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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r 11. 2022

늑대 바위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거창읍 금천동에서 옛 거창농고로 가는 길에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동네가 하나 있다. 이 동네를 금천숲 또는 쇠비내 숲이라고 하는데 동네 가운데 편편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 거창이 개발되기 전 이 동네는 숲이 울창한 야산과 허허 들판으로 둘러싸인 고적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 밤 자정이 넘으면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마을 가운데 있는 바위에 올라앉아 놀다가는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사라지곤 했다. 동네 사람들은 저녁만 되면 문을 잠그고 문 바깥출입을 삼갔다. 이뿐만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도 늑대 소리에 놀라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일이 허다했다.     

이 마을에 가축을 기르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놈의 늑대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가축들이 죽어 나가기는 그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 그는 늑대를 잡기 위해 덫을 놓았는데, 그런 다음부터 이상하게도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늑대가 나타나지 않자 동네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생업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런데 덫을 놓은 지 한 해가 지난 어느 날 밤 자정이 지날 무렵이었다. 예의 그 늑대가 다시 나타나 울다가 사라졌다.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은 동네 사람들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한 자라에 모여서 다시 덫을 놓기로 의논하였다. 그리하여 그때 덫을 놓았던 그 사람이 덫을 손질하고 있었다.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어 저녁때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의 집 앞을 지나던 중이 덫을 손질하고 있는 그를 보고 말하였다.     

“그 늑대를 죽이려 들면 반드시 당신이 죽을 것이고, 그리하면 동네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니 덫을 놓는 일을 그만두시오.”     

그 사람은 중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저녁이 조금 지난 후 덫을 들고 그 바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 바위 위에는 저녁나절에 자기 집을 지나갔던 그 중이 염불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깜짝 놀라 그 바위에 다가가지 못하고 중이 염불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중의 염불은 계속되었고, 그 사람은 바위에 덫을 놓지도 못하고 마냥 중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밤이 깊어 자정이 되자 중은 바위에서 사라지고 그 위에는 늑대 한 마리가 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 사이에 그 주위에는 늑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기겁을 하고 혼을 빼앗긴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 소리를 들은 늑대들이 순식간에 그 사람을 잡아먹었다. 이후 사람의 고깃살을 맛본 늑대들은 매일 밤마다 동네 사람 한 사람씩 잡아먹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의논한 끝에 마침내 그 바위를 깨뜨리기로 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바위를 치는 순간 천둥이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하는 수 없이 바위 깨뜨리는 것을 중단하고 동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천둥소리와 비가 멈추고 갑자기 하늘이 밝아오면서 바위 있는 곳으로부터 쌍무지개가 뜨는 것이었다. 그 무지개 위로는 호랑이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형상이 수없이 나타나 보였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늑대도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1997년 경남 방문의 해, 경남 전설을 찾아서, 거창편, 4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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