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 나, 치과 앞에서 다시 아이가 되다

by 옆길

한 달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함께 밥을 먹고 7월 10일 엄마 생일을 미리 챙겨드렸다.

일본에서의 경험을 풀어놓고 부모님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들으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렇게 반가운 재회 속에서도 내가 한국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병원이었다.

그중에서도 치과는 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어릴 적부터 치과 특유의 냄새, 차가운 기계 소리, 그리고 치아에 닿는 이물감이 너무 싫었다.


치료를 받을 때 몸을 묶어놓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치과는 곧 돈이었다.


치아 하나가 흔들릴 정도로 아파 병원을 찾았더니 치아가 깨져 발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게다가 중요한 치아라 임플란트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얼마죠?”

간호사분은 조심스럽게 웃으며 합계를 보여줬다.


130만 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중학교 때 교정하면서 느꼈던 고통을 떠올리며 그 이후로는 양치도 열심히 하고 치아 관리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 순간 그냥 내버려둘까? 하는 마음이 스쳤다.

나는 주사를 볼 때 맞는 편인데 이상하게 치과 주사는 볼 때마다 겁이 난다.

발치 후엔 비행기를 타면 안 된다는 말에 매니저님께 일주일은 한국에 더 머물러야 한다고 전해야 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제 나이에도 임플란트를 하나요?”

간호사분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많이들 깨져서 하세요 환자분만 하는 거 아니고 썩어서 오는 분들도 많아요.”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됐다.


치과는 아플 때 가면 금액이 불어나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통장이 아파할 걸 생각하니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이렇게 큰돈 한 번 쓰면 그 이후로는 치아 관리를 더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간호사님의 말에 멋쩍게 웃었다.

아빠는 옆에서 웃기 바쁘고 엄마는 “그 나이에 엄마도 안 한 임플란트를 한다고?”라며 달콤한 잔소리를 시작했다.


“치과 무서워서 안 갔다고! 신경치료 한 곳이라 아픈 것도 몰랐을 수 있대 전에 같이 가자고 했잖아 나 무섭다고!” 나이에 맞지 않는 투정을 부리자 엄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았다고 같이 가면 되잖아.”


다른 병원은 괜찮은데 이상하게 치과는 왜 이렇게 무서울까

초록 천이 얼굴을 덮고, 라텍스 장갑의 냄새, 위잉거리는 기계 소리, 시큰거리는 치아까지

앞으로 한국에 있는 동안 겪을 그 무서움들이 벌써부터 두렵다.


그리고 “아프면 손 들어주세요”라는 말에 번쩍 손을 들면 “네~”라고 대답하고는 다시 시작되는 귀를 찌르는 기계 소리 거짓말 투성이다.


그래도 어른이니까 참아야겠지 무서운 걸 어떡하냐는 거다.


60살이 되어 결혼한 남편에게 “나 치과 가기 무서워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내 모습이 그려진다.

그때도 지금처럼 투정 부릴 수 있을까?


내 이상형에 한 줄이 추가 됐다.

"치과 같이 가주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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