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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 Oct 30. 2022

열세 번째 레터. 숨 참고 다이빙

2022년 7월 28일 (목)

눈을 뜨세요

 벌써 집을 떠나 온 지 13일이나 흘렀네요, 내일이면 벌써 마지막 레터를 보내드리겠어요. 아니 한 편 정도 더 써서 15편으로 마무리를 해보면 어떨까요. 한국 시차로 업무를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첫날엔 괜찮았는데 두 번째 날엔 퇴근하고 여행을 즐겨야하는데 아주 헤롱헤롱 내내 졸음이 쏟아졌답니다. 잠은 한국 가서 자자 비장하게 다짐해봐야 저는 한낱 인간일 뿐.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종일 '졸려 죽겠다' 눈을 반쯤 감고 다니다가 예전 프라하 여행 때 했던 스카이 다이빙이 떠올랐어요.


 저는 겁이 많아서 익스트림 액티비티를 즐기지 않고요.(그렇다기엔 스카이 다이빙, 패러글라이딩, 집라인 다 해봤네요.. 빠지 가서 물도 먹어보고..) 스카이 다이빙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요. 저와 여행을 함께한 친구가 프라하에서 꼭 스카이 다이빙을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프라하는 세계에서 스카이 다이빙을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더라고요. 20만 원 정도면 할 수 있답니다. 무서울 것 같지만 또 고소 공포증은 없어서 조금 머뭇대다가 그러자고 했어요. 여행을 시작하기 한참 전에 계획 짜면서 한 말이라 실감이 안 나서 생각 없이 하겠다고 한 거 같아요. 예약한 그날이 되니까요. 미팅 포인트에 가서 웬 봉고차를 타고 분노의 질주로 한 40분쯤 프라하 시내에서 멀어졌어요. 그때까지도 별생각 없었는데. 빨갛고 파란 우주복 같은 점프수트를 입고, 좌석을 다 들어내서 트럭 같은 작은 비행기를 타니까 정말 죽겠더라고요. 비행기 탈 때부터 같이 뛰는 전문가랑 합체해서 올라가는데, 하필 저를 맡은 분이 올라가면서 여유 부리면서 샌드위치 뇸뇸 먹고 쿨쿨 조는 척하고 사람을 골려먹는 거예요. 저는 긴장되어 죽겠어서 얼굴 노래지는 중인데. 마냥 신난 제 친구는 저를 보고 깔깔 웃고요. 저는 유튜브에 올리려고 돈을 더 내고 영상도 찍었는데, 친구가 저 놀리는 장면만 보면 너무 진심으로 즐거워해서 얄밉고 웃겨요. 처음엔 카메라에 안녕 안녕 인사도 했는데 금방 비행기가 구름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진짜 웃기지도 않아서 내리고 싶었잖아요. 그쯤 올라가니까 친구도 슬슬 긴장하더라고요. 고도 4천 미터까지 올라가서 떨어진다더니 그렇게 높이 갈 줄 몰랐어요 전. 이쯤에서 다이빙해야 할 거 같은데? 해도 계속 올라가요 달달달 경운기 같은 소리를 내면서요. 이러다 심장 조여 기절한다 싶을 때 딱 멈추더니 문이 팡 열려요. 그러고는 뭐 세리머니도 없이 문에 가까이 않은 사람부터 주르륵 떨어지는 거예요. 하필 제가 또 제일 안쪽에 앉아서 사람들이 속절없이 퉁퉁 떨어지는 걸 다 구경하느라 공포가 세 배는 되었죠. 아저씨한테 대롱대롱 매달려서 진짜 하늘 속에 까꿍 하고 잠깐 서있던 장면은 잊히지도 않네요. 순간 비행기 문을 잡고 헛 둘셋 하고 팍 떨어졌어요. 


 구름을 가르면서 떨어지는 건 생각보다 더 빨라요.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고 싶은데, 바람 막는 웃긴 플라스틱도 끼고 있었고 아저씨들이 절대 눈 감지 말라고 여러 번 말씀하셔서 눈을 부릅! 뜨고 떨어졌습니다. 눈만 부릅뜨고 그대로 굳어버렸는지도요. 저 찍어준다고 같이 떨어진 아저씨가 뺨따구를 톡톡 치면서 카메라에 인사하라고 해서 억지웃음 지은 거는 차마 유튜브 영상에 못 썼습니다. 떨어지는 동안 한 생각은 그냥 '너무 빠르다', '눈 감으면 안 된다'였어요. '순식간'이라는 단어를 저는 몸으로 느껴봤지요. 떨어지다가 어느 순간 낙하산을 펴고 천천히 하늘을 날아요. 사실 그때부터 풍경이 기억이 나요. 눈을 내내 뜨고 있어도 볼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았지요. 어떤 순간은 그냥 느낌으로만 기억이 나더라고요. 오늘도 자꾸만 감기는 눈을 뜨려고 노력하다 하늘을 떨어지면서 뭐가 보였는지도 모르고 어떤 느낌만 솔솔 불어오던 그 순간이 떠올랐어요. 너무 졸리니까요, 뭘 보고 있는데도 눈에 잘 안 들어왔어요. 참 아쉽지요. 그렇지만 또 그런 몽롱한 느낌만은 분명히 기억이 날 것도 같습니다.    


김치찌개 자존심 


 졸리고 피곤하고 뭐든 즐겁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었어요. 그러니 한국 음식이 미치게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한식 잘 안 먹으면서 겨우 2주 여행하면서 한식집 가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몸이 피곤하니까 얼큰한 국물 먹으면 살아날 거 같은 거죠. 원래 꼴레뇨에 코젤 다크 먹어야지 했는데. 자존심 접고 구시가지에 유명한 한식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예약이 꽉 차서 자리가 없었어요. 사실 한 자리 있었는데 '햇빛이 들어와서 여긴 별로다'라며 은근 갔으면 하는 눈치길래 빠져나와서 꼴레뇨를 먹으러 갔어요. 한식 맛있게 먹고 있는 수많은 한국 분들 앞에서 쫓겨나니까 되게 머쓱하고 혼자 여행하는 게 오랜만에 좀 처량해지는 거 있죠. 저는 그냥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던 건데요. 


 틴 성모 마리아 교회, 프라하 천문 시계 등 유명한 랜드 마크가 모여있는 구시가지엔 사람이 바글바글했구요. 대마 관련 상점이 4년 전에 비해 엄청 많아져서 좀 보기 좋지 않고, 정신없는 분위기가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공원에서 한가로이 쉬며 보는 프라하와 그 공간의 프라하는 또 완전 다른 느낌이었어요.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도 우리의 여행은 많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김치찌개를 대신해서 마주한 체코식 돼지 요리는 맛있었지만 김치가 너무 먹고 싶은 맛이었고요. 코젤 다크 전문점 간 거라 거품 퐁퐁 올라간 막 따라낸 코젤 다크는 진짜 눈이 안 떠지고 잔이 입에서 안 떨어지게 맛있었어요. 예전에도 한 1리터 넘게 마시고 갔었거든요. 이번에는 술이 약해져서 한 잔만 마셨지만 정말 제 인생 맥주는 독일 맥주 아니고 체코의 코젤 다크 생맥이에요. 여기 다이빙해서 헤엄치고 싶을 만큼 맛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한식은 안 먹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바글바글한 곳은 아무리 유명해도 저에겐 즐겁지 않다는 걸 알아서 남은 시간엔 공원, 강가 위주로 다닐 거예요. 그렇게 저에게 맞는 여행만을 즐기다 가겠습니다. 남들 다 하는 거라 당연히 가봐야 하는 거는 말고 그냥 제가 사랑하고 편안한 거에만 푹 뛰어들어 헤엄치다 가겠습니다.    



 매일 글을 적으면서, 함께 나눠보기 좋을 이야기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가장 공들이고 고민한 부분은 사실 '오늘의 질문' 코너였어요. 거기에 답을 주시는 분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걸 적는 저의 마음은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였습니다.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일도 잘하고 대화도 잘한다고 믿거든요. 여행의 끝에 다다라 다시 쭉 보면 그리 좋은 질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라도 당신의 마음에 물음표가 생기는 말이었기를 바라봅니다. 


이제 레터가 몇 편 남지 않았는데, 혹시 제게 질문 주실 게 있을까요? 늘 저만 질문을 했는데 제가 이야기해드리지 않은 것 중에 궁금한 게 있으시지 않을까 해서 물어봅니다. 이번엔 저도 몇 편의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레터도 기다려주세요. :)  


[오늘의 질문] 


- 인생 가장 용감했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 해외에 나가면 한식을 먹는 편이세요?

- 저의 여행에 궁금한 점 있으실까요? 



RE: [나니의 빨간수첩] 13. 숨 참고 다이빙

2022년 7월 29일 23:59 

- from A


Ahoj 나니~~! (체코어로 한번 인사해봤어 히히) 


오랜만이야 나니야 메일 읽고 바로 써야지 써야지 해놓고 오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경험이 없어 쓸 수 없는 바람에 이렇게나 밀려버렸어!!! 마지막 도시에서 충분히 여유를 즐기다 와!!!라고 하고 싶지만 일을 해야 하니까 또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하게 된다아 


그래도 날씨가 선선해서 돌아다니기 좋다니까 다행이야. 내일이 마지막 레터라니 말도 안 돼.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러버렸다니 그냥 한국에서도 계속 써주시면 안 될까요?ㅎㅎㅎ


그리고 코젤 다크 함께 마시고 싶어요. 생맥으로요. 물론 한국에서 먹으면 그런 맛이 안 나겠지만 그래도 같이 마셔 주실래용?(사실 질문 아니고 강요) 내가 어제 딱 정말 나도 나니에게 질문 보내야지 했는데 질문을 남겨 달라는 메일이 오니까 우리 텔레파시 통했어 팟치이이잉 하고 혼자 생각했어 킄킄


- 인생 가장 용감했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음 엘리베이터 문에 손이 낀 학생의 손을 냅다 빼준 거? 전 내리는 사람이었고 그 초등학생은 타는 학생이었는데 열리는 문에 손을 갖다 대더니 그대로 빨려 들어가서 으아앙 하길래 냅다 빼줬습니다!


- 해외에 나가면 한식을 먹는 편이세요?

한식 먹는 파입니다! 사실 여행 가서 한 번도 안 먹었던 적이 없어서 안 먹고 잘 지낼지 못 지낼지 잘 모르겠어요.. ㅎㅎ 하지만 오늘 나니가 김치찌개가 당겼던 것처럼 한 번쯤 매콤~~~한 걸 먹고 싶긴 할 것 같아요


- 저의 여행에 궁금한 점 있으실까요? 

나니에게 궁금한 질문들을 남겨볼게!!

ㄴ 지금까지 다녀온 여행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원은??

ㄴ 딱 일주일만 더 지내라고 하면 가고 싶은 곳은?? 

ㄴ 이번 여행에 가져간 책은 총 몇 권인지?? 

ㄴ 남미 여행도 가보고 싶은지!!? 

ㄴ 사람 사이에도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점 한 가지! 


너무 질문이 많은가? 사실 만나면 물어보려고 조금 아껴뒀어~~ 흐흐 

남은 시간 충분히 잘 즐기다 올 거라고 생각하니까 걱정은 안하구~~ 아! 맛있는 조각 케이크 맛보고 와죠! 당 충전 빠방하게 함 챙기고 와주라요~~


오늘도 해피데이야 나니



나니님에게 네 번째 메일

2022년 7월 30일 04:22 

- from Y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는 잘 다니셨나요? 일도 하시고 여행도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루 마무리가 잘 되었으면 하네요.


늘 자기 직전에 답장을 쓰느라 비몽사몽 글이 되어버렸지만,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걸 그대로 전해드리고 싶어 바로 답 메일 보내드리게 되네요.

저에게도 이런 부지런함이 있긴 있었네요. 


오늘은 프라하의 마지막 밤을 기념으로 파일에 그림도 살짝 그려봤는데, 오히려 정신없지 않으실까 걱정도 되긴 하네요..ㅎㅎ.. 그림은 잘못 그리지만 저의 마음을 담아 그렸습니다. 히히


프라하의 마지막 저녁 무사히 잘 보내시길 바랄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세상에, 먼 나라에서 한식집을 갔는데 김치찌개를 드시지 못했다니, 제가 다 속상하네요. 여행할 때 먹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리네요. 여담이지만 사실은 저도 해외 나가서 한식을 먹지 않겠다는 주의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호기심은 들더라고요. ‘현지인이 만드는 한식의 맛은 어떨까?’ 한국 사람이 아닌 현지 사람이 만드는 한식은 뭔가 다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전히 한국의 맛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조금은 바뀌었을 수 있으니까요. 이전에는 잘 먹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나가서 한 끼 정도는 먹어볼까 합니다! 아무튼, 그래도 코젤 다크에 성공하신 나니 님이라 다행이에요. ;) 저도 조만간 맥주 한 잔 해야겠네요.


12번째 레터의 프라하의 비밀정원 무슨 일인가요. 너무 아름다워요. 거기에 있으면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를 것 같아요. 저의 여행 목록에 추가해야겠네요. 마음이 울리는 곳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라하에서 느끼는 양가적인 기분은 훗날 재미난 추억으로 자리했으면 좋겠네요. 책과 노을이 함께 있는 사진, 왠지 집에서 30분만 걸어 나가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라 뭔가 뭉클하네요. 한국어가 적혀있는 책 때문일까요? 나니 님의 레터 한 자 한 자 모두 소중하고 즐겁지만, 사진 역시 최고라고 느껴요. 사진은 저마다 원하는 사진의 구도와 색감, 형태가 모두 다르기에 찍는 사람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레터 안의 사진들은 낯설면서도 친근해서 정말 친한 친구에게 우편함으로 편지를 받는 기분이에요.


일하면서 어떤 나라로 갈 수 있다면, 일본이나 대만에 가고 싶어요. 일단 시차가 크게 차이 나지 않고 한국과 가깝다는 점을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가 ‘고독한 미식가’, ‘와카코와 술’인데 두 주인공 모두 직장인이에요. 직장을 마치고 한 끼 식사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 왠지 로망이 생긴 듯하네요. 이런 로망을 가질 수 있는 건, 아직은 취준생이자 학생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이 감정을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겠네요. 대만은 제 전공인 중국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치안도 괜찮은 국가라 가고 싶어요. 갑자기 감정이 팍 식는 문장이었네요. 현실적인 이유가 앞서긴 하지만 대만 특유의 느낌이 좋아서 그런 것도 있답니다!


긴 휴가를 가져본 적이라고 하면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을 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하는 건 중국어 학원 다니는 것이 전부였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을 때였어요. 아침이면 농산물 시장 가서 원하는 과일을 사고 점심쯤에 한국 드라마에 이어서 중드, 일드, 영화까지 보고 저녁에서야 슬금슬금 공부 조금 하다가 나가서 혼자 산책하다 들어오고 그랬거든요. 제 인생에서 가장 한가할 때이자 가장 긴 휴가를 보낸 때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해외에서까지 업무를 보시고 구독자를 위해 레터까지 써주시다니, 이것도 진정한 익스트림 액티비티가 아닐까 싶어요. 괜찮으신가요..? 한국에 오시면 김치찌개에 밥 두 그릇 천천히 오래오래 편안히 드시고 잠도 푹 주무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질문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제가 상상하는 걸 진짜 좋아하는데 질문을 받고서 별의별 상상과 생각을 다 한 거 있죠. 차마 공개하기 부끄러운 답변은 제 마음속에 킵해뒀지만요.. 내일이면 마지막 레터겠네요. 늘 꽉 찬 레터를 받으면 하루의 모든 감정 정리가 되는 듯했어요. 아, 저도 질문 몇 개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듣고 있던 노래에 꽂혀서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듣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나중에 그 노래를 들으면 그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나니 님은 이런 적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여행의 또다시 유럽을 혼자의 여행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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