 괴물들을 상상할 수 있는 추상적 상상력이 있지만, 동물들은 본인이 경험한 적이 있는 것만 상상할 수 있는 거죠.(오랑우탄들이 나무 조각으로 장난치거나 아기 달래는 장난을 치거나 이런 모습이 이런 상상력의 발로라고 하네요.) 


이렇게 '또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라는 상상이라는 인간만의 유니크한 능력을 통해 가능한 '후회'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볼까요? 후회를 한다는 것의 전제는, 내가 한 선택이 나의 '자율의지'를 통해 이뤄졌다는 거겠죠. 어차피 내가 한 선택이 자율의지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지는 거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사실 인간이 하는 선택은 자율의지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벤자민 리벳이라는 뇌 과학자가 한 실험을 했는데요. 실험자들에게 버튼을 주고 버튼을 눌러야겠다 느끼는 순간을 확인하게 하고 실제 버튼을 누르게 했습니다. 동시에 전극을 통해 뇌파를 측정했죠. 본래 이 실험은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시간의 갭을 측정하고 싶었던 건데요, 실험 결과엔 그 이상의 인사이트가 있었어요. 실험자들이 '버튼을 눌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기 0.3초 전에 뇌파가 증폭되기 시작한 거예요. 즉, 내가 버튼을 누르려고 하기도 전에 이미 뇌는 버튼을 누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죠.


이 실험을 바탕으로 신경과학자 존 딜런 헤인즈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더 발전된 실험을 기획했어요, 그는 실험자들에게 A와 B 카드를 주고 둘 중 하나의 카드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동시에 MRI 장비를 통해 실험자들의 뇌파를 측정했는데요, 그 결과 실험자가 A, B카드를 선택하기도 전에 어떤 카드를 선택할지 60~80% 알 수 있었다고 해요. 무려 10초 전에 말이에요. 즉 인간은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해서 뇌에 명령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선택은 이미 뇌가 내린 결정을 '인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죠.  


이렇게 인간이 자유의지라고 착각하는 것이, 사실은 영겁의 시간처럼 길고 긴 인간의 진화과정과 생존 과정으로 정립된 뇌의 행동 로직의 부산물일 뿐이라는 생각은 꽤나 체념적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편안함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후회의 감정이 드는 과거의 선택은 거대한 인류의 진화사 한 구석에 미뤄두고, 다시 한번 일어나 또 다른 선택을 하게 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달까요?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때문에 걱정하고 후회하기보다는 선택의 결과를 담대히 받아들이고 그 이후를 맞이할 나를 기다리게 된달까요.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지만 벤자민 리벳과 존 딜런 헤인즈의 실험은 후회가 그득그득한 타입이었던 저라는 사람에게 그런 '안전지대'가 되어줬습니다. 


운명 결정론자였던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나의 것이고 그 인생을 나만의 의지를 갖고 받아들이는 숭고한 노력이 중요하다'라고 몇천 년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쩌면 저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최고의 선택을 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그 선택을 받아들이고 후회라는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인 것 같습니다. 



나니님에게

2022년 7월 28일 02:43 

- from Y


안녕하세요! 

파일첨부가 자꾸 안돼서 오늘은 그냥 메일로만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벌써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군요. 레터를 받은 지도 열흘 가까이 되어가네요. 점점 맛있는 밥을 먹고 즐기는 것도 다채로워지는 나니님을 보니, 마치 제 여행을 하고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레터 안에서 현지인들의 습관 같은 것도 함께 알아가네요. 유럽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매우 궁금했는데, 더 궁금해지네요. 이번 겨울에 조건만 된다면 꼭 가고 싶어요. 저는 남들의 여행일지를 보며 설레하고 여행을 가야겠다는 다짐하는 편인데, 유독 나니님 특유의 감성에 여행이 더 끌리네요. 


9번째 레터의 두 번째 사진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서 수십 번은 본 거 같아요. 사진도 사진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묘사해주셔서 동화같은 거 있죠. 제가 생각하는 유럽 이미지의 사진과 설명이라니, 고전소설 한 편이라도 읽고 싶어졌어요.


반가운 마음에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모순적인 감정들 때문에 곤란하신 거 너무나 공감이 되네요. 하지만 나니님이 행복한 순간에 그 친구분을 떠올리셨다는 사실은 친구분을 틀림없이 기쁘게 할 거 같아요. 어떤 순간도 아니고 함께 했던 순간을 날 좋은 날에 생각해줬다는 거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

작년 이맘때쯤에 같은 반이었던 중학교 친구가 연락이 온 적이 있어요. 8년 만의 연락이었죠. 어딜 가서 무얼 하고 있는데 글쎄, 제 생각이 났더래요. 그저그런 관계의 친구로 지냈기에 연락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하고 있었죠. 작년의 저는 하는 거 족족 실패해서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었을 때였는데, 친구의 연락을 받고 힘이 났었어요. ‘내가 뭐라고 날 기억해줄까’, ‘어쩌다가 내가 생각이 난 걸까’ 하고요.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곧 고마웠답니다. 이후로 꾸준히는 아니더라도 한두 번 만나고 가볍게 연락하고 있어요. 

이젠 새 노트에 더 다양한 기록들이 남았으면 하네요. 그리고 나중에 저도 나니님 한 번 만나 뵈면 주저앉을 거 같아요. 저에게는 이미 대단한 글작가님 이신걸요!


저는 이만 자러 가야겠네요. 늘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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