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보다 먼저 지켜야 했던 마음
어릴 때, 엄마가 자주 힘들어 보였다. 울고 있는 엄마를 볼 때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몰랐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외롭고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감정들을 꺼내기보다는 조용히 삼켰다. 방으로 돌아가 이불 속에서 조용히 혼자 울었던 밤들이 기억난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까지 힘들어하면 안 된다’는 문장이 마음속 어딘가에 새겨졌고, 그 문장은 점점 내 삶의 태도가 되었다.
어떻게든 엄마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 자신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정을 꺼내기보다는 감추는 쪽을 택했고, 누군가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데 익숙해졌다. 그 선택은 오랜 시간 지나 성인이 된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따뜻하다”, “스윗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말들이 들릴 때면 고맙게 웃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상하게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일까. 그런 마음으로 나 자신을 대해본 적이 있었던가. 마음 한켠은 조용히 금이 가 있었고, 웃고 있는 얼굴 뒤에서는 종종 어떤 기운이 꺼져가고 있었다.
감정을 억제하려고 한 건 아니다. 오히려 북받치는 순간은 자주 있었고, 그럴 때마다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만 꺼낸 후에 돌아올 반응이 무서웠다. 실망할까 봐, 이상하게 보일까 봐, 그 후가 어색해질까 봐. 그래서 늘, 삼키는 쪽을 택했다. 억제를 잘한 게 아니라, 그게 나에겐 더 안전해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다정한 척하며 살아왔지만, 문득문득 균열은 찾아왔다. 어떤 날은 혼자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고, 이유 없이 엉엉 울었다. 드라마 때문이라고 넘겼지만, 정말 그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울고 싶었던 마음이 마침 그 장면을 빌미로 터져나온 것일까. 그날 밤,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말했던 것 같다. “괜찮지 않았구나.”
그때 이근후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조용한 사람이라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가장 위험한 건, 스스로 아프다는 걸 모르는 상태예요.”
그 말이 조용히 마음속에 내려앉았다. 그동안 나는 괜찮은 사람인 척하면서, 내 마음의 신호를 계속 외면해온 것 같았다. 잘 지내는 줄 알았지만, 속에서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던 것.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잘 웃고, 잘 들어주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힘들다고 말해보는 것, 수고했다고 혼잣말이라도 건네보는 것, 타인에게만 건네던 다정한 말들을 나에게도 조금씩 꺼내보는 것. 그렇게 천천히 연습 중이다.
어쩌면 진짜 다정함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내 마음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먼저 살피는 데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혹시 당신도, 오래도록 다정한 사람인 척 살아오진 않으셨나요?
이근후 선생님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가는 지금, 당신의 마음도 그 안에 함께 담아보려 합니다.
이 글이 당신의 하루에, 조금은 따뜻한 숨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