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민 Oct 08. 2021

무민사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바닷가에 살면서 어업을 위주로 하는 마을은 최영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곳이 많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혹은 개인이 고기잡이를 나갈 때나 또 만선이 되어 마을로 와서도 제를 모시는 행위가 예로부터 전해지고 있다.

  조선 중엽 때의 일이라고 한다. 남해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미조에는 첨사(종3품)가 지휘할 정도로 중요한 포구였다. 어느 날 미조 진항 첨사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 나이가 많은 노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최영 장군의 영정과 칼이 바닷가(미조 앞바다)에 있으니 찾아서 잘 모셔 놓아라.”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첨사는 잠에서 깨어나 꿈을 회상하였다. 비록 꿈이었지만 이상한 생각이 들어 수문장 봉장군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최영 장군의 영정과 칼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봉장군은 급히 군사를 이끌고 바닷가에 가보니 나무로 만든 궤짝이 놓여 있었다. 봉장군은 이상하게 여기고 뚜껑을 열어보니 최영 장군의 영정과 칼이 궤짝 안에 있었다. 봉장군은 급히 영정과 칼을 정중히 모시고 가져가 첨사에게 경위를 설명하고 보였다.

  첨사는 영정과 칼을 짚으로 싸서 잘 모셔 놓았는데 불행하게도 어느 날 영정과 칼을 모셔 놓은 곳에 화재가 일어났다. 그런데 영정은 날아서 지금의 장군당(무민사) 자리에 놓여지는 것이 아닌가? 첨사는 이상하게 여기고 영정이 놓인 자리에 정성을 다하여 조그마한 사당(현재 무민사)을 짓고 칼과 영정을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영정과 칼이 없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 소홀이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영정과 칼은 없지만 최영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현재까지도 제는 지내고 있다. 아이를 못 낳는 부부도 이곳 무민사에서 엎드려 절을 하며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빌면 아이를 낳았다는 속설이 있을 뿐 아니라 사당 옆에는 민불도 입석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배가 출항할 때는 언제나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배가 출항하면 풍어가 된다고 믿고 있다. 이곳 무민사는 민간신앙의 대상이기도 하고 무민공 최영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우로서 보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미나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