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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즌트 Jul 18. 2022

전... 사춘기 아이가 부럽습니다. ㅠㅠㅠ

도둑맞은 사춘기 그러나...

가게에 딸린 작은 방 한칸에 네식구가 살았다. 엄마는 가정 일과 가게 일을 동시에 했고 밥 먹다가도 손님이 오시면 물건을 파셔야 했다. 물건을 오래 고르는 손님들이 미울 법도 한데... 구경만 하고 가는 손님도 '또 오세요.' 하며 보내고 다 식은 국과 밥을 입속에 집어넣으셨다.


엄마는 그 당시 순종적이고 얌전했던 나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우리 딸은 어쩜 항상 엄마가 입으라는 옷만 입고... 뭐 사달라 소리도 안 하고... 한번도 떼를 쓰거나 한 적이 없을까? 사춘기도 없고..."



그런 말들을 들으며 자란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엄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반항이라곤 해본 적 없었던 착한 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사춘기를 유예시켰다. 


1. 고생하시는 엄마, 아빠가 불쌍해서 나라도 말을 잘 들어야 했고...

2. 뻔히 가난한데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주지 못해 슬퍼하실 엄마, 아빠의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3. 사촌집에 가끔 신세를 져야하는 부모님을 난처하게 하기 싫었고... 몇 시간을... 비좁은 남의 차에 껴서 탈 때 자리가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짜증도 내지 못했다.


그럴수가 없었다. 조용히 얌전히 가만히 있으면 되니까.


엄마, 아빠가 남에게 더 미안해지게 만들면 안되니까. 나는 엄마, 아빠의 마지막 자존심인 착한 딸이니까.


착한 딸로 25년간 지내온 시간. 


나는 제때 사춘기를 겪지 못했다. 학교 친구들이 엄마랑 싸웠다 하고 엄마때문에 짜증난다 할 때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엄마라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미워하는 그들이 이상했다.


결혼 후에도 엄마는 나에게 그런 딸을 기대했고 나는 그 틀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3년간 엄마의 전화를 받는 것도 피하고 싶을 만큼... 아팠다.


엄마는 변한 딸. 아니 원래 그랬을 존재였던 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셨고 나도 엄마와 분리하여 성숙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엄마와 더 편해졌다.



우리 아이들의 사춘기.
난 아이들이 그 나이에 맞게 짜증도 내고 가끔 소리도 지르는 모습이 어딘지 반갑다.
나도 저때 저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때에 맞게 거쳐가는 과정.. 건너뛰면 결국 뒤늦게 찾아온다.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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