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의 무거운 공기를 밀어내듯 뜻밖의 방 문객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6인실에서 사나흘 가량 지낼 때 바 로 옆 병상에 있던 환자였다. 당시 한밤중이면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환자와 보호자의 원성이 높던 때였다.
아버지 병상 바로 옆이었으니 어찌 보면 가장 힘들었을 법도 한데 오히려 군소리 한마디하지 않았다. 6인실에서 2인실로 병실을 옮겨가기 전까지 아버지에게 잘 대해 주고 방패막이 역할을 해준 기억이 났다. 70대 초반 가량의 살집 좋고 작달막한 키에 이해심 많던 그 환자가 안부 차 일부러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분은 병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아버지를 보자마자 거수경례를 했다. 아버지는 원체 과묵하고 그다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성격을 알고 일부러 경례를 해서 아버지를 말없이 기분 좋은 미소로 답하게 만들었다. 덩달아 병실 분위기가 불이 켜진 듯 환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병실 안 에 드리운 짙은 먹구름이 걷히고 잠시나마 한줄기 따뜻한 햇살 이 내리쬔 듯 훈훈했다.
그 뒤에도 몇 차례 아버지를 찾아와서 인사를 건넸다. 같은 병실에서 지낸 짧은 마주침만으로 아버지의 기쁨조를 자처해 찾아온 그 환자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병실에서, 마주치는 복도에서 건네는 사소한 말 한마디와 눈길에도 왠지 마음이 따듯해졌다.
아버지의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입맛이 떨어지고 서너 숟가락 간신히 먹다 말거나 한 숟가락도 밥을 못 먹는 횟수가 늘 어났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고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 며 의지를 불태웠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그나마 몇 개 남지 않 은 오른쪽 앞니와 깨진 아랫니, 잇몸으로도 버텨 내는 아버지의 강한 정신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병원 생활이 두 달째로 접어들다 보니 마음의 나이테가 한켜 생긴 듯했다.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조금씩 부서지는 몸과 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 같다. 생사가 교차되는 병원 에서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는 일을 겪다 보니 죽음에 대한 생각 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도 자꾸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자신을 뒤돌아보고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길임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내리막길을 달리는 아버지의 병세가 더 이 상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으려고 애썼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슴 깊이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