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즉흥적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고 남편은 한 가지를 시작하면 꾸준히 지속하는 안정형 유형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부부가 되어 만나다 보니, 갈등도 있었지만 보완이 되고 닮아가는 부분도 생겨납니다. 익숙함이 참 무서운 거지요.
10년 전쯤, 남편이 대학업 졸업 후부터 쭉 다닌 직장에서 근속 20주년 기념으로 부부 동반 여행을 보내 주었습니다. 사실 비용 추가 없이 가려면 동남아시아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아이들이랑 호주로 가자는 마음으로 비용의 2/3 가까이 회사가 1/3은 우리가 부담하여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있어요.
그때의 기억이 좋았는지 그 당시 어렸던 아이들은 두고두고 호주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자신은 사막에서 탄 썰매가 재밌었다느니, 다른 아이는 캥거루랑 동물원이 좋았고 또 다른 아이는 호주 날씨랑 바다가 좋았다고 하고요. 그 당시는 지금과 달리 여행비용도 저렴했고 비행기 값과 숙박만 세이브해도 추가 비용 부담이 줄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과 저는 '근속 30년 차에는 하와이 보내준다는데 그렇게까지 있다가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날이 오리라 예상치도 못했고요. 남편은 나이가 적지 않으니 그때까지 버티는 것도 어려울 거라 생각했고, 저는 아무리 그래도 요즘 세상에 한 직장에서 30년은 인생의 반 이상인데 가능치 않을 거라 생각했죠.
잊고 있었던 10년 후 어느 날이 바로 어제였습니다.
남편: 여보. 우리 내년에 여행 갈 수 있어.
나: 여행? 지금 애들 교육비 등으로 여유도 없고 차도 작아서 다니기도 애매한데 여행은 좀 아니지 않아?
남편: 아. 그렇긴 한데.. 근속 30년이라서 여행경비가 나온대.
나: 허걱. 벌써 30년이 된 거야? 진짜로? 이런 날이 오긴 오네. 신기.
남편: 애들이... 내년에 막내가 고1이라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애들은 두고 가기도 그렇고. 큰 애는 군대 갈 수도 있고. 다 가면 추가 비용도 있고.
나: 그렇긴 하네.
남편: 차라리 일본 여행을 가고 그다음 해로 미뤄서 갈까? 아니면 우리 둘만..?
나: 고민 좀 해봅시다. 근데 당신 진짜 대단하다. 30년 근속. 존경해. 진짜.. 고생 많았어. 당신.
지속적이고 변화를 거의 추구하지 않는 남편이 달리 보입니다.
매일 새벽같이 나가서 밤에 돌아오며 고생했던 30년의 시간들.
연차도 아껴가며 노력했을 남편.
꾸준함은 저에겐 정말 어려운 덕목이어서 남편이 더더욱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조만간 이렇게 말할 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여보. 이제 당신은 좀 쉬어. 그동안 애썼잖아. 이젠 내가 벌게."라고요.
그런 날 오도록 저도 조금 더 꾸준히 해봐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지속력 있는 남편과 연애 포함 24년 정도 함께 했으니 저도 어느 정도 전염(?)이 되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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