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반수를 끝내고 수능 이후 3개월간의 귀한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도 해봤고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러도 갔고 영화 보기, 운전면허 따기, 컴퓨터 공부 등등 이것저것 경험을 하면서 보냈었다.
but 아이는 친구도 안 만나고 그저 집에만 놀면서 즐겁게 보냈다. 오직 집에서만!
남편도 내향형이지만 아이가 무언가 배우지도 않고 놀러 가지도 않고 집안에서 지내니까 조금 답답했던 모양이다. 운전면허라도 시간 있을 때 따면 좋을 텐데.. 토익 시험공부라도.. 그런 마음이 나도 들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집 안에서 각종 그림, 관련한 애니메이션 보고 동생들이랑 가끔 보드게임하고 엄마랑 대화하기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서, 너무 욕심이 없고 긴장감 없이 지내는 것 같은 느낌도 살짝 받았었다.
나도 집안에서 뒹굴뒹굴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노는 타입이라 이해가 되다가도 가끔 운동이라도 했으면 싶었다. 다행히 강아지 산책을 자신이 도맡아 하겠다고 하여 그건 잘 지키고 있었다.
단지 내에 있는 헬스 클럽도 다녀볼래? 물으니 안 가고 싶다고 하고, 운전면허도 관심이 아직 없다고 했다. 필요할 때 그때 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하여 그 말도 맞아서 그냥 알아서 하라고 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데도 방 안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전혀 심심함 없이 너무도 잘 지내는 아들. 밤에 잠을 늦게 자는 것도 아니고 게임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영상도 보고 이것저것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막내가 좋아하던 캐릭터 책도 빌려가서 보면서 스케치도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가 카튜샤에 지원할 의사가 있으니 토익은 한번 보자고 권유를 했다. 아이는 마지못해 2월에 보는 걸로 신청을 했지만 책을 사지도 학원이나 인강을 듣지도 않았다. 그냥 계속 혼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래. 토익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정신 차리고 공부하고 다시 보겠지.' 싶어서 그냥 시험 삼아 보라고 했다. 어차피 지가 성적이 나와야 카튜샤도 지원이 가능하니까!
토익 시험이 끝나고 성적도 확인을 안 하길래, 그래도 성적은 한번 확인해 보라고 했다.
아이가 남편이랑 나랑 있는 거실에 나오더니 성적을 확인했다고 했다.
카튜샤는 토익 780점이 넘어야 서류가 통과되고 그 이후에는 추첨인데 안정적인 점수로는 800점 중반을 넘기면 좋다고 했다. 어차피 추첨이 되어야 가능하긴 하다. 경쟁률이 세다.
우리가 얼마나 나왔는지 궁금하여 물었다.
아들이 "엄마, 아빠가 한번 맞춰보세요." 하더니 3번의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800점 넘었어?"
아들: 네.
우리: 그럼. 830점 넘었어?
아들: 네.
우리: 그럼 일단 다행이네. 그럼 850 정도 받았구나?
아들: 아뇨. 저도 좀 놀랐는데요. 940점 나왔어요.
우리: (둘이 놀라서 눈이 마주쳤다.) 뭐야? 900이 넘은 거야? 940? 진짜? 웬일이니.. 공부 안 했잖아?
아들: 저도 좀 놀라긴 했어요.
우리: 그래. 잘했다. 쉬어라.
언어적 감각이 있는 편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높은 점수에 놀랐다.
오늘 아이방에 침구 정리차에 들어갔다가 영상을 틀어놓고 오래간만에 게임을 하는 아이를 보니, 참 행복해 보였다. '그래. 이렇게 즐겁게 지내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긴 하지.' '어차피 인생 길게 봐야 하는데 말이지.'
나: (영상에서 영어소리가 나오는 것 같길래) 근데 영어로 듣는 거니?
아들: 네. 영어가 정보가 많아서요. 제가 관심 있는 내용은 80프로 이상이 다 영어예요. 엄마. 나 토익 공부 안 해도 잘 본 거 이것 때문인가 봐요.
나: 넌 그럼 이 영상 틀어놓고 게임하고 있어도 이 영어 대화가 다 들려?
아들: 네. 그러니까 틀어놓죠. 제가 래딧 보고 애니메이션 보고 그런 거가 재미로 한 건데 도움이 되었나 봐요.
남편도 아이가 너무 아무것도 안 한다고 걱정을 했는데, 이젠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즐기면서 배우는 거 못 따라간다더니..
아이는 공부가 아닌 재미있는 취미로 나름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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