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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즌트 Aug 18. 2022

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대하는 자세.

아줌마가 되니 바뀌었다.

예전에는 미용실에 가도 마음에 들지 않게 잘린 머리를 보고도...

(차마) 말을 못 하고 '감사합니다.'

하고 왔었다.

음식점에 가도..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도 그냥 그럴 수 있다고 넘기고...

컵에 뭔가 묻어도 내가 닦고 먹는 성격이다.

가게 주인이 알면 당황할까 봐 내가 조용히 컵을 바꿔오기도 했다.


이왕이면 상대방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좋게 좋게 넘어가자고 생각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린이집에서 친구에게 아이가 긁혀오고... 초등학교 1학년에는 반 아이가 때리고 물건도 자기 거랑 맘대로 바꾸고 하는 일들이 생기고... 이제는 엄마로서 개입해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나 혼자만 지내면... '내가 좀 손해보고 말지.'가 되었지만 아이가 속상한 일들을 당하는 것을 묵인할 수는 없었다. 


상대 엄마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배려하면서 말을 하려고 무진장 애썼지만.. 간혹 발뺌을 하는 경우를 만나면 화도 났다.

(예를 들면 우리 애가 장난이었대요. 우리 애가 실수로 그런 거였어요. 기억이 안 난대요. 등등)


작년에 아파트 공용부가 막히면서 우리 집으로 싱크대 밑과 베란다가 역류하는 일이 생겼다. 


처음엔 내가 기름 있는 것을 흘려보냈거나 뭐를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2번에 걸쳐 고쳤는데 소용이 없었다.

그때서야 아파트에서는 찾아와서 상황 파악을 했다. 계속되는 변명과 모르쇠가 화가 났다.


온다고 한 날에 오지도 않고 우린 마룻바닥이 뜨고 물난리로 물을 퍼내는 고생을 하고 밥도 못 해서 먹는데... 공사 진행은 더디고... 안 되겠다 싶어서 나도 공사하는 곳에 가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려고 내려가 봤다.


내가 내려가서 옆에서 보니까 공사하는 나이 든 아저씨가 냅다 소리를 지른다.

"아줌마가 왜 와서 봐요? 공사 어련히 알아서 해준다니까. 다 고쳐주니까 신경 쓰지 마요."


엉뚱한 곳을 고쳐놓고 다 고쳤다고 하고 집은

물바다가 되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는데

그냥 보고만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계속 딴 소리를 한다.)


그리고 세대 탓으로 돌리면서 보상을 안 해 주겠다고... 하는 말을 듣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보고 10층 세대 라인 사람들이 1/n 을 해서 공사를 하라는 둥... 엉뚱한 소리를 한다.)


아파트 단톡방에 상황을 올리고 어떻게 처리하는 게

맞는지 물었다. 


공용부 공사하는 장면도 동영상을 찍고 아저씨가 나에게 '아줌마' 하면서 가라고 하는 소리를 지르는 장면도 담겼다.


단톡방엔 동영상을 올리기는 뭐해서 그냥 상황 설명만 해서 처리방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때서야 아파트에서는 내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인지하고 보험으로 처리를 해준다고 연락이 왔다.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지만... 이렇게 상대에 따라 쉽게 보고 만만하게 얼렁뚱땅 넘기려는 사람에겐 절대로 그냥 있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몇 번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니 뭐랄까...

순순히 당하고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오늘 있었던 일이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12개 사 왔다.


큰아이, 둘째가 봉지를 뜯자마자 물렁한 아이스크림, 한 입 넣자마자 반이 뚝 떨어진다.

3분도 안 되는 거리인데 그동안 녹을 일도 없고 아예 모양이 뒤틀려있다 못해 곧 슬러시가 될 판이다.

냉동고가 고장 났던 게 분명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 나라면.. 그냥 대충 열려서 다시 먹지 뭐 생각했을지 모른다.

맛도 이상해지니 통째로 버리고 '7000원 손해보지 뭐.'

했을 가능성도 있다.


바로 가게 연락처를 찾아서 상황을 설명했다. 

슬러시 같은 상태. 혹시 몰라 사진도 찍었다. 냉동고가 고장 난 것 같으니 살펴보시라고 하고...


가게에선 그런 일 가끔 있다고 가져오면 바꿔주신다고 했다.

두 개는 그냥 떨어져서 못 먹었다고 어쩌냐고 여쭤보니... 봉지가 없으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일단 안 뜯은 아이스크림 봉지를 만져보니 물렁한 두 개 아이스크림을 바꾸기로 했다.


아이가 이미 두 개를 가지고 출발했는데... 생각해보니 하나도 먹지도 못한 것... 돈을 떠나 손해 보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이 모르고 뜯었다가 그냥 막대에서 뚝 떨어졌어요. 하나도 못 먹고요."

상황을 다시 말하니 그쪽에서 봉지를 가져오면 바꿔주겠다고 한다.


먹지도 못하고 싱크대로 떨어진 다 녹은 아이스크림 사진도 한 장 찍어서 봉지를 들고 갔다. 봉지 두 개를...

돌아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바꾸러 가는 상황이 민망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당연한 권리라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
2. 아이들에게도 이런 상황에서... '말하기 뭐하니까 그냥 손해보고 말자.'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려줬다는 것.


때론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회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권리는 남이 지켜주지 않는다. 상대를 배려하는 말과 행동은 중요하지만 그냥 참고 말자는 아니다.

나의 권리를 챙길 때 다른 소외된 계층의 권리도

모른 척하지 않게 된다.



아줌마가 되어서 변했다기보다는
엄마가 되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회피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남을 의식하던 것들이 줄고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게 된 것...
아줌마가 되어 나서의 좋은 변화이다.

그래도 버스에서 자리를 맡으려 가방을 던지는 아줌마나 길에서 파는 가난한 할머니의 야채를 깎아달라고 하는 그런 아주 소수의 아줌마를 보면... 나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솔직하고 예의 있는 사람이면서 할 말은 하는 사람

= 아줌마였으면 좋겠다. (정의 재규정)


#아줌마 #자기표현 #자기권리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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