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서 글로, 이야기에서 체제로
이야기가 기록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이 됩니다. 말로만 전해지던 신화는 흩어지고 변형되기 쉽지만, 기록된 순간부터 질서가 고정되고, 그 질서는 곧 권력의 근거가 됩니다. 문자로 새겨진 이야기는 단순한 전승이 아니라, 사회와 제국이 작동하는 방식의 설계도가 되는 것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기록은 단순히 기억의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질서를 고정하고 권위를 세우는 장치였습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신화는 마을마다, 세대마다, 심지어 같은 시대 속에서도 다른 버전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기록은 그 다양성을 하나의 틀 속에 가두고, 권력자가 원하는 내러티브만을 ‘진리’로 굳혀버렸습니다. 기록은 곧 편집이고, 편집은 곧 선택이며 배제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점토판에 새겨진 신화와 법전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단순한 영웅담을 넘어, 인간의 유한성과 신들의 질서를 강조하는 텍스트로 남았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더 분명합니다. 돌기둥 위에 새겨진 이 법전은 “법은 신이 왕에게 부여한 것”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문자로 박제했습니다. 즉, 기록은 단순히 법 조항의 나열이 아니라 신적 권위와 정치 질서를 동시에 고정한 장치였습니다.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역마다 제각각이던 신화들은 후대에 이르러 아폴로도로스와 같은 학자들의 손을 거쳐 ‘신화집’으로 정리됩니다. 이 과정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신화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어떤 이야기를 지워낼 것인가의 문제는 곧 정치적 판단이었습니다. 신화는 문학 작품이자 동시에 사회 질서를 정당화하는 교재였던 것입니다.
기독교 전통은 더 극적입니다. 초기 교회는 수많은 복음서와 문헌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로마 제국의 정치적 후원 아래 ‘정경’과 ‘이단’이 구분되면서 특정한 문서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요한복음, 마태복음, 바울 서신은 선택되었지만, 도마복음이나 마리아복음은 배제되었습니다. 이렇게 확정된 성경은 단순한 종교 문서가 아니라, 제국의 공식 문서가 되었고, 그 권위는 천 년 넘게 서구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따라서 기록이란 단순한 보존의 행위가 아니라, 권력의 배분이자 체제의 설계 행위였습니다. 기록이 남긴 것은 신들의 이야기와 인간의 운명이었지만, 실제로는 왕과 제국, 교회와 권력이었습니다.
결국 신화가 기록으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이야기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곧 권력의 언어가 되었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기록은 곧 제국을 떠받치는 설계도였던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화는 처음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구전의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사회적 규범을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노래와 이야기 속에서 세상의 기원을 배우고, 어른들은 제의와 축제를 통해 다시금 그 이야기를 재현했습니다. 그러나 구전은 변형에 취약합니다.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맥락도 변질됩니다. 같은 영웅담이라도 마을마다 다른 버전이 존재했고, 전쟁과 이주로 사람들의 삶이 바뀌면 신화의 줄거리 역시 바뀌곤 했습니다.
문자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기록은 신화를 고정시키고, 변형 가능성을 줄이며, 특정한 권력 집단이 내용을 독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기록이란 곧 선택이었고, 선택은 곧 권력이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지워버릴 것인지는 더 이상 공동체의 자율적 기억이 아니라, 지배층의 의도가 개입된 정치적 결정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입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수메르 도시국가의 영웅 전설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점토판에 새겨지고 왕실 도서관에 보관된 순간, 더 이상 특정 부족의 노래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길가메시는 한 도시의 영웅이 아니라, 문명의 위대한 전범이 되었고, 그 이야기는 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기록은 신화를 문명의 자산이자 지배층의 권위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집트의 경우도 비슷했습니다. 태양신 라와 오시리스의 신화는 단순히 종교적 이야기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파라오의 무덤과 신전 벽에 새겨진 텍스트는 곧 파라오의 권력과 신성을 보증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신화는 돌 위에 새겨짐으로써 사라지지 않는 권력이 되었고, 파라오의 영원한 신성을 보장하는 기록적 장치로 기능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기록이 단순한 보존의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은 언제나 편집과 배제를 수반합니다. 말로만 존재하던 신화는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었지만, 기록된 순간 하나의 정전이 되고, 그 정전은 권력자가 원하는 질서만을 남깁니다. 다시 말해, 기록은 신화를 권력의 언어로 바꾸는 첫 번째 계기였던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수많은 도시국가와 지역 공동체가 각기 독자적인 신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아테나 여신이 수호신이었고, 스파르타에서는 아르테미스가 중요했으며, 테베에서는 디오니소스가 중심 신이었습니다. 이처럼 신들은 지역마다 성격과 이름, 전승이 달랐고, 하나의 통일된 그리스 신화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한편으로 공동체 간 충돌과 분열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각 도시국가는 자신의 신과 신화를 통해 자긍심과 정체성을 강화했으며, 때로는 상대 도시국가의 신들을 폄하하거나 배척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기원전 2세기경 아폴로도로스라는 인물이 등장해 『신화집』이라는 방대한 저작을 집필합니다. 그는 다양한 지역과 시대에 산재해 있던 신화들을 계보학적 틀 안에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신들의 계보, 영웅들의 가계도, 신화적 사건들의 연대기적 배열 등, 방대한 산재 자료들을 한데 모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아폴로도로스의 작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신화의 정치적 편집이었습니다. 그는 다양한 신화들을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하고, 권위 있는 신화만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렇게 편집된 『신화집』은 신화의 지역적 변이와 분열을 넘어 그리스 사회 전체를 하나의 내러티브 속에 묶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신화가 한데 묶이고, 서로 충돌하던 이야기들이 일관된 서사로 재구성됨으로써, 공동체들은 자신들을 신성한 질서의 일부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즉, 『신화집』은 분열된 그리스 사회에 통합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정치적 문서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런 편집 작업은 권력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테네 민주정의 부흥기에는 아테나 신화가 더욱 강조되었고, 스파르타 군사 문화가 강할 때는 아레스와 같은 전쟁 신화가 중시되었습니다. 신화는 지역 권력의 이념을 반영하고, 이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편집 사례는 로마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는 그리스 신화를 수용해 자신들만의 신화적 역사를 편집했고, 이를 통해 로마의 우월성과 정당성을 강조했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
결국, 기록된 신화집은 단순한 고대 이야기집이 아니라, 신화의 정치학적 편집이자 사회적 권력의 산물입니다. 그것은 분열된 신화들을 하나의 권위 있는 질서로 통합해, 사회와 공동체가 자신들의 존재를 신성한 질서 안에 위치시키는 중요한 장치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초기의 문헌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과 같은 정경 복음서 외에도 수많은 복음서와 전승 문헌들이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도마복음, 마리아복음, 유다복음 등 다양한 이단 문헌들이 당시 신도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문헌들은 서로 다른 신학적 해석과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며,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도 통일된 교리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초기 기독교는 다원적이고 유동적인 신앙 체계였으며, 복음서마다 예수의 성격, 사상, 행적에 관한 해석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로마 제국과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문헌들을 통제하고 통일하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4세기 경 콘스탄티누스 황제 치하에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교회는 자신들의 권위와 교리를 확립할 필요가 더욱 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대한 문헌 중 일부만이 ‘정경’으로 채택되었고, 나머지 문헌들은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거나 파기되었습니다. 이러한 정경 확정 과정은 단순한 신학적 논쟁이나 신앙적 판단이 아니라, 명백한 정치적 결정이었습니다.
누가 어떤 복음서가 ‘참된 복음’인지, 어떤 문헌이 ‘신의 말씀’으로 인정받을지에 대한 선택은 권력의 문제였습니다. 정경으로 인정된 문서는 교회가 신앙을 지도하고 대중을 통제하는 공식적인 ‘권위의 언어’가 되었으며, 이는 곧 제국 권력과 결합하여 사회 전체의 이데올로기를 규정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반면, 이단 문서들은 체제에 도전하거나 기존 권위를 위협하는 내용으로 간주되어 제거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앙의 차이를 넘어, 교회와 제국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검열과 배제’의 정치학이었습니다.
기독교 경전 편찬 과정은 고대 사회에서 기록이 어떻게 권력과 연결되어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문자로 고정된 신화와 이야기는 신앙 공동체를 하나로 묶고, 제국의 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결국, 경전은 단순한 종교 문서가 아니라, 신화가 경전으로 승격되면서 신과 제국 권력이 만나는 지점이자, 권력 정당화의 최종 장치였던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초기 기독교의 기록 방식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스 사회에서는 수많은 도시국가와 지역이 각기 독특한 신화와 전통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다양한 신화를 인정하고 보존했습니다. 기록된 신화들은 단일한 권위 아래 강제로 통합되기보다는, 여러 변주와 해석 속에서 경쟁하며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리스의 『신화집』은 이러한 다양성을 수용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통일성과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다양성 속의 질서’라는 특징을 지닌 정치적 편집이었습니다.
반면, 기독교의 기록 방식은 훨씬 더 중앙집권적이고 엄격한 통제를 특징으로 합니다. 초기 다양한 복음서와 이단 문헌들이 공존하던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로마 제국과 교회는 자신들의 권위와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 검열과 배제의 과정을 통해 단 하나의 정경을 확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해석들은 배척되었고, 기록된 경전만이 진정한 신앙의 표준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두 상반된 전략은 사실 결국 같은 목표를 향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권력의 정당화와 유지입니다.
그리스의 신화집은 지식을 통제하고, 문화적 권위를 한곳에 집중시키는 수단이었습니다. 특정 신화만이 ‘주류’로 인정받으며 사회적 정체성과 권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성경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문서가 아니라, 신앙과 신념을 통제하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경전을 통해 교회와 제국은 신의 뜻을 독점하며, 사회 구성원들의 삶과 사고를 규율했습니다.
즉,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권력을 설계하고 미래를 통제하는 ‘정치적 기획’이었습니다. 문자는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질서를 고착화하고 도전자를 배제하는 최전선의 무기였던 것입니다.
기록의 정치학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기록되고 어떤 이야기가 묻히는가는 결국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록은 과거를 고정하는 동시에, 현재와 미래의 권력 구도를 만드는 핵심 장치인 셈입니다.
글자는 단순히 정보를 보존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배와 통제의 강력한 수단이었습니다. 고대 문명에서 기록의 주도권을 쥔 자는 곧 사회 질서와 권력을 쥐는 자였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신성한 기록의 독점자였습니다. 파피루스에 새겨진 신들의 계시와 왕의 명령은 신성 불가침의 권위로 작동했습니다. 이를 통해 파라오는 자신을 신의 대리자이자 절대 권력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기록된 말은 곧 신의 뜻이 되었고, 그 뜻을 거스르는 자는 신성모독자가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도 황제와 관료들은 역사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권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사관들이 남긴 『춘추』, 『사기』 같은 역사서는 단순한 사실 기록을 넘어, 특정 왕조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사회 통제를 위한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기록은 권력의 시각을 담아 역사의 흐름을 재편하는 설계도였던 셈입니다.
더 멀리 메소포타미아로 가면 함무라비 법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법전은 단순한 법률 문서가 아니라 신의 뜻을 기록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법전 자체가 신성한 권위를 부여받음으로써, 지배자의 명령은 신적 명령과 동치가 되었고, 사회 질서의 정당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기록은 단순한 정보의 보존을 넘어서는 ‘설계’였습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기록하고, 무엇을 남기며, 무엇을 삭제하는가는 사회 전체의 권력 구조와 질서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스의 『신화집』은 지식을 정리하고 통제하는 장치였으며, 기독교의 성경은 신앙과 교리를 독점해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과 행동을 통제하는 무기였습니다.
기록은 권력의 얼굴이고, 사회의 설계도였습니다. 이야기가 기록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전승이 아니라, 체제를 지탱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기록과 정보의 통제는 여전히 권력 유지의 핵심 수단입니다. 기록된 역사가 곧 현실이 되고, 어떤 이야기가 기록되고, 어떤 이야기가 잊히느냐에 따라 사회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기록의 정치학을 이해하는 것은 곧 권력의 본질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록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언제나 누군가의 세계관과 이해관계가 담긴 정치적 산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