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채널의 주인공은 나야 나
다섯번째 이야기
#9 상담사와의 만남
난 상담이 내키지 않았다. 내 얘기를 꺼내는 것도 익숙치않고 어색하게 어른이랑 앉아서 무슨 말을 하는 것도 귀찮고 다 싫었다. 5번만 하면 되니까... 그냥 좀 버티다 나오면 되겠지.
내키지 않는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어딘지 진지한 눈빛에 나이도 좀 든 여자가 일어나 나를 반긴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고 당황스럽다. 그래. 5번만 하면 된다니까.. 다음 심리검사에서는 좀 좋게 체크해야겠다.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게....
“반가워. 너가 유영이니?”
“네.”
‘되도록 말은 짧게 단답형으로 해야지.’ 생각했다.
“담임선생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
“그냥... 상담 5번 받아야 한다고..”
“이유는 따로 말씀 안 해주셨어?”
“우울하고.. 뭐 검사결과가 안 좋대요.”
“응. 그러셨구나. 너는 어떤 거 같애?”
“뭐가요?”
“너 자신이 건강한 거 같은지 아니면...?”
“잘 모르겠어요. 그냥 검사할 때 좀 컨디션도 안 좋고... 그냥 좀 안 좋게 체크한 거 같아요.”
“그럴 수도 있는데 전반적으로 그것도 고려해서 만든 검사라서 비교적 정확도가 높아.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울한 상태야.”
“그냥 공부도 그렇고... 뭐 엄청 좋은 일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뭐... 힘든 것도 없어요. 딱히. 근데 별 할 얘기 없으면 상담 5번 안 와도 되나요?”
“힘든 게 없다니까 말인데 유영아. 5번 안에 큰 변화가 없으면 더 와야할지도 몰라.”
“네?” 그 말은 충격이었다. 절대 싫다.
“아빠가 안 계시다고 들었어. 그것만으로도 내가 너라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
‘개인정보를 가지고 들이미시겠다 이건가?’
“...... 그냥 좀 지나니까 그건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괜찮아지게 된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말해 줄 수 있어?”
아. 당황스럽다. 괜찮아진 이유? 머리가 멍해진다. 내가 이상한지 괜찮은지도 사실 생각을 안 해봤다.
대충 얼버무려도 이 사람은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함. 이 사람은... 자꾸 내 속 얘기를 꺼내라고 문을 두드리는 거 같다. 난 시계만 쳐다본다. 그냥 말을 최대한 아껴서 꼬투리를 안 잡히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냥 가만히 있어볼까?
“응. 끝나는 시간은 아직 30분 정도 남았어. 내가 시계 보니까 안심하고 계속 집중하면 돼. 아까 내가 한 질문에 답은 생각이 났니?”
클났다. 계속 기다리고 있다니... '뭐라고 말해야하지?'
"잘 모르겠어요."
"아빠랑 헤어진 게 몇 년 되었어?"
‘이제 구체적으로 밀고 들어오시겠다 이건가?‘
“아빠 얘긴 하고 싶지 않아요. 남처럼 살고 있어서요. 그 얘긴 빼고요.”
“그래. 지금은 그 얘긴 안 하고 싶구나. 혹시 안 하고 싶은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기가 막힌다. 상담사라는 사람이 내 마음을 진짜 모르는 건가? 당연히 집 나가고 우리 버리고 간 사람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잖아. 헛배웠어. 이 사람. 공부 많이 해도 이렇게 눈치가 없을 수 있는 거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싫다고 하자. 그 인간 나쁜 놈이라고‘
“안 좋아하거든요. 얘기하면 기분이 더 나빠질 것 같아서요.”
신기하게 평소에 말하는 방식과 다르게 말이 나온다. 따지고 싶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 일까? 화가 날라고 한다. 마음에 무언가 꾹꾹 눌러놓은 어떤 뜨거운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더 이상 눌러담을 수 없다.
“응. 안 좋은 사람이야기 하고 싶지 않지. 나도 그럴 때 있어. 오늘은 첫 날이니까. 얘기할 기회들은 남아있어. 억지로 왔다곤 해도 이 시간이 너가 성장하는 시간이 되고 너를 돌아보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곳에서의 이야기는 모두 너와 나의 비밀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
“엄마랑 동생 이야기를 좀 해줄 수 있을까?”
이 사람은 자꾸 가족 이야기를 꼬치꼬치 물어댈 모양이다.
“............”
허걱. 나를 보며 기다린다. 이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결국 이 이야기를 끌어낼 사람이야. 고단수군. 그래도 난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거야. ’내가 왜 하필 여기서? 처음 본 사람한테 그 얘기를 해야하는건데?‘
“혹시 엄마랑 동생도 싫어하니?”
예상치 못한 질문... 당황하지 않은 척 고개를 살짝 내린다.
“가족 얘기 솔직히 노잼아닌가요?”
’좀 당황했겠지?‘
“너는 너의 가족이니까 잘 알아서 노잼이겠지만 나는 너를 처음 봐서 궁금한데?”
“그냥 엄마는 일하고 동생은 놀아요. 학교 자퇴하고 빈둥거리고요.”
’하여간 궁금한 것도 많지. 왜 이리 꼬치꼬치 질문을 해대는데?‘
이제 엄마는 무슨 일 하냐고 물어올 것이다. 분명..
“엄마가 생활을 꾸리셔야 하니까 일을 하실 거라고 생각했어. 동생은 왜 놀게 된 거야?”
헉. 엄마 아니라 동생을 묻는군. 또 아빠 얘기를 하게 만드네. 난 절대 안 할 거야. 적어도 오늘 만큼은...
“모르죠. 지가 자퇴한 건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공부하기 싫었나보죠. 걔 원래 꼴통이에요. 꼴통.”
“너는 공부 좋아해? (아뇨) 그런데 공부 안 좋아해도 학교 다니고 있잖아?”
“그냥 졸업은 해야 하니까요. 동생은 다른 거 하고 싶은가 보죠 뭐. 나랑 동생이랑 어디 같아요?”
“동생 일인데 누나가 안 물어봤어?”
“안 친해요. 그냥 같이 사는 가족 구성원일 뿐이에요. 서로 관심도 없고요.”
“엄마가 동생 자퇴한다고 했을 때 뭐라고 하셨어?
”계속 질문만 하실 거예요? 제가 언제까지 답을 해야 하나요? 저 오늘 바빠요.“
이번엔 인상까지 팍 쓰고 말했다. 민지한테 못하는 거 여기선 하게 되니 신기.
”나는 너를 상담해주러 이 시간을 비웠어. 너에게도.. 너가 진지하게 임할수록 이 시간은 다른 어떤 것보다 귀한 시간이 될 거야.“
”저 진짜 바빠요. 그리고 저희 가족은 아빠가 없는 거 말곤 그냥 평범해요. 할 말도 별로 없고요.“
”자퇴하는 동생이 왜 자퇴했는지 모르는 누나를 둔 가족이 평범하진 않아.“
”그래요. 우리 가족 이상하니까. 비정상이니까 그냥 넘어가요. 이제 그만해요.“
”평범하지 않다고 한 것을 너는 이상하다고 단정을 지어버렸어. 그럼 너는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니?“
어이상실. 그걸 왜 갑자기 나한테 묻지?
”............... 몰라요.“
”한번 지금 생각해봐. 시간이 있으니까.“
”그냥 아무거나 해요. 가족 얘기 말고..“
”그럼 너를 지속적으로 무시한 그 민지라는 애 얘기는 해도 괜찮겠니?“
”...............“
이 사람은 내가 꺼내고 싶지 않은 것만 골라 물어볼 태세다. 민지한테 당한 얘기를 하라는 거야?
”너한테 일방적으로 욕하고 괴롭히던 그 애... 너는 반응하지 않고 거부하지도 않았어.“
”그냥 그건 내 스타일이에요. 무시하는 게 편하고 그게 저 나름이 대응이에요.“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순 있어. 그런데 민지는 아주 지독해. 아주 너에게 나쁘게 했고 상처를 깊이 주었어. 너는 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을까?“
”전 싸우는 거 싫어해요. 부딪히기도 싫고.. 난 혼자고 걘 친구들이 있어요. 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일만 더 커지고요. 난 대응할 힘도 없어요.“
”대응해본 적이 없었잖아. 그냥 처음부터 가만히 있었잖아. 니가 힘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지 못하잖아.“
”난 원래 당하고 사는게 익숙하다고요. 나를 보호할 사람도 없고... 난 들 어떻게 해요? 그럼 어떻게 해요?“
묻고 싶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었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거부 의사를 정확히 밝히거나 엄마나 담임선생님에게 알리는 방법이 있잖아.“
”어차피 소용없어요. 걔는요. 우리 엄마는 일하는 것만도 버거워 해요. 엄마는 그냥 저보고 이해하고 참으라고 할 것이 뻔해요. 늘 그런 식이었고요. 담임선생님이요? 제가 민지랑 친하냐고 물으시는 분이에요, 우리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요.“
”너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고 돌려주지 않고... 너의 리본도 가져가서 너를 벌점 받게 하고... 너는 한 번도 화내지 않았어. 화를 당연히 내야 하는 상황에서 너는 그냥 넘어갔어.“
”선생님도 대충 느끼셨겠지만 저 전교에서 왕따로 지낸지 오래에요. 누구하나 나에게 관심도 없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투명인간처럼 지냈고.. 그래서 괜찮아요. 익숙해졌고요.“
”아니. 상처는 익숙해지지 않아.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만 더 깊어질 뿐이야. 난 너를 도와주고 싶어.“
”날 그냥 두세요. 선생님은 상담해야하니까 일이니까 해야겠지만.. 전 제가 괜찮으니까 그냥 이대로 살고 싶어요. 졸업하면 걔들 볼 일도 없고... 난 유튜브하면서 만족하고 있어요.“
헉. 유튜브 얘기는 여기서 왜 했지? 내가 못살아~~~~
(약간 놀라며) ”어머. 유튜브 하니?“
갑자기 유튜브 얘기가 나와 버렸다.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아니. 그냥... 이제 하려고요.“
”민망해하지 말고 알려줘. 궁금하다. 나도 구독해줄게.“
이 날의 첫 상담은.. 이렇게 나의 거부와 선생님의 집요함으로 끝이 났다. 아직 4번이나 남았다. 어떻게 회피하며 버틸 수 있을지..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좋겠다. 된장. 학교 가기 싫다.
#10 동생의 아르바이트
동생의 유튜브 편집 기술은 날로 늘어갔다. 뜬금없었지만 메일로 편집을 해줄 수 있냐는 제안까지. 이상한 곳인 줄 알고 답장을 쓸까 말까 하다가 보내 봤는데... 돈도 주겠단다. 민석이에게 말해봐야겠다. 밤 늦게 게임하고 또 퍼질러 자고 있다. 아이고.
”민석아. 너 편집 기술 날로 늘더니만... 일해 줄 수 있냐 메일옴.“
(눈을 비비며 하는 소리) ”장난하지마. 나 편집하다 눈 빠지는 줄. 건드리지 말기. 먹을 거 줄 거 아니면 건드리지 마“
”민석아. 진짜야. 돈도 주겠대. 너 할래?“
”엥? 진짜?“
“내가 없는 말 너한테 왜 하냐? 뭐가 이쁘다고!”
“대박... 당근 해야지.“
”진짜? 하게?“
“마다할 이유가 있나? 아줌마?”
“으이그~ 그럼 너 하는 거다. 딴 소리 없기다.”
“오키”
“집에서 쉬엄 쉬엄 하면서 용돈 벌고 좋을 것 같애.“
”아... 근데.. 얼마 준대?“
동생은 이렇게 ** 유튜브 채널에 편집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제안도 와서 일주일에 2일은 편집만 하면서 보내게 되었다. 늘 누워서 잠만 자던 동생.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거 없고... 한심하게 게으르던 동생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져 갔다. 돈 맛에 눈빛도 달라질 수 있는 건가...?
그러나 저러나.. 시험은 또 후딱 왔다. 이번엔 공부도 더 못했고... 의욕상실이다.
역시나... 기말고사도 폭망 했다. 유튜브 찍느라 공부를 놓았으니.. 잘됐다. 사실 어정쩡하게 평균성적 나오면 어쩌지? 싶었다. 유튜브 영상 올릴 건덕지가 생겼다. 시험 망한 게 이렇게 기쁠 줄이야... 이번엔 나를 호구로 봤던 민지가 출연을 하고 싶단다. 자신도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조인을 하고 싶다고.... 나중에 인터뷰도 해주겠다나... 이젠 나를 대놓고 괴롭히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더 이상 엮이고 싶지도 않다.
진정 민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아니 아빠 없는 세상... 엄마도 없는 세상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리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