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놀음의 탄생기 1부. 창조신화라는 최초의 정치문서

인간은 왜 신을 닮았나: 창조 신화가 쓴 최초의 사회계약서

by 슈퍼T

창조 신화 ― 신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기원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섭니다. 인간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순간, 곧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누가 질서를 세우고 지배할 권리를 갖는가”라는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창조 신화’라고 부르는 이야기들은 사실 단순한 탄생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고대 사회가 스스로를 설계한 최초의 헌법, 혹은 정치 문서였습니다. 흙에서 빚어진 몸, 신이 불어넣은 숨결, 남자와 여자의 서열, 신과 인간의 경계 ― 이 모든 요소는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합리화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였습니다.

신화 속에서 인간은 결코 ‘자연스럽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신의 의지, 신들의 게임, 혹은 초월적 힘의 개입을 통해 등장합니다. 이 구조는 곧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는 우연이 아니라 신이 의도한 것”이라는 메시지로 연결됩니다. 신화가 곧 존재론이자 정치학이라는 말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스에서 프로메테우스는 흙으로 인간을 빚고, 아테나는 그 형상에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히브리 전통에서 하나님은 흙으로 아담을 만들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그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탄생했지만, 흙과 숨이라는 동일한 구조를 공유합니다. 인간은 흙이기에 유한하고, 숨을 품었기에 신적 질서 속에 속해 있습니다.

이처럼 창조 신화는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동시에, 권력과 위계를 정당화하는 장치였습니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곧 인간 사회가 신의 질서를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서 속에는 언제나 남녀의 위계, 왕과 백성의 위계, 신과 인간의 위계가 함께 짜여 있었습니다.

따라서 창조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태초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질서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자, 사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신성화했는지를 추적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묻습니다.
창조 신화가 말하는 ‘신의 형상’은 인간을 존엄하게 만든 선언이었을까요? 아니면 사회적 불평등을 신의 이름으로 고착시키는 장치였을까요?


흙에서 태어난 인간 ― 프로메테우스와 창세기

인간 창조의 기원으로 흙이 등장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흙은 누구나 발밑에서 밟고 다니는 가장 흔한 물질이지만, 동시에 생명이 솟아나는 근원입니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곡식이 자라며, 모든 유기체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흙은 곧 생명의 순환과 죽음의 귀환을 상징하는 물질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강가의 진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가 만든 것은 단순한 흙덩이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은 아직 숨 쉬지 못했고, 그저 무생물과 다름없는 형상이었지요. 이때 아테나 여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 흙 형상 속에 프쉬케(pneuma, 숨결)를 불어넣습니다. 그 순간 흙은 살과 피를 가진 존재로 깨어났습니다. 인간은 흙과 숨, 두 요소의 결합을 통해 탄생한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야기도 거의 동일한 구조를 따릅니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아담을 빚으시고, 그 코에 루아흐(ruach, 생기·영 breath, spirit)를 불어넣으니 비로소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 흙은 단지 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의 숨결이 불어넣어지자, 그것은 고귀한 존재, 곧 ‘살아 있는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변화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중 구조입니다.

-흙 = 인간의 유한성, 죽음의 가능성, 자연에 속한 부분

-숨 = 신의 질서, 생명의 근원, 초월적 차원과의 연결

인간은 태생부터 이 두 차원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였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결코 신이 될 수 없지만, 신의 숨을 품었기에 짐승과도 같을 수 없는, 경계적 존재로 자리매김된 것이지요.

이 구조는 단순히 인간의 생물학적 기원을 설명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곧 인간의 사회적 위치를 규정하는 장치였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신의 질서에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신을 닮은 고귀한 존재라는 긍지와, 흙에서 왔으니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운명 사이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중 구조는 또한 권력 질서의 은유로 작동했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신의 법과 질서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했습니다. 동시에 신의 숨을 품은 인간은 짐승과 구별되는 존엄을 지녔기에, 사회의 제도와 법은 인간을 ‘신의 형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이중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와 히브리,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거의 같은 창조 도식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농경과 도시 문명이 자리 잡은 고대 사회에서, 인간이 흙과 생명의 관계를 통찰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관찰을 넘어, 이 신화들은 곧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사회 질서를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정치적 문서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창조 신화의 흙과 숨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존재론적 진술이자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인간은 흙처럼 나약하고, 신의 숨처럼 고귀하며, 그 두 극단 사이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적 존재로 규정된 것입니다.


왜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아야 했나?

히브리 전통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즉 ‘이마고 데이(Imago Dei)’로 창조되었다고 선포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인간이 존귀하다는 추상적인 찬사가 아닙니다. ‘신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 속에는, 인간 사회의 질서와 법, 도덕 체계가 곧 신의 질서를 반영해야 한다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고대 근동 지역의 여러 제국에서는 왕만이 ‘신의 대리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왕은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였고, 왕의 권력은 신성한 정당성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태양신 라의 화신으로 여겨졌으며,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신들로부터 직접 권위를 부여받은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처럼 권력자의 신적 위상은 그들의 정치적 권위를 강화하는 도구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창조 서사는 이러한 전통을 넘어섭니다. 모든 인간을 신의 형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인간 사회 전체의 법과 윤리를 신의 뜻에 종속시킨 것입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보편적 존엄의 선언처럼 들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질서와 권력 구조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였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 ‘이마고 데이’ 개념이 왕권 신수설로 발전하여 왕의 권위가 신에게서 온다는 신학적 근거가 되었고, 이를 통해 군주의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유사한 논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신의 모양을 흉내 내었으나, 결코 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넨 순간, 인간은 문명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신들의 분노와 형벌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신의 능력을 흉내 내면서도 한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의 ‘형상 닮음’을 영혼과 이성의 차원에서 해석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 영혼 속에 ‘이데아’의 그림자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인간이 이성적 존재로서 신의 이데아를 추구할 때 비로소 본질적인 존엄성을 획득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렇듯 ‘신의 형상’은 단순한 외형적 모방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차원과 윤리적 책임을 부여하는 개념으로도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경계는 명확했습니다. 인간은 신을 닮았으나, 초월적 신성을 갖지 못하므로 사회 질서와 신성한 법 앞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너희는 신을 닮았으니 존엄하다’라는 메시지는 곧 ‘그러므로 신의 질서를 거스르지 말라’라는 정치적 명령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명령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신의 뜻에 순응할 것을 강요하며, 그 질서를 위반하는 자에 대한 처벌과 통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중세 교회와 군주는 이러한 신학적, 신화적 권위를 바탕으로 반역과 이단을 탄압하며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권력-지식’의 관계와도 맞닿아 있는데, 신의 형상에 근거한 권력은 지식을 통제하고 사회 규범을 생산하는 하나의 ‘담론’으로 작동했습니다.

이와 같은 창조 신화의 ‘신의 형상’ 개념은 인간이 단순한 자연의 일부를 넘어, 초월적인 신성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연결고리는 곧 사회적 위계와 권위에 대한 복종을 전제로 하며,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이중적인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신화적 구조는 고대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질서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라 할 수 있습니다.


창조 뒤에 곧바로 주어진 위계

창조 신화를 살펴볼 때,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창조’라는 찬란한 순간 직후에 곧바로 불평등과 위계가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위계는 단순히 신화 속 이야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이후 수천 년 동안 인간 사회의 질서와 권력 구조를 정당화하는 근본적인 서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독교 창세기의 위계 구조

창세기에서 인간 창조의 첫 장면은 아담이 먼저 빚어지고, 그 다음에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전개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남성 우선, 여성 후속’이라는 시간적·존재론적 순서가 여성의 종속과 하위 지위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서사는 단순한 가족 내 역할 분담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중세부터 근현대까지 기독교 사회에서 이 구조는 ‘남성은 권위자, 여성은 복종자’라는 성별 위계 사상의 이론적 기반으로 작동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라는 서술을 통해 본질적으로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규정되었으며, 이로 인해 여성의 사회적 권리 제한과 가부장적 질서가 정당화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위계적 질서는 가족이라는 미시 사회를 넘어 국가와 교회, 그리고 법과 도덕 체계 전반에 스며들었습니다. ‘남성이 가정을 다스리고, 여성은 순종한다’는 명제가 사회 전반의 권력 관계에 반영되었고, 이는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신학적·철학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이야기

한편, 고대 그리스 신화도 인간 창조 직후 비슷한 위계와 불평등의 서사를 포함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인간을 빚고, 아테나가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었다면, 신들은 이후 판도라라는 여성을 만들어 인간 세상에 보냅니다. 그녀는 신들로부터 아름다움과 매력을 선물받았으나, 동시에 인간에게 고통과 재앙을 퍼뜨리는 ‘판도라의 항아리’를 여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여기서 판도라는 여성성 자체가 ‘문명의 타락과 고통의 근원’이라는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남성 중심의 신화 세계에서 여성은 유혹과 위험, 그리고 인간의 불행을 불러오는 이중적 존재로 규정되었습니다. 이 신화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신화적 근거가 되었으며, 고대 그리스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를 문화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위계 서사의 기원과 기능

이처럼 창조 신화는 존재의 기원뿐 아니라, 사회적 위계와 불평등의 기원까지 함께 설명해야 했습니다. 신화는 ‘왜 인간 사회에는 차별과 질서가 필요한가’라는 근본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 신화는 단순한 우주 창조 신화가 아니라 ‘질서 창조 신화’입니다.

이러한 위계 서사의 삽입은 우연이 아닙니다. 신화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권력 구조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지도’의 역할을 합니다. 신화 속 ‘남성 우위, 여성 하위’와 같은 질서는 신성한 질서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며, 사회 구성원들의 복종과 순응을 유도합니다.

따라서 창조 직후 즉시 나타나는 위계와 차별의 신화는 사회 질서 유지와 권력 정당화라는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습니다. 신화는 ‘질서’와 ‘불평등’이 자연스럽고 신성한 것임을 설명함으로써, 체제 전복이나 권력 도전에 맞서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신화의 문화적 기후

서로 전혀 다른 지리적, 역사적 배경을 가진 문명들이 어떻게 이토록 비슷한 창조 신화를 만들어냈을까요? 그 답은 각 문명이 형성된 ‘문화적 기후’ 속에서 신화가 단순한 이야기 이상으로 사회 구조와 정치 체계를 반영하는 ‘질서의 설계도’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문명: 다신교와 철학적 사유의 경쟁 사회

고대 그리스 문명은 여러 독립된 도시국가로 구성된 복잡한 정치 지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토스 등 각 도시국가는 치열한 경쟁과 동맹 관계 속에서 성장했으며, 이러한 다원적 권력 구조는 그리스 신화와 철학에 반영되었습니다.

그리스는 다신교 세계였습니다. 제우스, 아테나, 아폴론, 아프로디테 등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며, 각 신은 인간 세계의 특정 영역과 관련되어 인간의 삶에 직접 개입했습니다. 이 신들은 때로 인간에게 축복을 주고 때로는 분노를 퍼부었습니다. 인간은 이 신들의 은총을 얻으려 끊임없이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였으며, 신들의 뜻에 순응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 사회는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한 신들의 세계와 인간 사이의 ‘경계적 공간’을 살아가는 존재로 신화를 구축했습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았지만 신이 아니며, 신의 분노 앞에서 유한한 존재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이중적 위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구조는 정치적 경쟁과 사회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국가 사회에서, ‘질서와 혼돈’ 사이 균형 잡힌 삶의 방식과 질서 유지의 필요성을 반영합니다.

또한,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 신화적 서사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존재론과 윤리에 관한 사유를 발전시켰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은 신화가 설명하는 세계를 넘어 이성적 질서와 덕의 체계를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대중의 신념과 일상적 세계관에 깊숙이 자리 잡아,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과 권력 구조를 지탱하는 밑받침이 되었습니다.


히브리 전통: 유목에서 제국으로, 유일신 신앙의 탄생

반면, 히브리 전통은 유목 부족으로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 제국과 주변 국가들의 압박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신교적 세계관 대신 한 분의 절대적이고 전능한 신, ‘야훼’에 대한 신앙이 확립되었습니다.

유일신 사상은 단순한 종교적 믿음 이상의 기능을 했습니다. 다신교가 다양한 신들의 이해관계와 다원성을 반영한다면, 유일신 신앙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권위를 가진 신을 내세워 사회 질서와 정치 권력의 정당성을 확립했습니다. 신은 곧 법의 제정자이며,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창조 신화는 인간과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는 동시에, 신의 절대적 권위를 강조하는 내러티브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특별한 존엄을 부여받았지만, 동시에 신 앞에서는 완전한 종속적 존재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것은 강력한 제국 통치 체계와 종교적 권위가 결합된 사회에서 질서 유지와 충성을 확보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공통점: 신과 짐승 사이, 경계적 존재로서 인간

두 문화권 모두 인간을 ‘신과 짐승 사이에 위치한 경계적 존재’로 설정했습니다. 이 위치는 인간 존재의 이중성을 상징하며, 동시에 사회 질서와 권력 관계를 설명하는 핵심적 틀을 제공합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았기에 존엄하고 이성적 존재이지만, 동시에 흙으로 만들어진 한정된 존재로서 자연의 법칙과 죽음에 묶여 있습니다. 이 이중적 존재론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돕는 동시에, 위계적 질서를 신성화하여 권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농경 사회와 제국 형성의 맥락

이러한 신화적 내러티브가 탄생한 근본적인 배경은 농경 사회의 형성과 대규모 제국의 등장에 있습니다. 농경은 인간 집단의 정착과 계층 분화, 그리고 정치 권력의 집중을 불러왔습니다. 이에 따라 ‘질서’와 ‘권위’는 생존과 공동체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신화는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왜 인간 사회가 위계적이고 권위적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신은 질서를 부여했기에 인간도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신성한 메시지를 통해, 공동체는 불평등과 권력의 현실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문명에서 비슷한 창조 신화가 탄생한 것은, 인간 사회가 본질적으로 ‘질서와 권위’를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신화는 그 필요를 충족시키는 문화적 산물로, 사회적 안정과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창조 신화는 인간이 만든 ‘질서의 거울’

“인간은 신이 만들었다.” 이 한마디는 단순히 신앙의 고백이나 종교적 진술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현존하는 사회 질서와 권력 구조는 신이 의도한 바이며, 따라서 누구도 이를 거스를 수 없다”는 선언이자 정치적 명령이었습니다. 창조 신화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사회적·정치적 권위의 근거로 기능해 온 ‘질서의 거울’이었던 것입니다.


존재론과 정치학의 이중적 기능

창조 신화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답을 줍니다.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지고 신의 숨을 받아 생명이 되었으며, 신의 형상을 닮았다는 서사는 우리 존재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신성한 질서 속에 위치한 특별한 존재임을 선언합니다. 이 서사는 인간에게 존엄과 의미를 부여하며, 동시에 인간 존재의 한계와 조건을 규정합니다. 인간은 신과 다르며, 동시에 신의 권위 아래 있다는 ‘경계적 존재’임을 명확히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론적 내러티브는 단지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규범화하는 정치적 이야기입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현재의 정치적·사회적 질서 역시 신의 창조 질서를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는 권력자와 제도가 자신의 권위를 신성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근거가 되어 왔습니다.

예컨대 고대 왕조에서는 왕권이 ‘신의 대리권’으로 간주되었고, 왕이 만든 법과 질서는 신의 질서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반역과 불복종은 단순한 인간적 범죄를 넘어 신성 모독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런 신화적 틀은 백성들로 하여금 질서에 순응하도록 강제하는 동시에, 권력자가 자신의 권위를 신성한 것으로 포장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권력과 제도의 거울

창조 신화가 그리는 인간상은 곧 그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상과 동일합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아 이성을 가지고 도덕과 법을 지키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위계 속에 묶여 있어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신화 속에 내재한 이 위계와 질서가 곧 제도와 관습, 법률로 이어지면서 사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정당화합니다.

즉, 창조 신화는 사회의 권력 구조와 제도의 형상을 반영하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남성이 먼저 창조되고 여성이 그다음이라는 이야기는 성별 위계와 가부장제를 정당화하는 신학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신의 형상을 닮았다는 선언은 동시에 ‘너는 신이 부여한 질서를 거스르지 말라’는 권위주의적 명령이었습니다.

이처럼 창조 신화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사회의 권력과 질서를 은폐하고 유지하는 ‘장치’였습니다. 사회가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개인과 집단을 규율하는 근본 틀이자 도구였던 것입니다.


권력과 질서의 시작을 은폐한 이야기

흥미로운 점은, 창조 신화가 그 자체로 ‘질서의 시작’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화는 질서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임을 보여주려 합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고, 신이 세상을 창조했으니 그 질서야말로 절대적이고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질서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정치적 산물이며,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이해관계와 힘의 작용이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신화는 그 복잡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현실을 감추고, 마치 신의 의도처럼 질서와 위계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이러한 신화의 은폐 기능은 오늘날까지도 여러 사회에서 권력과 이데올로기가 유지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입니다. 사회가 자신을 정당화하는 신화적 서사를 언제든 만들어내고, 그를 통해 권력과 질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창조 신화를 통해 우리는 단지 인간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을 넘어, 그 신화가 어떻게 권력과 질서를 형성하고 정당화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떤 사회적·정치적 효과를 낳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창조 신화는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숨겨진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질서의 거울’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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