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절친이 있었고 지금은 절친이 없는 중년이 되었다.
절친이란 무엇일까?
나도 한때 절친이 있었고 지금도 가끔 그때의 절친과 대화를 주고받기는 하다. 조금 달라진 건 이렇다.
전처럼 내가 마음을 깊이 쏟으며 친구의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반응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 계기는 인간관계에서의 애씀과 노력으로 인한 번아웃을 겪고 나서부터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소진과 과한 관계는 이제 지쳤다.
생각해 보니, 내가 절친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이 은근히 많았다. 몇 년 전, 나에겐 일이라는 우선순위가 하나 더 들어왔고 가족과 부모님, 신앙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일이 내 삶으로 들어오면서 더는 친구관계에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내 친구는 더 가까운 사이를 원했다. 같이 여행도 가고 싶어 했고 시골에 계신 자신의 친정 부모님을 찾아뵙자고도 했다. 자신의 감정선이 불안하고 흔들릴 때마다 전화가 오기도 했고 고민을 상담해 주다가 진이 빠지는 일들도 있었다.
친구를 좋아했기에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존재였기에 '내가 정신없고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소홀하기가 미안해졌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챙기다가 아이들에게는 종종 약간의 구멍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정말 절친이 있어서 행복할까?
절친이란 어떤 관계일까?
우리 관계가 서로에게 유익하고 의미가 있는 사이일까?
이런 고민들이 올라왔다.
나는 절친하면 **친구가 먼저 떠올랐고 한 번도 그 자리에 다른 친구의 이름이 들어간 적이 없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절친이라는 이유로 내가 친구에게 만만한 존재로, 다 이해해 주고 친구니까 이래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싫어졌다.
나는 친구가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고 친구를 위해서 나의 일정 부분 자리를 마련해 두고 항상 진심이었다. 물론 내 친구도 나를 좋아했던 것도 맞고 나를 필요로 했던 것도 맞다. 고마운 부분도 물론 너무 많았다.
근데 그녀는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잘 대해주고, 나는 절친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이해해줘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서서히 그렇게 되어갔고 일정 부분은 내가 힘든 내색을 표현을 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
나는 매주 보는 소그룹 공동체가 있고 책 모임도 있고 많이 컸지만 여전히 삼 남매의 엄마라는 역할이 있다. 일터에서는 동료 선생님들도 있고, 수업으로 만나는 나름의 관계들이 있다. 나를 늘 반겨주는 강아지도 있다. 물론 동반자인 남편도 늘 곁에 있어왔다.
어느 순간 나에겐 이제 절친이란 단어가 낯설어졌다.
필수조건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다들 가장 친한 친구가 있으니까 나도 있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으로 만든 건 아닐까?
그냥 편하게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있으면 족하다.
서로 바쁠 때는 신경 못쓰고 챙기지 못해도 한 번씩 보면 또 반가운 관계로도 충분하다.
조금 멀리 있어도 각자를 응원해 주는 정도의 사이면 좋다.
굳이 시시콜콜 일상의 이야기를 모두 다 나누어야만 되는 건 아니다.
그런 감정들이 정리되면 그때 이야기해도 된다. 그 모든 감정들을 그때그때 누군가에게 말하여 그 친구의 시간을 붙잡고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절친 ***이라는 이름은 이제 바꾸려 한다.
좋은 친구, 만나면 반갑고 가끔 소식을 전하면서 지내는 친구로 남고 싶다.
https://brunch.co.kr/@129ba566e8e14a7/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