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된 영웅, 버려진 영웅: 한국 현대사의 기억 정치
근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늘 ‘영웅’과 ‘독재자’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평가의 진폭을 겪어왔습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비교적 국민적 합의 속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자리매김한 반면, 이승만, 박정희, 김구와 같은 현대 정치 지도자들은 시대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들은 때로는 국가 발전과 독립을 이끈 ‘영웅’으로 기려졌지만, 또 다른 시기와 맥락에서는 권력 남용과 독재, 혹은 정치적 이념 갈등의 상징으로 비판받으며 역사 속에서 지워지거나 폄훼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이미지는 결코 고정된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권 교체 과정, 교육 제도의 변화, 그리고 미디어의 재현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편집되고 다시 쓰여지는 기억의 산물이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여러 격변기 속에서 위인 서사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각 시대 권력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이처럼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영웅’과 ‘독재자’라는 상반된 이미지 사이에서 오가며 변화하는 현상은, 위인 담론 자체가 어떻게 사회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한국 현대 정치 지도자들이 어떻게 위인 서사에 포함되었다가 배제되었는지, 그리고 미디어와 교육이 그들의 이미지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재구성했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위인’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역사적 진실과 권력의 욕망, 그리고 사회가 기억을 통해 자신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 중 하나입니다. 그는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향한 투쟁의 도덕적 정당성을 대변했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의 운명이 분단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도 김구는 ‘분단 반대’와 ‘자주 통일’이라는 분명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민족 통합과 통일을 염원하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그를 민족 지도자의 자리로 굳건히 세웠습니다. 하지만 냉전 체제가 한반도를 지배하며 분단이 현실화되면서, 김구의 위치는 점점 복잡하고 불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승만 정권 시기, 김구는 현실 정치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습니다. 1949년 그가 암살당했을 때, 장례식은 대규모로 거행되었으나, 이후 국가 주류 역사 서사에서는 그의 존재감이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승만 체제는 강력한 반공 이념과 단독 정부 수립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구가 주장한 ‘통일’과 ‘민족 자주’의 메시지를 상대적으로 배제했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는 김구의 이미지가 더욱 의도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그는 ‘좌우 합작파’로 폄하되었고, 분단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통일을 주장하는 인물은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권위주의 정권은 통일론을 비현실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것으로 폄하하며, 김구의 도덕적 리더십보다는 분단 질서 유지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면서, 김구는 다시금 ‘정치적 순수성’과 ‘도덕적 리더십’의 상징으로 재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교과서와 다큐멘터리, 대중문화 속에서 그의 위상은 서서히 회복되었으며, 특히 민주화 세력에게 김구는 권위주의 정권과 대비되는 ‘정의로운 민족 지도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는 여전히 ‘선택적 기억’의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사상은 특정 시기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부각되거나 은폐되었고, 도덕적 이미지 또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변주를 거쳤습니다.
결국 김구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한국 사회가 자신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소환되고 편집되는 ‘기억의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김구의 위상 변화는 한국 현대사가 정치적 권력과 역사 서사가 어떻게 얽히고설켜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위인 서사가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끊임없이 구성되는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으로서 한미동맹의 설계자 역할을 했으며, 1950년대 당시 교과서에서는 ‘국부’라는 칭호와 함께 영웅적인 존재로 당당히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해방 후 혼란한 시기에 국가 기틀을 세우고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입지를 다진 지도자로 평가받았습니다. 이승만의 리더십은 냉전 체제 속에서 한반도의 생존과 번영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승만은 장기 집권을 통한 권력 집중, 3.15 부정선거, 그리고 권위주의적 통치의 대표적인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민주주의와 국민 의사를 억압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는 독재적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1960년 4·19 혁명은 그러한 부정과 독재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자 분노의 폭발이었고, 이승만은 결국 국민의 힘으로 퇴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그의 이미지는 ‘부정한 권력자’라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굳어졌으며, 당시 사회와 역사 서사 속에서 점차 배제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특히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을 미묘한 위치에 두었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이 ‘대한민국 발전의 계승자’임을 주장하면서도, 이승만의 부패와 독재의 이미지를 은연중에 유지하여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강화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즉, 이승만은 ‘과거 권위주의의 산물’이면서도 ‘현 권력의 토대’라는 모순적 위치에 놓였습니다.
민주화 이후, 1987년부터 시작된 역사 교과서와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 속에서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라는 객관적 사실과 함께, ‘부정선거와 독재로 물러난 인물’로 동시에 기술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부’라는 찬사는 사실상 역사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분열되었습니다. 오늘날 이승만은 여전히 ‘건국의 아버지’라는 존경받는 측면과, ‘부정한 독재자’라는 비판적인 기억이 충돌하는 분열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정치적 입장, 역사 인식, 그리고 사회적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한국 사회가 근현대사를 어떻게 재해석하고 수용할 것인가의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승만의 이미지 변화는 위인 서사가 어떻게 정치적 변화와 사회적 갈등에 따라 재구성되고, 그 기억이 특정 집단에 의해 선택적으로 유지 또는 배제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극명한 ‘영웅화’와 ‘탈영웅화’의 대상이 된 인물입니다. 그는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수출 주도 경제 성장, 그리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기념비적 성과를 이끌어낸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1970년대 당시 교과서에는 ‘가난을 극복한 영웅’으로 묘사되었으며, 이는 국민적 자긍심과 발전에 대한 희망을 대변하는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박정희는 유신헌법 제정과 언론 탄압, 인권 유린을 대표하는 권위주의 통치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집권기는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강경하게 탄압한 시기로 평가받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박정희는 국가 공식 교과서와 미디어를 통해 ‘국민 아버지’로서 이상화되었습니다. 어린이용 위인전 시장에도 ‘박정희 위인전’이 출판되어, 어린 세대들에게 근대화와 국가 발전의 영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이 시기 박정희는 경제 성장과 국가 발전의 절대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육과 사회적 인식은 그의 경제 성과와 독재 통치를 함께 서술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이 시기의 교과서와 연구는 박정희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인권 탄압과 정치적 억압이라는 어두운 측면을 공개적으로 기술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박정희는 ‘완전한 영웅’도, ‘절대적인 악인’도 아닌 복합적 인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더욱 복잡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대중문화 속에서 박정희는 양극단의 얼굴로 등장합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국가를 세운 위대한 지도자’로 그려지지만, 또 다른 작품에서는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로 재현됩니다. 이처럼 그의 이미지는 여전히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박정희의 경우, 영웅화와 탈영웅화가 동시에 존재하며,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 것인지는 한국 사회 내 세대 갈등과 정치적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그에 대한 논쟁은 단순한 역사적 평가를 넘어서, 현대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 권위주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박정희라는 인물과 그의 서사는 ‘위인’이라는 범주가 시대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가변적이고 다층적으로 해석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영웅’으로 기억되고 평가받는 과정은 단순히 그들의 역사적 업적이나 행적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복합적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며, 이는 시대에 따라 위인의 이미지를 만들고, 변화시키며, 때로는 지워버리기도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국가 권력에 의한 ‘기억의 편집’
한국 현대사에서 군사정권 시기는 위인 서사의 국가적 통제가 가장 두드러진 시기였습니다. 특히 1960~80년대 군사정권은 국정 교과서의 도입과 강제 사용을 통해 역사 교육 내용과 위인 서사를 국가의 정치적 목표에 맞게 엄격히 관리하고 편집했습니다. 이 시기에 ‘누구를 존경해야 하는가’는 더 이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규정한 공식 기억이자 권력 행사 수단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은 ‘근대화의 영웅’으로 집중 부각되었고, 그에 비판적인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은 철저히 축소되거나 은폐되었습니다. 김구나 이승만 역시 각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필요할 때는 부각되고, 위협이 될 때는 배제되는 선택적 기억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국가 권력은 위인 서사의 ‘편집자’ 역할을 수행하며, 국민 집단 기억의 형성과 유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2. 미디어 콘텐츠를 통한 ‘영웅 재현과 재생산’
국가 권력이 공식적으로 기억을 통제하는 동시에, 대중 매체는 그 기억을 재현하고 대중화하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심지어 뉴스와 SNS까지 미디어는 위인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대중과 감정적으로 연결시키는 ‘영웅 서사’를 지속적으로 생산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암살>은 김구와 독립운동가들을 ‘민족의 영웅’으로 현대 대중에게 다시 호명하며, 기억을 재생산했습니다. 반면 박정희를 다룬 다양한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는 그의 경제개발 성과를 찬양하는 동시에, 독재 권력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는 등 양면적 이미지가 혼재된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디어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위인의 의미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감정적으로 재구성하는 주체입니다.
3. 세대 교체와 가치관 변화에 따른 ‘위인 서사 재해석’
위인 서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 정치적 성향, 세대별 경험에 따라 달라집니다. 산업화와 군사정권 시절을 겪은 기성세대는 박정희를 ‘경제발전의 아버지’로 기억하며,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보다는 성취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면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세대는 박정희의 독재와 인권 탄압에 주목하며, 그를 ‘억압의 상징’으로 보는 비판적 시각을 더욱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대 교체는 위인 서사의 해석과 수용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이는 곧 사회적 기억과 정체성의 다층성을 드러냅니다.
4. 종합적 고찰
현대 정치 지도자들의 위인화와 탈영웅화 과정은 국가 권력에 의한 기억 편집, 미디어 콘텐츠의 재현, 그리고 세대별 가치관 변화라는 복합적인 메커니즘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메커니즘은 위인의 이미지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사회적 요구에 맞게 편집되는 ‘사회적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인 서사를 접할 때, 그 뒤에 숨겨진 권력 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함께 이해해야 하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존경이 ‘자연스러운 감정’인지, ‘학습된 기억’인지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비교적 안정된 존경의 자리에서 한국 사회의 ‘국민 영웅’으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그들은 시대와 정치적 입장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거의 변치 않는 상징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박정희, 김구와 같은 현대 정치 지도자들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이들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재구성되고 해체되는,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입니다. 한때는 영웅으로 숭배되었으나, 다른 시기에는 비판과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웅은 단순히 위대한 업적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억’과 ‘망각’, ‘강조’와 ‘배제’가 교차하는 정치적·사회적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고, 해체되는 복합적 존재입니다.
현대 정치 지도자의 영웅화와 탈영웅화 과정은 한국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는지, 어떤 역사를 지우려 하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를 후대에 전하려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영웅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합의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의 끊임없는 의미 투쟁이며, 권력과 이념이 맞부딪치는 장입니다.
이 글에서 다룬 ‘위인의 탄생’과 ‘재구성’ 과정은 우리 사회가 누구를, 왜,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역사와 영웅을 단순히 숭배하는 것을 넘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줄 아는 성숙한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치와 문화, 그리고 미래 세대의 삶을 설계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