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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r 21. 2021

동유럽에서 문득 낯선 나를 만나다

- 동유럽여행기 2 <사로잡힌 생각들>

-  숨만 쉬어도 그대로 음악이 되었던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숙소에서 두 시간 정도 달려,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버스를 내렸다. 우리는 걸어서 미라벨 정원으로 들어갔다.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지었다는 사백 년 전 이야기는 왠지 나에게는 아찔하게 다가왔다. 사제의 사랑이란 장미꽃 같았으리라. 장미내음만큼 달콤하면서도 장미가시만큼 위험한 사랑이지 않았을까? 결국 파문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좀체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장미가 무더기로 피어날 무렵이면 천국의 정원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잘츠부르크 성을 바라보며 정원을 나와 ‘사랑의 자물쇠 다리(마카르트다리)’를 건넜다.


얼마 가지 않아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노란색  육층 건물인 모차르트 생가를 만났다. 세기의 작곡가이자 음악의 신동이라 불렸던 모차르트가 태어난 이곳은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이다. 언제나 터져나갈 듯이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게트라이데 거리를 지나오는 동안 길잡이님이 들려주었던 모차르트 이야기는 왠지 쾌활함과 애잔함이 혼재해 있었다.  


고전주의를 완성한 모차르트는 대개 밝고 경쾌한 음률들이 기발하게 조화를 이루는 곡들이 많다. 한번 오선지에 던져진 음계들은 그대로 살아서 노래가 되는 것이었다. 천재적인 음악가였다. 아버지는 친절하면서도 다정하게 이끌어 주었고, 아버지의 음악성이 영향을 미친 바가 컸다. 음악가의 집안에서 지대한 지원을 받으며 어릴 때부터 총애를 받은 인물이었다. 여관집 딸 콘스탄체를 사랑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스물아홉 살 때 당대 최고의 음악가 하이든에게 극찬을 받았다고 전한다.


원인불명으로 서른다섯 살에 죽어, 묘지도 아닌 들판 같은 곳에 시신이 방치되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하니 전성기에 비하자면 그의 말년은 참으로 불후하고도 허무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마데우스의 호쾌한 웃음소리를 얼핏 들은 듯도 하였다. 그의 웃음소리는 온 게트라이데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머리 위로 햇살처럼 퍼지고 있었다.  

   


- 몇 만 년 전의 바다가 올라와 이룩된 동화의 나라, 잘츠커머굿 할슈타트

   잘츠커머굿에서 점심을 마치고 나오니 마을 안길 네거리 고목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서 한창 시끄러웠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전통복을 차려입은 남자, 결혼식이었다. 맨 앞줄에는 서른 명에 가까운 악대가 앞장서고, 그 뒤에 신랑신부가 탄 오픈카가 서고, 뒤에는 하객들을 꽃단장을 하고 짝지끼리 식구끼리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뒤따라 행진해 가고 있었다. 음악소리는 한층 밝고 가벼웠다.


다른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러 가고 나는 혼자 남아 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호수가 있는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나는 멀리 걸어가다가 요트들이 넘실거리는 선착장에서 발을 멈추었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자꾸만 그 호수들이 정겹게 다가온 까닭이었다. 날이 덥지도 않건만 요트를 타던 젊은이들이 호수에서 몸을 던져 헤엄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는 나무들이 우거진 호숫가 수풀 속에서 장판 같이 매끈한 수면을 고즈넉이 바라보았다. 수면은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눈이 부시었고, 멀리 건너편 높은 산 그림자가 드러누워 있었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물결 위로 간혹 젊은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유리알처럼 맑게 쏟아지곤 하였다.


잘츠커머굿에서 할슈타트로 가는 길은 구절양장이었다. 할슈타트는 조용한 호수마을이다. 나는 벼랑위에 붙어 있는 예쁜 집들을 올려다보며, 아주 천천히 걸었다. 할슈타트의 ‘할’도 소금이라는 뜻인데, 바다가 올라와 만들어진 땅이었기에 예로부터 소금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마도 예전엔 큰 부자 도시였을 것이다.


호숫가 벼랑 위의 집들 아래로 마을길을 내었는데, 길은 물가를 따라 꼬불꼬불하고 호수 속으로 미끄러지듯이 교회가 있는 쪽으로 갈수록 자꾸만 낮아지고 있었다. 마당이 없는 이곳 집들은 갯바위의 따개비처럼 올망졸망 붙어있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깨나 어깨를 스칠 만하게 창턱마다 꽃들을 기르고 있었다. 호수의 수면은 때로는 사람의 눈보다 높게 느껴져 동화나 꿈속 마을에 와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가게로 보이는 집들은 앙증맞은 손 글씨로 물건 값을 적어 놓은 것이 귀엽기까지 했다.

   

두 시간 삼십여 분만에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이곳 뷔페식당에서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춤추고 놀았는데, 나는 그들의 신명이 보기 좋아 한참동안 손뼉을 쳐 주었다. 우리들 등 뒤에서는 백삼십칠 미터 높이의 도도한 블레드 성이 아름다운 조명을 받으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2014년 920() 맑았다가 흐렸다가 오후 늦게 비가 내렸다

[뮌헨숙소(06:00~08:00)-잘츠부르크(10:00~11:00)-잘츠컴머굿(12:30~15:00)-할슈타트(15:40~17:20)-블레드숙소(20:55~02:00)] * 현지식(점심:잘츠컴머굿 슈니첼, 저녁:블레드 호텔뷔페), 숙소(슬로베니아 블레드 야드란 호텔)     


* 참좋은여행사 ‘2014년 이달(10월)의 베스트 여행후기’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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