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만, 내가 아닌 것 같을 때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낯설었다

by 시대 메신저

“너가 정말 원하는 게 뭐야?”

이 질문을 들으면 늘 말문이 막힌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질문이 바쁘게 살아오던 삶을 잠시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과, 그렇다고 뚜렷하게 원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막막함, 그 두 감정이 겹쳐서 자주 그 질문 앞에서 멈춰버렸다.


늘 열심히 살아왔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내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애썼고, 누구에게도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고, 무언가를 잘 해내는 걸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멈추면 안 되는 사람이 됐다. 빈 시간이 있는 것이 불안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돌아보면 나는 방학 때도 매일 학원을 세 개씩 다녔던 사람이었다.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냥 그런 식으로 살아왔고, 그 리듬이 익숙했다. 시간표가 빽빽해야 안심됐다. ‘이만큼은 해야지’라는 마음이 늘 따라붙었다. 그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야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리듬이 전부가 아니라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최근 나는 주로 숫자와 서류를 들여다보며 일한다. 지금 하는 일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비용을 정리하고, 숫자를 맞추고, 예산을 검토하는 일이다. 문득,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나 싶은 마음이 자꾸 올라온다.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이 불쑥불쑥 찾아오고, 특히 돈과 관련된 일을 할 때면 더더욱 내가 나를 못 믿겠는 마음이 커진다.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실수라도 하면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까, 그 불안이 덜컥 마음을 채운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더 긴장하고, 하루하루를 ‘실수 없이’ 살아가려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조용히 숨이 막힌다. 지금도 나는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자꾸 내가 나 같지 않을까. 그렇게 살아온 게 익숙했지만, 이제는 그 익숙함이 점점 나를 버겁게 만든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더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뭔가에 끌렸다가도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일까?’라는 질문이 자꾸 따라붙는다. 욕심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움츠러들고, 내가 내 길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속이 답답해진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지금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내 리듬이 너무 쉽게 흔들리는 나를 마주할 때다. 누가 “넌 이런 거 잘 어울려”라고 말하면 그게 정말 맞는 말인지보다, “그럼 내가 원했던 건 틀린 건가?” 하고 먼저 불안해진다. 지금까지는 타인의 말에 민감한 내가 예민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민감함 속에서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를 더 자주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근후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야금야금해요.”
“계단을 생략하면 꼭 문제가 생겨요. 한 칸씩 밟아야 해요.”

그 말은 방향을 정하라는 말도 아니었고, 완성에 도달하라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여기, 할 수 있는 만큼의 리듬으로 살아보라는 말.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만 하던 나에게 처음으로 다정하게 속도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해준 말이었다.


아직도 조급하고,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면 무서워지고, 일이 줄어들면 내가 불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마음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럴 수도 있어’ 하고 말해주는 내가 생겼고, 그게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단 하나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혹시 당신도 어디까지가 진짜 나의 선택인지 헷갈리며 살아오진 않으셨나요?
이근후 선생님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가는 지금,
흔들리는 마음 한가운데서 조금씩 나의 리듬을 다시 살아가보려 합니다.
이 글이 당신의 하루에,
조금은 따뜻한 숨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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