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는 건 시간문제
7. 이탈리아 로마 - 안녕 정신없던 로마
이탈리아 로마를 떠나는 날이었다. 비행기 시간이 이른 아침이라 해가 안 뜨는 시간에 서둘러 나가야 했다. 하지만 하필 그날은 이탈리아 지하철 파업의 날이었다. ‘말도 안 돼! 에이 그래도 몇 대라도 운행을 하겠지~’ 싶었지만 그 시간에 오는 지하철은 없었다. 계획대로 안될까 눈앞이 캄캄해진 나는 좌절했다. 그때 꽉 낀 티를 입은 호스트가 내게 와 말을 걸었다.
"오늘 지하철 파업이야. 공항까지 차를 타고 가는 게 좋을 거야."
"으뜨케요...? (제발 살려주세요...)"
"내가 도와줄게"
눈앞이 캄캄했던 내 앞에 나타난 건 호스트, 빛이었다. 평소 인복이 좋지 않다 생각했는데, 유럽 여행만 생각하면 난 인복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 기적처럼 나타난 호스트의 친절로 난 무사히 로마를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비행기, 크로아티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내 속은 다행히 울렁거리지 않았다.
8.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내가 크로아티아를 알게 된 건 TV 예능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화면에 보이던 크로아티아에 반했고, 유럽 여행을 계획하며 크로아티아를 가장 먼저 골라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조금 달랐다. 두브로브니크 마을 안까지 가기 위해 버스를 타야 했는데 하필이면 절벽 옆으로 가는 길 뿐이었다.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절벽에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었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던 나는 눈을 찔끔 감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진짜로 곤욕이었다.
두브로브니크, 성곽 마을은 정말 작았다. 내가 유럽 여행을 하면서 유일하게 유심칩을 안 샀던 곳이자 지도를 한 번도 보지 않은 곳이다. 돌바닥에 익숙해져 덜덜 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향하자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계단이 시작이었다.
호스트를 기다리는 동안 문 앞에서 멍 때리고 있으니 어떤 미국 여자 아이가 불과 몇 분 전의 나처럼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 여자에게 달려가 숙소 이름을 말하곤 캐리어를 함께 들어줬다. 우린 둘 다 헉헉 거리며 웃기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스트가 왔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숙소 안 계단도 살벌했다.
9.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2)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시간이 안 걸렸다.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뭘 할까 싶었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있었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고르고 매일 그곳에 앉아 주변을 구경하는 것.
항구 마을답게 물도 배도 많았다. 항구 바로 옆에 있던 의자에 앉으면 햇살이 내리쬐는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사람에 치이고 건물에 치였던 로마에서 벗어나 자연이 눈에 보이니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완전한 도시보단 자연이 섞인 여행을 조금 더 좋아했다. 그 사실을 이때 처음 알 게 되었다.
10. 크로아티아 두브르부니크(3)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어떤 해변이 보였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괜히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하지만 그때의 난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기에 물에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수영을 하는 걸 보고 있는데, 내 옆에서 파마머리의 어린아이가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어린아이를 달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미소 지으셨다.
"선물이야"
나는 가방에서 젤리 하나를 꺼냈다. 할머니는 아이의 등을 밀어 내 앞으로 오게 했고, 아이는 수줍게 내가 준 젤리를 가져갔다.
11.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4)
나는 술을 먹지 못한다. 도수가 5% 미만인 레몬맛 맥주를 몇 모금 마시고 정신 못 차렸던 날 이후,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내게 술을 한 모금도 권하지도 않을 정도로. 아쉽게도 유럽은 물보다 맥주가 더 싼 곳이 많았다. 이곳 두브로브니크도 그랬다. 유명한 절벽카페에서 레몬 맥주가 유명했다. (엄청난 노력으로 맥주 한 잔 가능!) 지금이라면 레몬 맥주를 사, 멋지게 반 병 정도는 마셨겠지만. 그때 당시는 술 한 모금도 무서웠던 터라 나는 직원에게 입버릇처럼.
"노 알코올! 노 알코올!"
이라며 외쳐댔다. 직원은 웃으며 내게 레몬주스를 주겠다고 했다. 레몬 맥주를 마시는 멋진 어른들 사이에 앉아 노을을 바라봤다. 사람들을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들을 했을까.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에 기대 사랑을 표현했고, 어떤 사람은 깊은 눈으로 상대에게 사랑한다 말하기도 했다. 또 절벽 카페라는 걸 확인할 수 있게 젊은 남자들이 다이빙을 하며 수영을 했고, 사람들은 환호를 했다. 서로가 서로를 몰라도 응원하고 사랑했다.
어떤 여자는 자리를 떠나며 혼자 있던 나를 보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길에 있던 똥강아지가 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게 나쁘진 않았다. 쑥스러움이 몰려오자 레몬주스를 반 정도 남긴 채 나 역시 자리를 떠났다.
입 안도 마음도 달았다. 저녁은 매운 걸 먹고 싶은데 여긴 유럽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귀한 라면을 끓여 먹을까 싶었지만 라면 먹을 날짜마저 계획해서 온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핸드폰으로 열심히 맛집을 찾던 와중, 눈에 띄는 단어가 보였다. 바로 [강남 스타일]이었다.
크로아티아에 웬 강남스타일? 나는 곧장 그 가게로 향했다.
유일한 한식당이었다. 머쓱하게 들어가 곧장 메뉴판을 들춰보니 내 눈은 돌아가있었다. 라면과 제육볶음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제육볶음을 골랐고. 놀랍게도 정말 한식이 나왔다. 내가 여기서 제육볶음을 먹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는 그곳에서 젓가락을 한 번도 내려놓지 않고 밥 한 톨까지 싹싹 밥을 먹었다. 젓가락을 내려놓자 여태까지 기운 없던 나에게 힘이 생기는 듯했다. 한국인은 역시 밥이었다.
12.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5)
캄캄해진 하늘과 대비되는 거리의 조명들이 밝게 켜졌다.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이곳에 놀러 온 관광객들은 대부분 2~3일 내로 떠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 일주일을 있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리게 걸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골목 사이에 있는 식당 주인들과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 "좋은 저녁이야!" 또 아침이 되면 "좋은 아침이야!"
어떤 동양인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매일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그들도 익숙해질 때쯤, 와인잔을 닦던 남자 직원이 나를 부르며 인사를 했었다. 옆에 있던 여자는 그 남자를 놀렸고, 남자는 얼굴이 빨개졌다. 뭐가 뭔지 몰라도 나도 부끄러워져 인사를 냅다 하고 도망치듯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유 없는 기분 나쁨이었다. 날씨마저 좋은 날, 대충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작은 마트에서 파는 크로와상을 사기 위해 들어갔다. 늘 그랬듯 초콜릿이 들어간 크루아상을 주문하는데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포장한 크루아상을 건넸다.
"good morning!! How are you?"
"..... good"
그들은 그냥 인사를 한 거였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 직원의 말이 짜증 났다.
‘왜 여기 이 사람들은 난데없이 매일 남의 기분을 묻고 난리지? 내 기분을 알아서 뭐 하려고!’
항구 옆 의자에 앉아 크루아상을 우걱우걱 먹으며 분을 삭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왜 기분이 나빴는지 모르겠다. 그저 여행 사춘기였나 싶다.
심통 난 마음이 몸도 삐뚤게 만드는 건지. 나는 그날 바다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바다 근처 바위 위에서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던 순간 그 와중에 카메라가 깨질까 내 손으로 막으려다 온몸에 상처가 크게 났다. 온몸을 던져 카메라를 지켜내려 했지만 카메라는 켜지지 않았다. 짜증 섞인 한숨이 나왔고, 발목마저 삐어 절뚝이며 걷기 시작했다. 분명 나갈 때는 뽀송했는데, 불과 30분 만에 숙소로 돌아가니 호스트는 나를 보며 놀랐다.
“이게 무슨..”
“넘어졌어요..”
“헤어드라이어 빌려줄 테니까 얼른 씻으렴”
유럽 여행을 가겠다고 큰 마음을 먹고 산 카메라가 고장이 났다.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 카메라를 가방 깊은 곳에 처넣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날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벌써 여행에 싫증이 났던 걸까. 가만히 있어도 피곤하기만 했다. 잠깐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도 하며 하루종일 고민을 하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내 팔이 펴지지 않았다. 아차... 팔로 넘어졌었지...
그때부터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됐다.
13. 오스트리아 빈
팔이 펴지지 않았다. 억지로 쭉 피려고 하면 팔이 뽀각! 하고 부러질 것 같았다. 팔을 니은자로 배에 붙여야지만 그나마 덜 아팠고, 잘 때는 물론 세수를 하는 것 마저 불편했다. 다리는 자주 다쳐봐서(?) 나름 대처 방법을 알지만, 팔은 처음 다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날은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이동하는 날. 거대한 캐리어와 나머지 짐들을 오로지 왼손으로만 들고 돌바닥을 이동해야만 했다.
고통에 강한 편이지만 공항까지 가는 길은 지옥 훈련 그 자체였다. 이 악물며 캐리어를 들었고,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공항까지 도착했다. 비행기 안, 어깨에 맨 가방을 내리는 것 마저 힘드니 한숨이 나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기절을 해버렸다. 도착하기 전까지 잠이나 자야지 싶었는데, 인복이 여기서도 나타났다. 내 옆에 앉은 대만인 부부가 하필이면 호기심이 많았다. 정~말 아~주 많았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 한국이요"
"어딜 여행하고 있어? 얼마나 하는 거야?"
"유럽 이곳저곳이요.."
"오스트리아는 얼마나 있을 거니?"
"5일이요"
"대단하구나~ 대만은 와봤니?"
"아뇨"
“다음에 꼭 와봐!”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눈이 캄캄했다. 대답을 겨우 겨우 하고선 피곤함을 온몸으로 표현한 뒤, 그대로 눈을 감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을 만큼 온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유럽의 병원 진료비는 얼마나 나오는지도 검색을 해봤지만 차라리 한국에 다녀오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팔은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졌고, 몸살에,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으며 몇 시간이 지나니 승무원이 날 깨웠다.
'아 또 움직여야 하는구나...'
움직이는 게 곤욕이었던 나는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빠르게 나가고 가장 느리게 짐을 챙기던 내가 한쪽 팔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 출입구 쪽에 있던 승무원 두 명이 나에게 나가와 내 짐을 챙겨주었고 나를 친절하게 살펴주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에게 그런 도움을 받아본 적이 처음이었다. 아프고 서러웠는데 고맙고 간지러웠다. 서러움에 눈물이 가득 차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하니 나가는 걸 도와주던 승무원이 웃으며 말했다.
"오스트리아에 온 걸 환영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눈앞에는 오스트리아 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