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픽업에 밥에.. 작은 부탁도 다 들어주는데 고작 멀지도 않고 거실에 있으면서 거실 창문을 닫아달라는 것도 안 하겠다? 너무 한 거 아닌가?
사춘기인 걸 감안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감정 내려놓고 다시 말을 했다. 이유까지 설명.
나: 창문 반만이라도 닫자. 어려운 것도 아니고.
딸: 어려운 거 아닌데 엄마가 하면 되잖아.
난 그림 그리고 있어.
나: 잠깐 내려놓고 금방 닫을 수 있잖아.
결국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하면 너는 닫지 않니? 이런 말도 나왔고 딸은 선생님은 뭐 하고 있을 때 그런 거 안 시킨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말꼬리가 잡히게 된다.
나는 목소리가 작은 편에 톤도 약간 낮은 편이고
딸도 감정이 격해지진 않는데...
서로 오고 가는 말들은 완전 유치해지기 시작한다. (말하면서도 느껴지는 유치한 대화)
중간에 이런 생각이 든다. 난 어른이고 얘는 애인데 서로 왔다 갔다 말은 서로 안 지려는 기싸움 같다는...
난 친구가 아니고 가르쳐야 하는 어른인데... 약간 말리고 있는 느낌이다.
둘째가 나와서 우리의 말다툼을 구경한다. 왔다 갔다 여자들 말싸움이 약간 재밌는지 혼자 가끔 웃기도 한다. 눈치는 있어서 소리는 안 내고...
오늘은 딱 창문 이야기로 끝났어야 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니... 평소에 양말을 침대 속에 쌓아두는 이야기며.. 엄마는 밥하고 빨래하고 픽업하고 책 빌려주고 반납하고... 등등 그게 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하기 싫고 귀찮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엄마가 슈퍼 심부름도 너에게는 안 시키지 않느냐? 이야기가 길어졌다.
딸: 엄마가 슈퍼 심부름은 안 시킨 거잖아.
나는 그럼 지금 시키면 갈 거냐?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되묻는다.
딸도 화는 안 내면서 조근조근 대답하고 질문한다.
아빠가 중재하러 옴.
딸은 그때서야 (나름의 억울함에) 눈물이 흘렀고 아빠의 말 몇 마디에 조용해졌다.
아빠도 막내에게는 좀 더 차분하게 말을 한다.
딸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창문을 닫으라고 해서
싫었던 거라고 한다.
남편은 그 스케치북도 부모가 사준 거지 않냐고 말한다.
딸은 이 스케치북은 학교에서 받은 거라고 답한다.
남편은 학교도 부모가 보내준 거라고 말하고 끝을 낸다.
남편의 마지막 말: 스케치북도 부모가 너를 사 준거고 엄마, 아빠 밑에서 사는 동안에는 가족으로서 심부름은 해야 하는 거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고 막내라서 정말 귀엽고 예쁜데... 아들들과는 또 다른 이런 면들이 쉽지가 않다.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아닌가? 아빠에게는 권위가 느껴지고 엄마는 만만하고 편해서 그런 걸까?
컵을 아무 곳에나 두는 습관 이야기를 하면..
딸은 '엄마도 그런 적 있지 않느냐?'로 응수한다.
그럼. 난 양심상 그런 적 있었던 기억이 나면서 '그래도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라고 하면서..
약간 찔려하고.. 딸은 그걸 또 아는 거다. 엄마도 실수 잘하고 엄마는 자신이 뭐라고 하면 마음 약해서 뭐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평소에는 사랑스러운 딸이긴 하다. 저번에 문제집 채점을 하다가 라운이(강아지)와 엄마를 큼지막하게 적어놓고 하트로 예쁘게 꾸며 놓은 것을 보았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며^^) 요즘엔 엄마가 머리 쓰다듬는 것도 싫은 내색이라.. 그날 그걸 보곤 감동을 받았다. 그리곤 딸에게 물어봤다.
나: "엄마랑 라운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적어놓고 하트를 큼지막하게 그려놔서 엄마 감동받았어."
딸: 미소 지으며 웃더니.. "그걸 본거야?"
묻는다.
나: "응. 난 우리 딸이 사춘기 와서 요즘엔 예전처럼 엄마가 좋지 않은 줄 알았거든. 근데 엄마를 엄청 사랑하는 거 같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