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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Feb 18. 2022

살모 폭포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거창군 남하면 치내동네에서 월성리로 올라가는 국도를 따라 골짜기를 타고 약 십 리를 오르면 성천 건너편에 창선리가 있다. 창선리는 위창선과 아래창선으로 나뉘는데, 아래창선 뒤편 산 우측 아랫녘에 지금은 거의 메워지다시피 한 소가 있다.


소의 뒤편에는 폭포가 하나 있는데,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의 힘 때문인지 예부터 이 소는 너무나 깊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명주실 다섯 꾸러미를 넣어도 밑이 닿지 않았다고 하니 가히 그 깊이를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이 소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옛날 이 소에 몇 백 년 먹었는지 모를 이무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요물의 횡포가 말할 수 없이 자심하였다. 이놈의 비위를 건드리면 비가 오지 않았고, 심한 홍수를 일으켰다. 때로는 전염병까지 창궐하게 하여 동네 사람들이 죽기도 하였다. 동네 주민들은 이놈의 거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날을 잡아 제를 지내주기도 하였지만 횡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이 동네의 어른 한 사람에게 꿈속이무기가 나타나 매년 동네에서 예쁜 처녀를 한 사람씩 바치라고 했다. 그래 다음날 동네 사람들이 모여 대책을 의논하였으나 갑론을박 속에 쉬이 결론이 이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느 누가 자기의 귀한 딸을  흉측한 요물에게 내놓기를 바라겠는가?


그런데 그날 밤 무서운 강풍이 이 동네에 불어 닥치면서 동아줄 같은 빗줄기가 퍼부어댔다. 놀란 동네 사람들은 긴급히 모여 이무기의 뜻대로 처녀를 바치기로 하고, 딸 가진 사람들을 모아 심지를 뽑아 제물로 바칠 처녀를 정했다. 그랬더니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거짓말처럼 그쳤다. 이에 동네 사람들은 길일을 택하여 처녀를 이무기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 후로는 이무기가 횡포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해마다 처녀를 바치는 것도 한계 있는 법이어서, 딸 가진 부모들 중에는 이 동네를 떠나 먼 곳으로 이사한다든지 아니면 일찌감치 딸아이를 성혼시킨다든지 하여 제물로 바칠 처녀를 구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동네에서 처녀를 사 오기도 했는데, 처녀를 바치지 못하는 해에는 반드시  요물의 횡액이 동네를 덮쳤다.


그러던 어느 해 다시 이무기에게 처녀를 바쳐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딸 가진 부모들은 혹시 자기 딸이 제물로 뽑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밤이나 낮이나 안절부절 못하였다. 그런데 이 동네의 어른 한 사람에게 예쁜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총명하여 부모들이나 이웃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는 글재주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남자스러이 활달하여 어려서부터 말을 타고 사냥도 하고 활쏘기도 하여 무용에도 남자들 못지않게 뛰어난 가 있었다. 하루는 그녀가 조용히 아버지의 방에 들어와서는 말했다.


“제가 금년에 저 요괴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딸의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는 너무나 놀라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딸이 아버지에게 간곡히 청하였다.

“이번에 제가 제물이 되기를 자청하는 것은 그놈과 싸워 물리치기 위함입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딸의 결심이 굳다는 것을 안 아버지는 마침내 딸의 청을 승낙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 딸을 금년의 제물로 바치기로 했음을 알리고, 그 날부터 날을 잡아 이무기에게 제를 올릴 절차를 마련하였다.


드디어 제를 올리는 날이 돌아왔다. 온 동네사람들이 소 주변에 모여서 제를 올렸다. 제를 올리는 절차를 마치고 이제 제물을 바칠 차례가 되었다. 스스로 제물이 된  딸은 제단 앞에 앉아 일어서서는 아버지와 동네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활과 화살통을 메고 소의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녀가 소의 물속으로 들어가고 나서 조금 있더니 물이 격랑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치기 비롯하였다. 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소를 지켜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소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올라 맑은 물이 금세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격랑이 멈추고 소의 물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조금 있으니 급소에 살을 맞은 이무기의 큰 몸둥이가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순간 동네사람들은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물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 이 동네에서 이무기의 횡포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는데, 동네사람들은 그녀가 죽은 날이 되면 이 폭포에서 제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자기를 희생하여 동네를 구한 정신을 높이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소는 점점 메워져 지금에 이르렀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폭포를 살모 폭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살모사가 살았다 하여 살모 폭포라 불렀다는 것인데,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 이무기가 곧 거대한 살모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경남 방문의 해, 경남 전설을 찾아서, 거창편, 37~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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