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기르면서 초등학교까지는 무조건 놀아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학원은 예체능만 보냈고 방과후 조차도 공부쪽은 시켜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실컷 놀아본 경험이 커가면서 큰 자산이 될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실컷 놀았던 나의 어린 시절 경험' 이었다. 부모님께서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해보신 적이 없었고 주말마다 시골에 가고 놀러다니기 일쑤였다. 집 형편이 좋지 않아서 고속버스로 다닌 적도 있었고 주로 사촌네집, 할머니댁에 가는 게 전부였지만... (그 당시 토요일 오전에 가는 학교 수업 결석이 잦았다.) 그래도 좋았다.
서울에 살았지만 기본 정서는 '시골 아이' 처럼 성장한 것 같다. 상상놀이를 하고 꽃으로 왕관과 반지를 만들며 시골 노래 자랑에 나갈 춤과 노래를 연습하기도 하고... 구불 구불 논을 걸어다니며 놀았다. 놀고 밥 먹고 또 놀고의 반복.
* 삼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어린 시절, 충분히 어린 아이로 살아갈 권리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
자유놀이, 시간 제한 없는 놀이, 틀이 없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어떤 날은 보드게임만 8시간을 한 적도 있고 개미 굴을 파고 밤 늦게 산에 가서 사슴벌레를 관찰하고.. 집에 있는 냉장고 만한 택배 박스로 집을 짓고 놀고... 방 한칸은 레고 놀이방으로 2~ 3년 정도 그냥 두었다. 정리하지 않고 아무 때나 들어가서 놀 수 있는 놀이방으로.. 청소도 할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은 지금도 그때의 행복한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랬던 아이들도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니 학원도 다니게 되고.. 영어와 수학만 다녀도 바쁜 일상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는 이제 동생들과 보드게임을 할 시간적 여유도 줄었다.
내신도 챙겨야하고 학원 숙제도 있고 대입도 부담이 되는 것 같다.
늘 놀기만 하던 큰 아이는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시험에 대한 부담만 없다면 배우는
게 즐겁다고 하고 더 알아가는 것이 신난다고 한다. 지금도 표정에 찌듦이 없다. 꿈을 향해 매진 중이다.
얼마전에 다시 물었다.
"너에게 공부라는 단어의 첫 느낌이 어때?"
"잘하고 싶은 어떤 것이요. 시험만 아니면 배우는 게 재밌어요."
라고 대답했다.
코로나가 왔다.
그래서 아이들 놀이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만화책이다. 코로나로 전처럼 야외에서 놀 수 있는 상황도 줄었고.. 둘째는 친구들이랑 야구, 농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친구들이 학원을 가서 놀 친구가 거의 없었다.
중학생만 되어도 친구들이 2부류로 나뉜다.
1. 학원에 가서 밤 11시부터 시간이 나는 친구.
2. 공부보다 게임으로 승부를 건 친구. (이 친구들은 주로 게임 시간 제한이 없다.)
우리 아이처럼 중간 부류에 속하는 아이는 설 공간이 없다.
그래서 엄마인 내가 선택한 것은 '만화책' 이다.
주로 둘째와 막내를 위한 즐거움의 시간을 확보해주고 싶었다. 방학에는 특히 수 많은 시간.. 쉬면서 맘껏 자유시간을 누렸으면 싶었다.
고등학생이 아니니 공부만 종일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같이 놀 친구들도 많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다행히 막내는 소설 책을 좋아해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곤 한다.
만화를 보며 키득거리고 과자를 집어 먹으며 만화 페이지를 넘기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내가 더 행복해진다. 웃다가 부신 라면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난 얼마전에도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잔뜩 빌려왔다. 버스 타고 오면서... 손은 아파도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