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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Jan 21. 2022

명당 꽃밭등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동대마을에 노씨들의 명당 묘지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노씨 가문에서 상을 당했는데 가세가 워낙 어려워 안장을 어느 곳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연히 풍수가 지나다가 딱한 사정을 알고 묘 자리를 봐 주었다.

  그리고 풍수는 상주에게 “3년 상을 마치고 형편이 좋아지면 그때 사례나 해 주소.”라고 말하고 떠났다. 그 후 3년 동안에 노씨 가정은 큰 부자가 되었다. 풍수는 3년 전을 기억했던지 혹은 우연히 왔는지는 모르지만 노씨 집을 찾아왔다.

  풍수는 노씨에게 말하기를 “내가 3년 전에 이 댁 묘 자리를 봐 준 풍수인데 그 때 일을 기억하느냐?”하니 노씨는 그 때 일을 모른다고 딱 잘라 말하기에 생각해 보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오기 때문에 이날 풍수는 노씨 집에서 유숙하였다.

  풍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버릇을 고쳐 주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내가 3년 전 자리를 봐 주었으나 지금 생각하니 아쉬움이 좀 있기에 말씀드릴까 합니다.”

  노씨는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사정을 하였다. 풍수는 말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하니 노씨는 더욱 안달이 나서 졸라댔다. 풍수는 계속 거드름을 피우면서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하고 노씨는 사정을 했다. 몇 번을 계속 반복한 후 풍수는 못 이기는 척하면서 말했다.

  “ 이 묘의 효험은 3년 밖에 없으니 묘를 이장하면 자손과 재산이 더욱 번창할 수 있습니다.”

  노씨는 이 말을 듣고  이장을 위해 봉분을 파 헤쳤다. 이 때 펑하는 소리와 함께 흰 학 한 마리가 날아 나왔는데 이 학은 날아서 개울을 건너 곤유리 강홍일 씨 댁 두엄 밭에 앉았다가 곧 동대(동한재)와 곤유(고니개) 중간 지점 꽃밭등에 앉았다 싶더니 이내 곧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풍수들이 꽃밭등 뒤에서 명당을 찾았으나 지 못하고 후세 사람들도 명당자리를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는 무덤들이 즐비하다. 이 묘지에 안장한 후손들은 그렇게 잘 살지는 않고 못 살지도 않는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꽃밭등과 옛날에 부자였던 강홍일 씨의 집은 명당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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