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리즈 무어의 숲의 신이라는 책을 읽고 세이프라는 실종 소녀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두 책은 실종된 소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사건을 전개해 나갑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사건들을 증언하고 그들의 시각으로 설명하며 실종 사건은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듯합니다. 내용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아서 두 번 읽기도 했습니다.
전체 내용은 이렇습니다.
<숲의 신>
숲 속 캠프에서 한 소녀가 사라지고, 신입 여성 경찰이 사건을 파고듭니다.
그러나 지역 사회는 체면과 권력을 이유로 진실을 흐리려 합니다.
수사는 한 가족과 공동체가 감추고 있던 균열을 드러냅니다.
<세이프>
어린 시절 실종된 딸이 10여 년 후 돌아왔다고 주장하며 나타나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은 그녀를 받아들이지만, 오빠는 그녀가 가짜라고 확신합니다.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안전한 가정’이라는 믿음이 서서히 무너집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두 작품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같습니다.
가정은 자동으로 안전하지 않습니다.
침묵은 또 다른 공모일지도 모릅니다.
“집은 정말 안전한가?”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그래도 집이 제일 안전하다고. 그러나 벽과 문, 식탁이 있다고 해서
그 공간이 곧 보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아이에게 가장 두려운 장소가 아이의 집일 수도 있습니다.
두 이야기에서 문제는 단지 한 두 사람의 악행이 아닙니다.
그를 둘러싼 침묵입니다.
체면을 지키려는 가족, 평판을 지키려는 공동체,
“설마 그럴 리 없다”며 눈을 감는 어른들.
아이는 스스로 혼자서 탈출하기 어렵습니다.
어른의 세계는 너무 크고, 권력은 늘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균열이 생깁니다.
《세이프》의 자신이 실종된 아이라고 거짓 주장하는 ‘돌아온 딸’이 조용히 가족의 거짓을 흔들고,
《숲의 신》의 신입 경찰은 지역 사회가 덮어둔 의문과 은폐를 하나씩 들추어냅니다.
그들은 사건을 해결하는 구원자가 아니라 다만 침묵을 깨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균열이 곧 완전한 치유는 아닙니다.
진실이 드러난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미 아이의 시간은 그대로 흘러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의 결말은 독자들을 먹먹하게 복잡하게 하기도 합니다.
대신 우리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가정은 자동으로 안전한 울타리가 될 수 있는가?
침묵하는 공동체는 공범자인가?
아이를 지키는 일은 부모 한 사람의 몫만은 아닙니다.
학교와 이웃, 종교기관과 지역 사회.
적어도 질문을 멈추지 않을 책임은 모두에게 있습니다.
“괜찮니?”
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정의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침묵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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