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씨 Jun 29. 2022

벼랑 끝에 선 기분

깊은 슬픔 속으로

바나나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인지 아버지가 음식 삼키는 일을 더욱 힘들어 했다. 이젠 죽마저도 사레가 자주 들어 기침을 했다. 자연스레 먹는 것이 부실해져 점점 대나무처럼 바짝 야위어 갔다. 의사는 사레가 자주 들리면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 흡인성 폐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재차 심각하게 경고했다. 그러면서 경비위관을 삽입해야 한다고 선을 긋듯 단호하게 말했다. 

요양병원 입원할 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썼지만 경비위관 삽입 역시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의중을 꿰뚫어 본 듯 의사는 아버지 죽음과 죽어감 가 계속 음식을 삼키지 못한 채 영양분 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 돌아가실 텐데 그대로 보고만 있을 거냐고 채근하듯 물었다. 몸 이 회복되면 경비위관을 제거할 수도 있으니 빨리 결정해서 알 려 달라고 했다. 

음식물 공급이 안 되면 돌아가실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머 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고통스러웠던 도뇨관에 이어 경비위 관까지 삽입해야 한다는 사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에 빠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다시 한 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살아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 각은 가족 모두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상의한 결과를 비장한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전달했다.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명의 간호사가 경비위관 삽입 기구를 들고 병실에 나타났다. 그 기구를 보자 덜컥 겁이 났다. 코를 통해 작은 관을 삽입해 위까지 바로 도달되게 하는 것이 었다. 맨 정신에 콧속으로 작은 긴 관을 억지로 집어넣으니 아버지는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면서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몸부림 쳤다. 아버지 얼굴을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어 아버지 양손을 붙잡고 엎드렸다. 아버지의 신음에 나도 모르게 엎드린 채 울음 을 쏟았다. 

간호사는 아버지의 동요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작은 관을 위까지 도달하도록 쑥 집어넣었다. 2, 3분 만에 코를 통해 관을 집어넣었는데 몇 시간이 흐른 듯했다. 그런 다음 경비위관이 제 대로 위에 위치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촬영했다. 이상이 없다는 의사 소견까지 나오고 아버지의 일상은 번개가 치듯 한순간에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다. 

이제 밥 먹을 때도 숟가락 젓가락을 사용할 일이 없게 되었 다. 앞으로는 더 이상 음식물을 입으로 씹어서 삼킬 일도 없어 진 것이다. 매 끼니마다 나오는 팩에 담긴 유동식을 연결된 비 위관을 통해 위장으로 고칼로리 액체가 자동 공급되니 제대로 들어가는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되었다. 병상 위에서 상반신을 어느 정도 기댄 채 가만히 앉아서 유동식이 천천히 들어가는 모습을 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젠 아버지가 끼니를 거를까 걱정하지 않고 의식을 치르듯 경건한 마음으로 지켜만 보게 되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손으로 비위 관을 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양손은 보호대로 묶어 놨으 니 그야말로 옴짝달싹 못했다. 양손 모두 보호대를 한 채 병상 사이드 바에 헐겁게 묶여 있었다.

 아버지는 유동식이 경비위관을 통해 들어가고 있는데도 입으로 먹지 않으니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아버지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듯 물어보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솟았다. 처음에 가졌던 아버지 컨디션이 회복되 면 비위관을 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도 이제 완전히 버렸다. 처음 도뇨관 삽입할 때처럼 비위관도 절대로 삽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소용없었다. 

정작 죽고 사는 절박한 현실의 문제로 닥치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음식을 삼키지 못하니 경비위관 설치를 통해서 라도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서서히 죽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영양이 공급되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하는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처연했다. 삶을 살아 낸다는 것의 무 게에 가슴이 아팠다. 눈은 퀭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바짝 마 른 몸으로 종잇장처럼 하얗게 누워 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 처럼 온몸이 칭칭 감겨 있는 듯했다. 머릿속으로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울적해지 는 마음을 다스려 보려고 애썼다. 그나마 평화가 깃든 시간이라고 위안했다. 갑자기 열이 오 르고 가래 기침이 심해져 호흡이 힘든 응급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했다. 

아버지가 고통의 순간을 너무 눈물겹게 참아 내니 한이 되 어 정말 가슴이 미어터지는 듯했다. 아버지의 병세는 시간이 갈 수록 악화되었다. 이제는 4인실에서 중환자실로 병실을 옮겨 개인 간병을 해야 했다. 그렇게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을 경과하면서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다. 병이 오히려 더 깊어져 병 실도 1층에서 2층의 중환자실로 옮겨갔다. 


아버지가 옮겨간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환자 3명이 있었다. 아버지 맞은편 환자도 개인 간병인의 돌봄을 받고 나머지 의식이 없는 2명은 1명의 요양사가 돌보고 있었다. 2층 중환자실에 들어서자마자 뭔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진 동했다. 공기에 뒤섞여 코를 찌르는 찌릿한 악취에 눈살이 찌푸 려지면서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중환자실 환자는 세균에 취 약하니 감염되지 않도록 청결을 목숨처럼 여겨야 할 텐데… 간 호사에게 몇 번을 말해서 원인 제공자로 추정되는 맞은편 환자 병상 주변을 소독했다.

 아버지가 떠밀리듯 세 번째로 옮겨온 중환자실은 중증 환자 만큼이나 침묵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환자들은 삶의 끝자락에서 의식마저 없이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잤다. 가족의 방문은 상대적으로 거의 없었다. 중환자실의 환자 모두 타인의 돌봄 없이는 그대로 생이 끝장나는 곳이었다. 출입을 삼엄하게 통제하는 대형병원 중환자실 분위기는 아니지만 요양병원에서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머무는 병실이었다. 이곳에서 좀 나 아지면 일반병실로 가거나 상태가 나빠지면 종합병원 응급실 로 이송되거나 아니면 차디찬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잔기침과 가래는 지속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나 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다행히 열이 높지는 않았으나 객담배양 검사 결과 독성이 강한 세균에 감염되었다고 했다. 요양병원에 서 처방이 가능한 범위의 가장 센 항생제를 처방 받고 병실 내 위생에 각별히 신경 써야 했다. 아버지의 가래 끓는 소리가 심해지고 하루에도 수시로 기관지 가래를 빼내는 석션을 해야 했다. 석션할 때마다 아버지는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강하게 거부를 해서 한바 탕의 소동이 일어났다. 억지로 입을 벌릴 수가 없고 자칫 석션 튜브를 이로 물다가 그나마 남아 있는 깨진 앞니마저 어떻게 될까 싶어 안절부절했다.

작가의 이전글 삶이 끝나는 자리는 어디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