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아픈 상처를 남기고
아버지의 시간은 나이 들고 아픈 몸과 함께 쏜살같이 흘러 갔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현재가 사라지고 혼돈과 망각 속에 갇히게 되었다. 가끔씩 들려줬던 지난 과거의 파편화된 기억 을 꿰어 아버지의 지난한 삶을 가늠해 볼 따름이었다. 지난 10 여 년은 몇 차례의 응급실 행과 크고 작은 가슴 옥죄는 사고로 가슴을 쓸어내렸던 아찔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억척 스럽고 꿋꿋하게 아버지의 곁을 지키던 엄마도 이제는 늙고 병 들어서 돌봄이 필요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어리석게도 부모는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줄 알았다. 그 동안 냉혹한 현실을 나만 모르쇠로 외면했을 뿐이다. 뒤늦게 마주한 현실 곳곳에 불안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버지 갈비뼈 골절 이후 돌봄에 대해 많은 부분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 아버지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어쩌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쑥 찾아들었다. 병원에 가는 횟수도 점점 잦아지고 요양원에서 돌볼 수 있는 한계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아버지에게 전담 보호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가족의 누군가는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전적으로 아버지를 돌볼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물론 삶의 공간이 바뀌고 일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삶이 위축 되고 존재감도 사라지는 게 아닐까 겁이 나기도 했다. 그나마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내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했다. 두서없이 독버섯처럼 자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정리 되면서 불안도 사라졌다. 나이 들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였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아버지가 최소한의 안정을 찾을 때까지 손발이 되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인생이란 그런 거야
입원 첫날 아버지는 막무가내식의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았 다. 하지만 도뇨관 때문에 방광이 자극되어서인지 수시로 화장 실을 가려고 했다. 병상에서 화장실까지는 평소 같으면 1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휠체어로 움직여야 하다 보니 화장실 다니기가 번거로워졌다. 병실 복도에 있는 공용 휠 체어를 가져와서 아버지를 도뇨관과 연결된 소변주머니와 링 거 폴대에 주렁주렁한 줄이 눌리거나 꼬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앉히기까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치 전투라도 치르듯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보니 6인실에 있는 화장실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런데다 갈 때마다 아버지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 다 보니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간호사에게 병실을 바꿔 달라는 민원이 계속 제기된 모양 이었다. 정작 보호자인 내 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병 실에 들어서면 왠지 분위기가 싸늘했다.
사뭇 달라진 병실 분위기에 서로 눈치가 보이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어느 날은 간호사가 나를 따로 불러내더니 아버지 때문에 같은 병실 보호자들의 민원에 시달린다고 했다. 처음에 는 환자인데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반박도 해봤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입막음용 간식도 그때뿐이고 무엇보다 주변의 눈총을 받는 간병인이 힘들어 했다. 병실에서 아버지는 물론이 고 간병인까지 눈칫밥을 먹는다 생각하니 대책이 필요했다. 간 호사에게 2인실에 자리가 나면 병실을 옮기겠다고 일러뒀다.
아버지가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밤새 잠을 설치다 보니 나 역시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이 끝나자 간호 사가 오더니 맞은편 2인실에 빈자리가 생겼으니 병실을 옮기라 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 병상 옆 간이 서랍에 넣어 둔 면도기나 연고 등 자질구레한 물품을 챙기려고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복용하지 않은 아침약이 그대로 있었다. 환자한테는 약 복용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게 뭔가 싶었다. 간병 인에게 물어보니 아버지에게 아침 약 주는 것을 깜빡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순간 뇌관이 팍 터지듯 화가 폭발했다. “도대체 환자에게 약을 정해진 시간에 안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 간병인의 기본자세가 안 되었다”고 따져 물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게지며 흥분하자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높아졌다.
간병인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아침 약 한 번 안 줬다고 난리 칠 일이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그 말을 듣자 화가 더욱 치밀어 오르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될 텐데… 환자에게 약을 제때 챙겨 주지 않고서도 왜 그렇게 당당한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정신을 갖고 환자를 간병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 이기 어려웠다. 언제 같은 일이 반복될지, 보호자가 없을 때 환 자를 어떻게 간병할지……. 갑자기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기 시작하면서 그만두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 말에 간병인도 기다렸다는 듯 맞받아쳤다.
“그거 잘 됐네. 그렇지 않아도 그만두려고 했어.”
약 복용은 환자의 치료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서 잘못된 것은 정확히 짚고 바로잡아야만 했다. 더욱이 신경이 곤두서 있었 던 차에 간병인의 말 한마디가 불을 당긴 셈이었다.
잠시 병실 밖에 나가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벌어진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병실로 돌아와 간병 인에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기에는 늦었다. 당혹한 표정의 간병인은 자신의 짐 정리를 재빠르게 끝낸 뒤였다.
순간 쥐죽은 듯 조용해진 병실 안 보호자와 환자들의 시선 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졌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기된 얼굴 로 따가운 시선을 뒤로한 채 당황한 표정의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 맞은편 2인실 병실로 옮겨갔다.
‘그래, 새로운 간병인을 찾아보면 돼. 괜찮아. 한두 번 있었 던 일도 아니잖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별일 아닌 듯 스스로를 다독였다. 옮겨간 병실 서랍에 아버지 물품을 얼추 정리하고 병상 옆 간이 병상에 잠시 우두커니 앉아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순간 고립무원의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름 안간힘을 쏟으며 버티고 있는데 누군가 아픈 곳 을 무심코 툭 건드리자 참았던 눈물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꺽 꺽 소리를 내어 울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지만 어깨가 들썩거리 며 눈물이 끊이질 않고 흘러내렸다. 무안한 얼굴로 아버지가 나 를 천천히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아무렇지 도 않은 듯 얼른 눈물을 훔쳤다.
자꾸 속울음이 차올랐지만 가까스로 삼켰다. 어쩌면 이제 본격적인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고 불안하고 불안정한 현실을 으스러지게 그러안 고 나아가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문득 영화 의 대사가 떠올랐다.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 쪽에서. 인생이란 그런 거야. 우린 늘 그 속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