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고, 새로운 밤을 맞이한다.

by 옆길

도쿄에서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퇴근길 나도 모르게 “집에 가자”라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 말을 들은 동료들은 웃으며 말한다.

“한국에 출장 가야겠네~” 그 말에 나도 웃는다.

이제 이곳이 조금씩 ‘집’처럼 느껴지고 있다는 뜻일까


이번 주를 돌아보면 유독 화요일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실수들이 연달아 터졌던 날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맡은 일을 잘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편이라 사소한 실수에도 스스로를 많이 탓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실수 하나가 생기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시간이 멈춘 듯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오직 내가 빠르게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뿐이었다.

슬랙 메시지를 꼼꼼히 읽지 않고 첫 문장만 보고 답장을 보내는 실수를 반복했다.


퇴근하기 전 허털하게 앉아 옆자리 동료에게 말했다.

“오늘 실수가 너무 많아... 눈물 날 것 같아.”

사실 그 순간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왜 이렇게 크게 느껴졌을까


그날 밤 내 실수를 더블 체크하던 다른 팀의 상사에게 슬랙 메시지를 보냈다.

“확인 필요한 부분 있으면 언제든 태깅 주세요.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이걸 보내는 게 맞았을까?’ 머리 속에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혔다.


그분은 나보다 훨씬 높은 직급이었다. 그래서 더 위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띵동 슬랙 알림이 울렸다. 슬며시 화면을 보니 답장이 와 있었다.

“넹”


그 짧은 한 마디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내 실수는 그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다.

다음 날 동료에게 넌지시 이 이야기를 말하니 입을 조그맣게 말고 날 보며 말했다.

“그분은 너보다 더 큰 실수도 많이 봤을걸? 너의 실수는 실수도 아닐 거야.”


나는 왜 이렇게 작은 실수에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가고 상대방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다시 괜찮아지는 걸까? 감정이 섬세해서일까 아니면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까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이 실수로 앞으로 업무를 못 맡게 되면 어쩌지 그런 생각들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내가 한 실수를 곱씹어보면 정산을 잘못해 회사에 수억 원의 손실을 낸 것도 아니고 그저 슬랙 메시지를 몇 번 잘못 읽은 것뿐이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실수 하나로 한 달은 자책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엔 마음을 조금 달리 먹었다.


앞으로 정신없이 바쁠 때도 슬랙을 꼼꼼히 읽고 답장하기

실수를 너무 크게 확대 해석하지 않기


이 두 가지는 꼭 지키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

나는 27년 동안 갤럭시만 써온 사람이었다.

삼성페이, 삼성의 편리한 기능들 삼성은 내 일상 그 자체였다.


그런 내가 문득 아이폰이 써보고 싶어졌다.

이번엔 임직원 할인으로 애플 반품샵에서 30% 할인된 제품을 샀다.


사진과 연락처를 옮기고 아이폰의 사용법을 익히는 과정은 낯설고 불편했다.

삼성은 “내가 너에게 다 맞출게. 이 기능 어때?”라고 말하는 느낌이라면 아이폰은 “나에게 맞춰. 불편해도 참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익숙해지긴 했지만 문득문득 삼성의 기술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갖고 싶던 걸 손에 넣었는데도 행복은 잠시였다.


삶이란 그런 것 같다.
갖고 싶은 걸 손에 넣었을 때조차 그것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것.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라면 그 삶에 너무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출근길 예쁜 하늘을 아이폰으로 찍으니 사진이 더 선명하고 감성 있게 나오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이 글을 쓰며 피식 웃음이 났다.
여러 감정이 들었지만 또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내가 스스로 기특하게 느껴졌다.


창밖을 보니 노을이 물들고 있다.
아침이 지나 낮이 되고 낮의 끝자락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면 곧 고요한 밤이 찾아온다.

하루의 색은 그렇게 바뀌어 가고 그 안에서 우리는 매 순간 다른 마음으로 살아간다.


내일은 동료들과 맥주 한잔 해야겠다.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또 한 주를 열심히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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