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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 Oct 30. 2022

열한 번째 레터. 잃어버린 것들

2022년 7월 26일 (화)

잉글리시 오케이?  

 안녕하세요, 저는 이 여행의 마지막 도시 프라하에서 편지를 씁니다. 런던을 떠나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든 생각은 아쉬움도 뭣도 아니고 '영어 잘하고 싶다'였어요. 제가 그동안 집에서 깔짝댄 정도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또 한 번 느껴버렸거든요. 어딜 못 가봐서 아쉬운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저를 반겨주며 한국에 가봤다고 하는 점원과 더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에어비앤비 주인 할머니에게 제대로 감사를 표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랑하는 뮤지컬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걸 넘어 어감과 말맛을 하나하나 느껴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지요. 저에게 있어 영어는 체코 프라하와도 조금 연결이 됩니다.


 전 교환학생을 끝내고 정식 취업은 좀 늦어져도 되니 해외에서 짧게나마 '일'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해외의 한국 문화원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PD에 지원했었고요, 최종 면접에서 아깝게 떨어져서 캐나다 오타와에 갈 기회를 날렸어요. 영어권이니까 '내가 다른 지원자보다 영어를 못해서 그럴까' 자책하며 일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다음 해에는 외교부에서 하는 대사관 인턴에 지원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지만 농림축산부에서 하는 무슨 농경 해외 인턴십, 환경부에서 하는 환경 연구 서포터즈까지 가리지 않고 다 지원해보았어요. 대학 마무리쯤에는 매일 해외 인턴십 게시판을 수십 번씩 새로고침 하던 게 기억나네요.


 두 번째 해에는 다행히 지원한 것들에서 모두 합격을 했습니다. 전 그중 외교부 대사관 인턴십을 제일 가고 싶었는데요. 지원서를 낼 때 지망하는 국가를 적는 칸에 내내 1 지망으로 미국을 적어놨다가, 마지막 5분을 남겨 놓고 2 지망에 적었던 체코와 자리를 바꾸었어요. 영어 면접이 있는데 미국 지원자들은 원어민 수준일 것 같은데 전 그 정도는 아니라 불리할 거란 의심이 들었기 때문에요. 가장 높은 회화 성적을 취득해놓고도 스스로 자신이 없었어요. 또 아무래도 독일에서 체류해봤으니 체코가 유리하겠지 생각했지요. 까 보니 막상 영어 면접은 그리 어렵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프라하와 유럽을 사랑하니까 선택에 후회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인턴십 오티에 가서 보니 미국으로 가는 합격자가 그 당시 같은 학교에서 같은 교양 수업 듣던 분인 거예요. 참 공교롭죠. 그 교양은 막 학기에 들었던 '취업을 위한 글쓰기 실습'이었나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연습하는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 주차에 딱 모의 면접을 했어서 저는 그 합격자 분의 영어 점수나 활동 내역을 다 알고 있었어요. 실제 실력은 다를 수 있지만 제가 가진 영어 성적과 그분의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합격의 기쁨을 느끼는 오리엔테이션에서 저는 제가 스스로를 믿어주지 않았다는 게 너무나 화가 나서 집에 가자마자 샤프가 부러져라 다이어리를 적었어요. 다시는 영어 때문에 주춤거리지 말자고요. 그 강렬한 기분이 여태껏 사라지지도 않고 제게 남았던 건 코로나로 인해 제 파견이 취소되었기 때문이에요. 프라하를 꿈꾸며 휴대폰 메모장에 '다시 유럽에 간다면 하고 싶은 것' 목록을 30개쯤 적어두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지요. 30개국 인턴들이 다 못 간 건 아니고, 한 13명 정도는 일찍 1-2월에 출국을 해서 정상 근무를 했어요. 미국 합격자들은 진작에 다 나가는 걸 보고 오티에서 느낀 강렬한 후회가 자괴로 변해갔습니다. 그들도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병 때문에 꿈꾸던 생활은 하지 못했겠지요. 동양인을 미워하는 초기의 분위기가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경이 도미노처럼 턱턱 닫히며 모든 세상이 무너진 레고 블록처럼 흩어져 제가 그 위를 발로 밟는 느낌은 꽤 오랫동안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붉은 지붕과 노을, 재즈, 공원


 그때 가지 못했던 아쉬움과 미련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흔적도 남지 않을 만큼 흐릿하게 사라졌습니다. 이번에 프라하를 마지막 여행지로 선택한 것도 구구절절한 사연 때문이 아니라 요즘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서요. 돌아오는 편이 제일 싼 곳이 어딘가 찾아봤을 때 그게 프라하더라고요. 한 달 유럽 여행 때 프라하는 오래 머물기도 했고 웬만한 곳 다 봐서 궁금함이 딱히 없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마지막 여행지로 오게 되었습니다. 천근만근 불어난 짐을 끌고 매고 프라하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이 도시 정말 말도 안 되게 예뻐요. 대 여섯 시의 햇살은 또 어떻구요. 뜨겁지 않고 포근한 느낌의 햇살이 저를 쓰다듬는 걸 느끼며 알록달록 건물들을 빤히 보고 트램과 마주 걸어 강변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는데 몇 번을 멈춰 섰는지 모르겠어요.


'억울하다'


억울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었어요. 제가 그동안은 무얼 잃었는지도 모르고 절망했던 것이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 직업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수많은 걸 잃은 사람들을 보며 저는 지독히 개인적인 사연에서 오는 아쉬움을 그냥 앙 다물어 삼켰습니다. 이런 건 슬플 일도 아니다 하면서 시간과 함께 흘려보냈지요.


 별생각 없이 피곤하단 생각만 하면서 온 프라하에서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거리를 보는데 제가 잃어야 했던 기회가 어떤 것이었는지 낱낱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더라고요. 노릇한 지붕들 촌스럽지 않은 색 조합을 가진 집들, 어디서든 십 분만 걸으면 나오는 블타바 강, 수도 없이 많은 에메랄드 공원들, 저무는 해와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강가의 벤치들. 다 모두 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인데. 이곳에 오래오래 머물러 지냈을 저는 어땠을까요. 어떤 걸 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얼 만들어냈을까요. 내가 잃어버린 것이 이런 거구나 하면서 억울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너무하다'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다 까를교의 재즈 공연에서는 진짜 악 소리를 지르고 싶었습니다.    

 그거 아세요? 사실 베를린에서 프라하는 아주 가까워서 버스 타고 4시간이면 오고 기차 타면 더 가까운데요. 여행 계획을 다 짜고 보니 굳이 도시 간 비행기 값 많이 내고 베를린 - 런던 - 프라하 순으로 오가는 일정을 만들어버렸더라고요. 이렇게나 요령이 없다니 했는데 프라하가 참 새삼스럽게 아름다운 걸 보고 그 순서로 여행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한 달이나 연이어 여행을 할 때는 후반 일정이었던 프라하가 그렇게까지 임팩트 있지는 않았어요. 뭐 예쁜데 독일과 비슷하고, 크로아티아랑 비슷하고 어디랑 비슷하네 다 본 거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느껴버린 것 같아요. 이번에 본 프라하는 어디서 본 느낌이 아니라 그냥 이 도시 자체의 아름다움이 물밀듯 몰려왔습니다. 아무것도 뻔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무엇이든 잠시 낯설어질 시간이 필요한가 봐요. 그래야 새롭게 아름답게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나 봐요. 


 프라하의 어느 카페에서 글을 쓰는 동안 정각을 알리는 종이 두 번이나 쳤네요. 레터를 마무리하니 먹구름 낀 하늘에 해가 나기 시작했어요. 저는 또 새로 하루치의 모험을 하고 오겠습니다. 여행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영원할 것처럼 뻔뻔하게 즐기고 싶은 만큼 여유를 부리고 오겠습니다. 오늘은 프라하가 억울할 만큼 아름답다는 걸 설명하려고 개인적인 사연과 제 안에 오래 가지고 있던 자괴 하나를 꺼내버렸네요. 구질구질 못나게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이래야 저의 프라하가 설명이 되어서요. 부디 아름다움만 담뿍 느껴주시길 바랍니다. 한 밤중이 되었을 한국에 따뜻한 이야기가 되길 빌며. 


내일 또 뵙겠습니다. :)  

[오늘의 질문] 


- 자신을 믿지 못해 후회한 적이 있나요?

- 유난히 사연 있는 동네가 있으신가요?

- 프라하 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 똑같은 건데 다르게 보였던 경험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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