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영웅 1·2위, 그 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한국인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떠올립니다. 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거의 반사적인 대답에 가깝습니다. 교과서 속에서 반복해 본 친숙한 얼굴, 지폐와 동전에 새겨져 매일같이 마주하는 상징, 학교에서 듣고 암송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이 두 인물을 ‘국민적 위인’으로 학습해왔습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백성을 가르치고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성군으로 기억됩니다. 이순신 장군은 열세의 전력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낸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됩니다. 이들의 이름 앞에는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당연하게 붙으며, 국민적 존경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마치 이 둘은 영원불변의 영웅이며, 그 지위는 태초부터 정해져 있었던 듯 보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세종과 이순신을 존경하게 된 것은 그들의 역사적 업적 때문만일까요. 아니면 그들이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강화된 사회적 구조가 있었던 것일까요.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의 선택과 편집의 산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존경해온 이 두 위인은 단순히 발견된 인물이 아니라, 시대와 권력이 필요로 했던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재구성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을 묻고자 합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왜,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국민 영웅의 1위와 2위 자리를 독점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탐구합니다. 그들의 영웅 서사가 어떤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강조되고,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 호출되었으며, 또 대중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감정적으로 소비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존경의 감정 뒤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교과서와 교육 제도, 국가 기념일과 공공 기념물, 대중문화와 미디어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 감정을 전수하며 존경을 일종의 사회적 의무처럼 만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의식하지 못한 채 이미 정해진 답을 내놓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누가 위대한가가 아니라, 왜 그들이 위인으로 불리게 되었는가입니다. 영웅의 탄생은 개인의 성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욕망, 정치적 필요, 집단적 기억이 교차하며 빚어낸 결과입니다.
이 글의 첫 장은 바로 그 출발점에서 묻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영웅은 과연 영원한 진실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도록 학습된 신화일까.
2002년, 방송사 EBS는 위대한 인물 100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시청자들이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직접 투표에 참여하여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을 뽑는 형식이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중의 목소리를 집계한, 일종의 국민적 위인 순위표였습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1위는 세종대왕이었습니다. 한글 창제를 통해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군주, 교육과 문화의 상징으로 그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2위는 이순신 장군이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지켜낸 불패의 장군, 명량해전의 주인공으로 그는 세종에 이어 국민적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김구, 안중근,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이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당시의 결과는 해방 이후 형성된 민족사적 기억과 교육이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순위는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한국갤럽이 실시한 전국 조사에서 1위는 이순신 장군이 차지했습니다. 약 14퍼센트의 응답자가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습니다. 세종대왕은 10퍼센트로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단발적인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2014년, 2019년에 이어 세 번째로 이순신이 1위를 유지한 것이었고, 이미 10년 넘게 그는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의 정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변화를 이끌었을까요.
2002년 당시에는 세종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문자 창제라는 업적은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었고, 교육과 문화의 중요성이 높이 평가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2014년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세종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 배경에는 영화 명량의 초대형 흥행이 있었습니다. 천칠백만 명이라는 역대급 관객 수는 단순한 영화의 성공을 넘어, 집단적 기억의 지형을 뒤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이후의 조사에서도 흐름은 이어졌습니다. 2019년, 경제적 불안과 정치적 혼란, 국제 정세의 긴장이 맞물리면서 국민은 위기 극복의 리더십을 더욱 갈망하게 되었고, 이순신은 그 필요를 채워주는 상징으로 다시 호명되었습니다. 2024년 조사 역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질서와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세종보다는 전쟁과 생존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로서 이순신이 더 적합한 영웅으로 떠올랐던 것입니다.
즉,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종대왕이 상징하는 문화와 교육의 리더십이 존경의 중심이었다면, 2010년대 이후에는 위기 시대의 불안이 국민 의식에 깊게 자리하면서 이순신이 국민적 영웅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존경의 대상을 바꾼 것은 인물의 업적이 아니라, 사회가 처한 시대적 조건과 그 속에서 국민이 갈망하는 리더십의 형태였습니다
2002년 EBS 조사에서 상위권에 올랐던 이름들을 다시 살펴보면,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구, 안중근, 윤봉길 등은 민족 해방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로, 해방 이후 국가 정체성을 세워가는 과정에서 국민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자리했습니다. 특히 김구는 임시정부의 지도자이자 도덕적 상징으로,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도덕적 위인’의 위치를 점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에 대한 존경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한국인의 존경 목록에서 밀려난 이유는 단순히 국민이 그들을 잊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해방 이후의 정치적 현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분단의 문제입니다. 김구는 남북을 아우르는 통일을 지향했지만, 분단 현실 속에서 그의 비전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노선과 정세에 따라 그의 이미지는 시대마다 다르게 해석되었고, 국가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국민적 위인’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국가주의적 필요입니다. 군사정권 시절, 정권은 체제 유지를 위해 특정한 역사 인물을 집중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이순신은 국난 극복의 영웅으로, 세종은 문화와 과학을 발전시킨 성군으로 선택되었습니다. 두 인물은 정치적 논란이 거의 없는, 안전한 영웅이었습니다. 반면 독립운동가들은 특정 노선이나 이념적 갈등과 연결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교과서와 국가 기념에서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습니다.
셋째, 대중문화적 재현의 문제입니다. 세종과 이순신은 수많은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며 친숙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장면으로, 이순신은 바다 위에서 결전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수없이 소비되었습니다. 반면 독립운동가들은 간헐적으로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다뤄졌지만, 대중적 파급력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독립운동가들은 여전히 존경받지만, 국민적 기억의 중심 무대에서는 점차 비켜서게 되었습니다. 대신 세종과 이순신이 존경의 1위와 2위를 독점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습니다. 이 두 인물은 교육, 정치, 문화, 미디어 전반에서 안전하게 호출할 수 있는 상징이 되었고, 국가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안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이는 존경의 대상이 단순히 역사적 업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상징의 안정성과 재현 가능성에 따라 선택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국민 위인 1위와 2위를 다투게 된 것은 단순히 그들의 뛰어난 업적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 역사 속 세종과 이순신은 인간적인 고민과 한계를 지닌 존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이미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재구성되었습니다. 그 과정에는 각 시대마다 달랐던 정치적 필요가 깊숙이 작용했습니다.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에게는 일본의 지배 속에서 민족 정체성을 지켜야 할 과제가 있었습니다. 이때 세종은 문자를 창조하고 문화를 발전시킨 성군으로 불려나왔습니다. 그는 민족적 자존심의 원천으로 소환된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이 이미지는 이어졌고, 세종은 교육과 과학을 발전시킨 이상적 군주의 얼굴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 이순신은 일제에 맞선 상징적 영웅으로 적극 활용되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전쟁을 잘한 장수가 아니라, 불패의 구국 장군이자 민족 정신을 지켜낸 지도자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군사정권 시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해졌습니다. 권력은 국민을 단합시킬 수 있는 안정된 영웅을 필요로 했고, 세종과 이순신은 정치적 갈등이나 이념적 논란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세종은 문화적 자존과 합리적 통치를 상징했고, 이순신은 위기 극복과 충절을 대표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본래의 역사적 의미를 넘어 권력이 필요로 하는 가치에 맞게 기억되고 재해석된 존재였습니다.
이순신이 존경받는 인물 1위로 부상한 데에는 2014년 영화 명량의 흥행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1761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사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영화 속 이순신은 외로운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극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백의종군으로 치욕을 감내하는 장면, 고작 13척의 배로 일본 수백 척에 맞서는 명량해전의 클라이맥스, 그리고 “두려움은 나의 적이 아니다”라는 대사까지. 관객은 단순히 전투 장면을 본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한 지도자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했습니다.
그 순간 이순신은 단순한 전략가가 아니라 국민의 아버지 같은 지도자, 고통받는 시대를 이끌어주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역사적 업적 못지않게, 대중이 직접 경험한 문화 콘텐츠가 영웅 서사를 재편성한 셈입니다. 실제로 2014년 이후 존경받는 위인 조사에서 이순신은 세종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이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한 편의 영화가 국민적 기억을 재배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사실보다 문화적 체험이 더 강하게 기억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영웅은 발견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종과 이순신을 존경하는 것은 단순히 감정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닙니다. 존경은 마치 프로그램처럼 설계되고 반복되는 집단적 구조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위인전과 학습만화를 통해 이 두 인물의 이야기를 접합니다. 교과서에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와 이순신의 명량해전이 반드시 등장하고, 국경일 행사에서 그들의 업적은 반복적으로 강조됩니다. 성인이 된 뒤에도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게임 속에서 두 인물은 끊임없이 재현됩니다.
이러한 문화적 반복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종과 이순신을 존경해야 한다는 감정을 사회적으로 학습시키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존경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짜여진 틀 속에서 존경을 수행하는 셈입니다.
결국 존경은 기억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에서 직접 흘러나온 자발적 감정이 아니라, 교육과 미디어, 정치가 함께 설계한 집단적 프로토콜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위인이라는 존재는 실존 인물의 업적과 더불어,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문화적 선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영웅은 과거처럼 단순히 위대한 업적을 이룬 역사적 인물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중과 개인의 감정적 공감과 몰입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천재적인 지성과 인자한 통치자의 이상형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의 이미지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군주로서, 사회를 질서 있게 다스리는 동시에 백성을 사랑하는 따뜻한 지도자로 그려집니다. 훈민정음 창제라는 문화적 혁신과 함께 ‘지혜로운 왕’이라는 상징성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엘리트주의와 학구열을 자극합니다. 반면 이순신은 ‘외로운 영웅’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은 오늘날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사회 현실과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그의 충절과 희생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개인이 겪는 고통과 시련에 대한 상징적 치유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영웅은 단순히 업적만으로 소비되지 않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게임, 그리고 소셜 미디어 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감정 소비가 이어집니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의 영웅담을 극적으로 재현하여 관객에게 강렬한 몰입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드라마는 세종의 인자한 리더십과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며 대중과 친밀하게 연결했고, 다큐멘터리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인간적인 고민을 비추며 균형 잡힌 인식을 만들었습니다. 게임과 SNS 밈은 젊은 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영웅 이미지를 유희적이고 창의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양한 미디어가 서로 얽히며 영웅 이미지는 끊임없이 강화되고 확산됩니다. 이 과정에서 존경의 핵심 요인은 역사적 진실에 근거한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 대중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수용하고 공감하는가로 이동했습니다.
세종과 이순신 같은 전통적 인물뿐 아니라, 오늘날에는 대중문화와 스포츠, 방송 분야의 스타들이 새로운 세대의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BTS, 손흥민 선수, 그리고 유재석 씨를 들 수 있습니다.
BTS는 전 세계적 팬덤을 만들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음악과 메시지는 청춘의 고민, 사회적 문제, 자아 실현 같은 주제를 담아내며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단순히 노래하는 그룹을 넘어 세대 간 소통과 희망의 상징으로 인식되며, 팬들과의 깊은 정서적 교감을 통해 현대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손흥민 선수 역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겸손과 성실함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주었습니다. 그의 존재는 단순한 경기 기록을 넘어 성공과 도전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유재석 씨는 오랜 시간 ‘국민 MC’로 불리며 대중의 폭넓은 신뢰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꾸준한 소통과 겸손함, 그리고 진정성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그의 이미지는 예능인을 넘어 사회적 지도자에 가까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안정감과 희망을 주는 인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감정적 연결과 몰입입니다. 대중은 이들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고 어려움을 함께 견디는 동료로 받아들입니다. 미디어는 더 이상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영웅과 대중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SNS, 팬 커뮤니티, 라이브 스트리밍은 영웅 신화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영웅은 먼 과거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생성되고 소비되는 감정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과연 얼마나 ‘진정한 존경’에 바탕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정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존경해서 존경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와 교육, 미디어가 ‘존경하라’고 가르쳐온 것일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무례한 의심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닌 위대함을 부정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의도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물음은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 의미를 내면화해왔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입니다.
세종과 이순신은 단순한 과거 인물이 아니라, 시대마다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와 이상을 투영한 상징이자 표상입니다. 한글 창제라는 문화적 혁신의 이면에는 왕권 강화와 사회 통제라는 권력의 욕망이 자리했고, 이순신이 무패의 장군으로 그려지는 모습은 국가주의와 대중의 희망, 불안이 뒤섞여 만들어낸 신화적 산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역사는 결코 ‘발견된 진실’이 아니라, 언제나 ‘편집되고 가공된’ 결과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란 기록자와 권력자, 그리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면서 그 모습이 달라지는, 살아 있는 서사입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은 한국인의 집단 정체성과 자긍심을 형성하는 거대한 상징이 되어왔습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국민들은 문화적 자부심과 국가적 단결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 신화는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나 불변의 사실이 아니라, 시대적 조건과 정치적 이해관계, 사회적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다시 쓰여진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여정은 단순한 숭배를 넘어서서, ‘진정한 존경’이란 무엇인지 묻는 성찰의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과거의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를 설계하는 지도가 됩니다. 그 지도 위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낯선 지형과 숨겨진 진실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지도를 새롭게 읽고,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목소리와 현실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존경과 성찰이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