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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r 03. 2022

무릉리 사람들의 제사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무덤실로 부르는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옛무덤들이 많이 있다. 이 옛 무덤에서 무덤실이라는 마을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을은 다른 어느 동네보다도 제사를 지낼 때 과일 하나 차려 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제사를 지내는 규칙 절차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성을 쏟는다고 한다. 무릉리 사람들이 유달리 제사를 정성스럽게 지내게 된 내력 이야기가 아직까지 전해 오고 있다.


옛날 어느 날 한 소금장수가 이곳을 지나가다 동네까지 미처 들어오지 못하고 동네 뒤편의 큰 묘 옆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이 소금장수는 도보장수였기에 날이 저물면 때로는 산의 굴속에서 자기도 하고, 혹은 숲 속에서 자기도 하였다. 다행히 인가에 닿아 사랑방이나 머슴들이 거처하는 방에라도 자게 되는 날이면 더할 수 없는 다행이었다. 이 날도 산을 넘다가 초행길이라 동네가 먼 곳에 있는 줄 알고 이 무덤의 상석을 방바닥으로 삼고 하룻밤을 넘기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별이 총총히 떠 있는 여름밤 주위에서는 풀벌레 우는 소리가 처량히 들리는 가운데 소금장수는 이런 일 저런 일 고달픈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다가 살푸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자정이 넘어 온천지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한데 이 소금장수의 귀에 어렴풋이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두 개의 무덤이 희미하게 보였고, 그곳에서 두 귀신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금장수는 겁이 덜컥 났지만 이판사판이라 생각하고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으려니 그 귀신들은 소금장수가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의치 않고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계속했다. 한 귀신이 다른 귀신에게 말하였다.


“어이, 자네! 오늘이 내 제삿날인데 우리 집에 같이 가지 않으려나?”

그 말을 듣고 다른 귀신이 대답하였다.

“허, 그 참 잘 됐네. 요새 며칠 굶어서 배가 출출하던 참이었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같이 가세.”


그러더니 두 귀신은 무엇이라고 지껄이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두 귀신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소금장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짐을 챙겨 어서 이곳 떠나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두 귀신이 금방 다시 나타났다. 한 귀신이 볼멘소리로 말하였다.


“아니, 자네! 제삿밥 먹으러 가서 왜 제삿밥을 먹지 않고 그냥 왔나? 모처럼 진수성찬을 먹게 되었다고 자네 따라갔더니 내가 먹는 것이 아까워서 그랬나?”

그러자 다른 귀신이 사과했다.

“아닐세! 그게 아닐세! 내가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고보니 밥그릇에 구렁이가 있지 않나. 그래서 화가 나서 손자 녀석을 국그릇에 집어던지고는 왔네. 미안하네.”

그 말을 들은 다른 귀신이 대답했다.

“아, 그런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자네를 원만했네. 밥에다 구렁이를 넣다니 그렇게 정성이 모자라는 밥을 안 먹기 잘했네.”


두 귀신이 구시렁구시렁 하는데 마침 동네 쪽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자 두 귀신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소금장수는 두 귀신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짐을 챙겨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는 동네 쪽으로 향해서 줄달음쳐 내려왔다.


그래 입구에 와서는 소금  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고 정신을 수습한 다음 지난밤 제사를 지낸 집을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과연 어느 집에 가보니 제상을 그때까지 치우지 않았고, 제사를 지낸 다음이라 온 집안사람들이 모여서 일부는 음식을 들고 있었다. 소금장수가 주인을 찾아 인사를 하고는 어젯밤에 자기가 겪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소금장수의 이야기를 들은 주인이 아직도 치우지 않은 젯밥을 보니 과연 거기에는 긴 머리카락 한 올이 들어 있었다. 물론 이 집주인의 아들이 어젯밤 제사를 지내는 도중에 뜨거운 국그릇에 엎어져 몸에 화상을 입게 된 일도 사실이었다. 주인은 소금장수의 이야기가 참말임을 알고는 정성없이 제상을 차린 것을 후회하며 이 소금장수를 극진히 대접해 보냈다.


그 이후에 이 집에서는 날을 잡아서 음식을 정성껏 장만하여 제사를 다시 지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온 동네에 퍼져서 마을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데 더욱 정성을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 1997년 경남 방문의 해, 경남 전설을 찾아서, 거창편, 35~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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