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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Feb 07. 2022

살목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고려 말 가조 지방(거창군)에 유형귀라는 사람이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일러 유장군이라 하였는데 그는 열다섯 살에 무과에 급제하여 병조참의를 지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홍건적이 개경을 침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참전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가 청주에 다다랐을 때 이미 수도 개경을 수복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라는 위태롭고 국정이 어지러워 한탄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는 나라 걱정에 마음이 흐려질 때마다 늘 자라 바위가 있는 가마소 둘레를 감돌면서 걱정하는 마음을 달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그가 가마소에 이르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고 안개가 무성하게 피어오른다 싶더니, 못 가운데에서 큰 말 한 마리가 벼락같은 소리를 내지르면서 뛰쳐나와 사납게 날뛰었다. 사람들이 진정시켜보려고 하였지만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그때 그가 앞으로 나서며 크게 말을 꾸짖으니 말은 마치 제 임자를 만난 듯 금세 머리를 숙이고 꼬리를 치며 순순히 등을 내주었다. 사람들이 탄복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그날부터 그는 그 말을 타고 무술을 닦으며 후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힘을 발휘할 때를 잡지 못하고, 고려는 국운이 다하여 망하고 말았다. 새 조정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에 숨은 인재를 찾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유형귀 장군 또한 누차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도 일흔이 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불우한 자신의 말년을 비탄해하며 갑옷에 활을 차고 애마를 몰아 재에 올랐다.


“너도 아다시피 내가 세상을 잘못 만나  네가 나와 함께 고생한 지 이미 오래다. 이제 너와 내가 재주를 겨루는데 내가 백 보 밖의 저곳을 향해 활을 쏘고 난 후 너를 타고 그곳으로 달릴 것이다. 만약 네가 내 화살보다 늦게 가면 군법을 시행하여 너를 죽일 것이고, 네가 먼저 갔으되   내 화살이 너를 명중하지 못하면 내가 죽을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활을 쏜 후 말을 채찍질하여 쏜살같이 달려 백 보 밖에 갔을 때 화살은 정확히 말의 안장에 맞았다. 그러자 그는 흐느껴 울면서 말의 목을 베어 죽이고는 자기도 또한 화살로 자기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일흔세 살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사람들은 그곳을 살목(矢項)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살목 뒷산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 1997년 경남 방문의 해, 경남 전설을 찾아서, 경남농협, 거창편, 2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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