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대하여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2021)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이지만, 레이저 총과 검이 등장하는 대신 휴머노이드와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긴장감과 감동을 준다.
작중 배경은 휴머노이드가 발전하여 일상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사회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감정이 있다고 생각되진 않으며, 그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인간을 모방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애프터 양’이란 제목 그대로 갑자기 한 가족의 가족과 같은 휴머노이드 ‘양’이 고장나 잠들게 된 이후의 변화를 통해 가족의 새로운 의미가 무엇인지 탐색하게 된다.
2021년에 개봉한 애프터 양의 내용은 마치 AI와 심리상담을 하고, 때론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하는 현 시대를 앞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로 10년, 20년 뒤엔 휴머노이드가 정말로 가족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호기심을 가지며 이번 2-2 <읽, 보, 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영화 초반부에 양은 가족이지만, 조금은 애매하게 그려진다. 양은 아이의 문화적 정체성을 교육하기 위해 제작된 휴머노이드로로 도입되어 딸 미카에겐 진정한 친구이자 가족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제이크와 카이라는 양이 인간이 아님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양이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함께 댄스 게임을 하는 등,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자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존재를 이미 커버린 어른들이 보기엔 인간과 유사한 무엇인가로 보일 뿐이다. 결정적으론, 영혼의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이 죽기 이전까지 가족들이 알던 양의 모습은 전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양 이후에’ 양이 3초씩 남긴 기억들을 토대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양이 정말 누구였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게 된다.
양은 리퍼부품이 포함되어 한 가지 오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3초씩 원하는 장면을 기억처럼 저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이 기억을 선별하는 것의 기준은 계속해서 모호하게 보여졌다. 어쩌면 랜덤한 순간에 단지 명령대로 기억할 뿐인 CCTV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양의 저장속에서 기준점이 되는 존재가 나타난다. 사실 양에겐 에이다라는 친구가 있었으며, 그녀는 양이 사라지자 걱정하며 가족들 앞에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 또한 누군가의 클론이었으며, 양은 원본이었던 사람을 사랑했고, 우연이 마주하게 된 그녀의 클론 또한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영화가 테세우스 배의 역설을 말하고 싶은가 생각했었다. 사실 그보다 원초적인 오류에 관한 이야기였다. 잊을 수 없을 만큼 사랑했던 이를 떠올리기에 자연스럽게 그녀를 본뜬, 어쩌면 분자의 일부가 깃들었을 수도 있는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는 양의 모습이 마치 인간과도 같다. 명령대로 수행하는 알고리즘이 아닌, 비이성적인 어떤 이유로 인하여 선택을 하는 오류처럼 말이다.
AI에게도 인간성을 찾을 수 있을까? 영화에선 그것을 양에게 발생한 ‘오류’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양의 오류란 완벽할거 같았던 휴머노이드에게 발생한 것으로, 매일마다 양이 마음에 드는 순간 3초씩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양 이후에 제이크에 의해 관람된다. 마치 은하수를 탐험하는 것과 같이 파편들이 검은 세상 속에 반짝반짝 빛나며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시 인간성으로 돌아와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인간성이란 기계적인 것과 반대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완벽하진 않지만 따스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억에 있어선 일부는 잊고 일부는 과장하여 기억하곤 한다. 마치 양이 오류를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로.
화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지자면 양의 오류를 인간성과 동일시 할 순 없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 만들어질 모든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양의 오류가 인간성과 동일하게 작용한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속엔 매력적인 포인트들이 정말 많다. 미니멀리즘한 카메라와 미장센들. 절제된 움직임과 모더니즘 건축물들이 마구 흔들어대는 영화들 속에서 더욱 빛난다.
하지만 역시 의미적으로도 인공지능을 다루는 다른 영화들보다 한 수 더 깊었다고 생각이 든다. 1차원적으로 ‘AI에게 영혼이란?’을 묻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양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그것을 시청하는 관람객을 통해 이미 끝나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관계를 통해 비애와 같은 감정을 끌어 올린다.
결국 AI에게 양과 같은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인간의 영혼과 같은 방식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언어 문법 그리고 문화에 의해 사유된 것이라면 완전히 아니라고 보기도 힘들다.
설령 우리와 완전히 다른 존재(다른 인종, 심지어는 사이보그까지)가 우리의 문법과 문화를 따를 때, 우린 이를 다름보단 유사함에 집중해야하지 않을까.
참고 문헌
코고나다, <애프터 양> (2021)
김철홍 평론가, ’'양'이라는 영화가 박물관에 전시된 이유에 대하여’ (2022)
유해, ‘<애프터 양> 네가 우리의 네가 되기 전에’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