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버티는 거고, 어디부터가 무너지는 걸까
나는 자주 나를 몰아붙인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기준은 언제나 내 쪽에서 먼저 높아졌다. 조금 아파도, 잠을 못 자도, ‘이 정도쯤은 괜찮아’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고 그걸 통과해야만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게 꼭 필요하거나 옳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나다운’ 거라고 믿고 있었다.
작년 가을, 100일 동안 매일 달리겠다고 선언했다.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 목표를 꺼냈고, 그 순간부터 그건 나 혼자만의 약속이 아니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지켜내는 나, 포기하지 않는 나,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몸이 조금 아파도, 잠을 줄여서라도 나가서 뛰었다. 같은 거리를 더 빠르게, 느리더라도 더 오래.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나아야 한다는 마음이 자꾸 기준을 올려놓았다. 겨울이 다가오던 저녁, 조금 오래 달렸을 뿐인데 감기에 걸렸다. 몸은 분명 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 때도 바로 쉬지 않았다.
"이틀만 버티자. 금방 나아질 거야."
그 말이 몸에 붙어 있었다. 그게 익숙했고, 나는 그런 나를 성실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걸.
이근후 선생님은 어느 날 아주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완벽적인 건 없어.
어금니 깨물지 말고 살아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늘 긴장한 채 살아왔고, 그게 나를 지탱해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너무 오래 힘을 주고 있었다는 걸,, 선생님의 한 마디가 알려주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달라지진 않았다. 아직도 잘하고 싶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말들이 자주 떠오른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럴 때마다 조금은 힘을 빼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내게 자주 말해준다.
“80%면 100점이야.”
이 말이 진심으로 느껴지진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 반복한다.
조금은 느슨하게 살아보자고.
쉬어도 괜찮다고.
안 해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잘 견디는 사람보다 덜 조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금니를 덜 깨물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대신,
조금씩 나를 놓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만 힘줘도 돼요.
어금니 깨물지 않아도 괜찮아요.”
혹시 당신도, 오래도록 힘주고 살아오진 않으셨나요?
이근후 선생님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가는 지금, 당신의 마음도 그 안에 함께 담아보려 합니다.
이 글이 당신의 하루에, 조금은 따뜻한 숨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