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싫었던 내가 여름을 걷는 법

by 옆길

사실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에 열이 많아 한여름에는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친구들과 지하철을 기다릴 때면 늘 이런 말이 따라왔다.


“야.. 너 땀 어떡하냐..”


나에게 여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여름이 좋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심지어 그들과 거리를 두고 싶을 정도였다.


덥고 짜증이 나는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감정이 쉽게 날카로워졌고 연애를 할 때도 상대에게 짜증을 쏟곤 했다.


그들은 나를 위해 차 안에서 기다리게 하거나 잘 걷지 못하게 조심해줬지만 나는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덥고 힘든 건 함께였을 텐데 말이다.


그런 내가 일본의 여름 속을 걷고 있다.

평일에는 ‘업무’의 연속이지만 주말마다 발걸음이 닿는 곳은 늘 새로운 풍경과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의 얼굴이다.


땀에 흠뻑 젖어도 짜증을 낼 틈도 없다.

그저 샤워 후 마시는 맥주 한 캔을 생각하며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예전엔 여름을 피하려 애썼다.

집, 카페, 짧은 이동만을 고집했고 여름휴가는 커녕 여름 자체를 멀리했다.

하지만 이젠 조금 달라졌다.

여름의 눈부심과 바람의 청량함을 알아가고 더위도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츠타야 서점에서 더위를 피해 몰린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에서 땀을 흘리며 웃고 있는 외국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한여름을 마치 축제처럼 맞이하고 있었다.

햇빛 아래 싱글벙글 웃으며 커피를 마시던 그들의 모습은 마치 “여름아 어서 와!”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미소를 보며 '나도 이제 여름을 조금 다르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여름이 오면 좋은 사람들과 어디론가 떠나고 더위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바람의 결을 더 깊이 느끼고 싶다.


지금 얼굴에 붙여둔 시원한 팩과, 복숭아 맥주 한 캔이 오늘의 여름을 기분 좋게 마무리해준다.


앞으로의 여름도 이렇게 작지만 분명한 기쁨으로 채워지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의 여름도 그렇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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