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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Feb 23. 2022

사그막골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예부터 사그막골이라 부르던 사동은 거창읍 서변리에 있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이 마을에 사기를 굽는 늙은이가 손녀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손녀는 얼굴이 고울 뿐만 아니라 언행 또한 정숙하여 동네 총각들은 그녀만 보면 황홀하여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어느 해 겨울 폭설이 휘날리는 밤 웬 나그네 한 사람이 이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들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였다. 늙은이는 쾌히 승낙하고 나그네를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방 안에 들어온 나그네는 이십 전후의 나이로서 행색은 비록 초라하나 풍채가 당당하고, 얼굴 모습도 빼어났으며, 인사범절 또한 어긋남이 없었다. 이 젊은이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길이었다. 워낙 없는 집안이라 빌어먹어야 할 형편이었는데, 길에서 그만 폭설을 만난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젊은이의 사정을 들은 늙은이는 젊은이를 자기의 손녀사위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늙은이와 젊은 나그네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부랴부랴 저녁을 지어 밥상을 들고 들어간 손녀딸은 젊은이를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젊은 나그네 또한 첫눈에 반하는 눈치였다. 이를 알아 챈 손녀의 할아버지는 두 사람의 인연을 먼저 이야기하며 뜻을 물었고, 이에 젊은이 또한 손녀딸을 지어미로 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청혼을 하게 되었다. 늙은이는 할애비로서 마음이 아주 흡족해져서 망설일 것 없이 두 사람의 혼인을 승낙하였다. 이리하여 손녀딸과 젊은이는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 서로의 장래를 굳게 언약하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젊은이가 한양으로 떠날 때 손녀에게 말하였다.

“반드시 낭자를 잊지 않고 장원급제하여 데리러 올 터이니, 낭자 또한 나를 잊지 말고 기다려 주시오.”


한 걸음도 떼기 싫은 발걸음을 옮겨 한양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손녀딸은 낭군님이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젊은이가 한양으로 떠난 지 한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 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다시 겨울이 오고 또 가고 봄이 와도 젊은이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늙은이와 손녀딸이 젊은이를 기다리는 동안 이 고을에는 새 사또가 부임해 왔다. 신임 사또는 손녀딸의 미모를 전해 듣고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늙은이와 손녀딸은 젊은이와의 언약을 이야기하며 사또의 청을 거절하였다. 여러 번 청을 넣어도 끝내 거절을 당한 사또는 마침내 그들을 옥에 가두고 온갖 고문과 회유를 번갈아 가면서 자기의 청을 수락하라고 박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끝끝내 거절을 하므로 사또는 분개하여 두 사람을 강변으로 끌고 가서 목을 베어 죽이고 말았다. 손녀딸의 목에 망나니의 칼이 번쩍이며 어지는 순간, 하얗고 예쁜 새 한 마리가 휙 날아올라 구슬피 울며 사라졌다.


한편 한양에 간 젊은이는 첫 과거에는 실패하고 갖은 고생을 다하며 지내다가 다음 해 과거에 급제하였다. 영남지방의 암행어사가 되어 늙은이와 손녀가 사는 마을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그 늙은이와 손녀딸은 죽고 난 뒤였다. 젊은이는 원통하게 죽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좀 더 일찍 내려오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였다. 젊은 어사는 국정을 바로 잡고 그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그들이 죽은 그 자리에서 고을 사또의 목을 베었다. 그때 두루미 두 마리가 다시 나타나 하늘을 몇 바퀴 맴을 돌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부터 두루미들이 차츰 늘어나기 비롯하여 손녀딸이 죽은 곳이 보이는 마을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두루미가 서식하는 마을을 학동이라 한다. 또한 사기를 굽다가 억울하게 죽은 늙은이와 손녀딸이 살던 마을을 사그막골로 불렀는데 그 후에도 이 마을에서는 사기를 굽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 1997년 경남 방문의 해, 경남 전설을 찾아서, 거창편,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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