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움직였다는 말 앞에서 멈춰버린 순간

by 시대 메신저

요즘 뭘 고르는 게 너무 어렵다. 카페에서 음료 하나를 고를 때도 오래 걸리고, 친구에게 보내는 문장 하나를 쓰는 데 며칠씩 고민한다. 큰 결정도 아닌데, 사소한 선택 하나에도 괜히 마음이 무겁고 조심스러워진다. 고르지 못한 채 지나가는 하루가 많아졌고, 넘긴 일들은 다시 내게 돌아와 쌓인다. 쌓인 것들이 많아질수록, 그 중 하나라도 잘못 고르면 전부가 틀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엔 여행 하나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갈지 말지, 간다면 어디로, 언제쯤. 처음엔 그냥 일정을 조정하는 일이었는데 이젠 감정이 자꾸 앞서버린다. 어딘가로 떠나는 선택이 지금의 내 상태를 증명하는 일 같고, 떠나지 않는 선택은 어디에도 나를 놓지 못하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이걸 못 정하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그 마음을 마주할수록 사실 나는 나를 다그치고 싶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건 단지 여행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워졌을까. 무엇이 나를 자꾸 망설이게 만들까.


지금 난 두 개의 문 앞에 서있다.

눈앞에 놓인 두 개의 문 앞에서, 어느 쪽도 쉽게 열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게 문이 아니라, 벽이었으면 좋겠다고.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틀리지 않아도 되고, 머물러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근후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몰랐어요.
그냥 했어요.
그리고 돌아보면,
그게 옳은 방향이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틀려도 괜찮다’는 어떤 태도가 스며 있었다. 너무 낯설었다.


아직도 움직이는 게 무섭다. 틀릴까 봐. 잘못된 길로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까 봐.

그래서 머문다. 가만히 있으면서, 괜찮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끝없이 계산한다.

어쩌면 나는 성공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조용하게,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거다. 그런 내 마음 위로 선생님의 말이 가만히 얹혔다.


그냥 했어요.

그 말은, 무모한 시도에 대한 미화가 아니었다. 살아보겠다는 사람의 태도였다. 정답을 몰라도, 일단 살아보기로 한 사람의 말이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택해야 조금은 더 나답게 살 수 있을지. 하지만 요즘은 스스로를 자꾸 설득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지금 고르지 못하고 있는 건,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버티기일 수도 있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움직이지 않아도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틀리더라도, 그 길을 걸어본 나를 나중에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 살면서 그런 말 한 줄이라도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방향이 나를 지켜줬던 것 같아요.”





혹시 당신도, 선택이 망설여지고 머뭇거리셨나요?
이근후 선생님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가는 지금, 당신의 마음도 그 안에 함께 담아보려 합니다.
이 글이 당신의 하루에, 조금은 따뜻한 숨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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