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니 Oct 30. 2022

에필로그. 끝나지 않는 여름

2022년 여름 그리고 가을 

독자들에게 보낸 마지막 인사. 


다들 잘 지내시나요

2022년 8월 23일 (화) 


 안녕하세요, 이 마지막 레터를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라며 짧은 이야기를 시작해보아요.  이 찐 마지막 레터를 끝으로 여러분의 개인 정보는 제가 잘 파기하겠습니다. 원래는 여행하며 열심히 찍은 4개의 필름 롤을 현상해서 15편의 깜짝 레터로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려고 했었거든요. 귀국해서 급히 사진관을 찾아 필름을 맡기고, 확인해보니 똥망 그 자체였어요. 그래서 깜짝 커튼콜 같은 레터는 보내지 못했습니다. 36장씩 4 롤 총 144장 중에 건진 사진은 딸랑 3장이에요. 처음 베를린 사진관 아저씨가 끼워준 대로 찍은 처음 딱 세 장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아래 사진 같이 빨갛거나 누렇게 빛 노출이 되었어요. 필름을 갈아서 여러 번 쓰는 카메라를 처음 써봐서 주의사항을 잘 몰랐던 거죠. 비가 좌절스럽게 많이 오던 8월의 시작에 조금이나마 기분 좋은 요소가 되어주었으면 했는데, 144장의 사진을 현상한 파일을 두근두근 열어보고 얼마나 서럽고 아쉬웠는지 모르겠어요. 행운의 사진을 보내며 그 핑계로 한 번만 더 다들 잘 지내시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슬펐습니다. 딱 3장이고 공들여 찍은 부분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름이 가기 전에 보여드리고 싶어서 용기 내서 메일을 보냅니다. 행운만 가득 누리고 온 여름을 나눠드릴게요. 평안하게 따스하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으시길 기원할게요.      




여행 그 후의 메일함 


 저는 여행이 끝나자마자 시차 적응할 틈도 없이 바로 출근해서 일을 하면서 재빠르게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모든 게 꿈인 듯 몽롱해졌죠. 하지만 하나씩 천천히 도착하는 답 메일을 보면서 여행이, 이 여름이 끝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답장을 보내준 사람들의 마음과 이야기를 안고 여행하는 내내 마음이 풍족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제 자리로 돌아와서도 메일함만 열면 뜨겁지 않고 따스하게 포근히 감싸던 여름의 햇살이나 여유로운 바람 같은 것들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감사 인사를 보내주었고, 누군가는 그동안의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을 워드 파일에 적어 정성을 보내주었어요. 첫 혼자 여행은 결코 혼자만의 여행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첩은 그저 저 혼자 기억하기 위해 남기던 기록이었고, 메일은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가장 딱딱한 통신 수단이었지만 작은 용기를 내어 그것들에 진심을 담고 소중히 나누었더니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메일함에만 들어가면 여름이 그대로 있어주어 안심이 됩니다. 


 여행을 하면서 답장을 보내준 이들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런던에서 하나, 프라하에서 셋. 그 나라가 담긴 작은 수첩을 사 왔어요. 모두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가장 답을 많이 해주었던 네 명의 독자에게 선물을 전했습니다. 그중 두 분은 원래 알던 사람이라 대면으로 전달했지만 두 분은 얼굴도 모르는 독자라 용기를 내 주소를 물었습니다. 다행히 흔쾌히 알려주셔서 택배로 수첩과 엽서를 보내면서 저는 조금 더 오래 여행을 즐겼습니다. 


다시 여행을 떠나 새로운 매일 메일을 시작할 때까지 이 여름의 여행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이전 15화 열네 번째 레터. 프라하 올 댓 재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