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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y 12. 2022

혼례5

한국 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마무리     

 박제상은 신라 충신으로 눌지왕의 동생 보해(복호: 고구려의 볼모)와 미해(미사흔:왜의 볼모)를 구한 인물이다. 그의 아내에 관한 설화가 울산 치술령에 망부석을 남아있다. 박제상을 두고 삼국유사에서 김제상이라고 일컫는다. 일연스님이 착각한 실수였을까? 아닐 것이다. 당대 고려 최고의 석학이었던 분이 역사적 인물의 성씨를 실수로 적었겠는가? 박제상이 김제상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신라 시절에는 자녀가 부모 중 어느 쪽 성을 따라도 무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이 불문율이 된 것은 주자가례에 입각한 유교의 철칙일 뿐이다. 유교의 관점에서 쓴 삼국사기에서는 아버지의 성을  이름 ‘박제상’으로, 불교의 관점에서 쓴 삼국유사에서는 굳이 유교의 관점을 따를 필요가 없었으므로 어머니의 성을 따서 ‘김제상’으로 기록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또 한 가지 신라에만 여왕이 셋이나 있었던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봉건국가의 왕좌는 대개 남성들이 취해 왔다. 고구려, 백제만 보더라도 여왕이 있었던 적은 없다. 세 나라 가운데 오직 신라에서만 선덕, 진덕, 진성이라는 세 왕을 보위에 앉혔을 뿐이다. 이 물음을 던지면 열에 아홉은 신라 골품제를 들고 나선다. 일면 타당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나라든 왕통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와 방비는 있어 왔다. 신라의 여왕 출현은 골품제와 같은 인위적인 신분제도가 아니라 더 근본적이고 원형적인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옛이야기 가운데는 ‘여복 설화’가 많다. 주로 주인공이 현실에서는 곧잘 구박받는 딸이거나 아내, 며느리들이다. 이야기의 처음에는 여성(딸, 아내, 며느리)의 위대함을 모르고 비천하게 여겨 대수롭지 않게 대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성이 복덩이였음을 깨닫는다는 게 이들 이야기의 주제이다. 이화여대에서 강의했던 김대숙 교수는 ‘내복에 산다.’ 계열의 이야기를 모아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도 하였는데, 이들 ‘여복 설화’들은 한결같이 그 연원이 깊어서 대개 신화에까지 소급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원형이 되는 신화가 오구신의 내력을 풀어낸 ‘오구본풀이(바리데기 이야기)와 전상(운명)신의 내력을 풀어낸 ’전상본풀이(‘감은장아기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문화 속에는 인류 문화의 두 원형인 천신 문화와 지신 문화가 조화롭게 융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서사 문화(드라마, 영화 등)나 음악적 재능이 세계인에게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온 인류의 문화적 뿌리를 한국문화가 다 가지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방탄소년단과 싸이, 기생충과 미나리, 판소리와 사물놀이, 한복과 한식 등 날이 갈수록 한국의 매력에 세계인들이 빠져드는 것은 한국문화가 외형적, 현실적으로는 낯설면서도 내면적, 무의식적으로는 너무도 익숙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유전자 속에도 천신 문화나 지신 문화, 혹은 우리처럼 천부지모신 문화를 오래도록 지녀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 우리의 혼례 풍습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집단 무의식 속에 깊이 잠자고 있는 여성 존중 문화를 들추고자 했다. 이제부터라도 현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극단적 남성 혐오와 복수심을 버리고 한국 여성의 유전자 속에 숨어있는 대모신적인 여성의 참 권위를 되찾기를 바란다. 앞뒤를 가리지 않는 감정적 파행은 더 큰 불행만 초래할 뿐이다. 좀 더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설득력 있게 주장할 때에, 모든 남성은 인류 역사상 여성을 억눌러 왔던 그들의 원죄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돌아선 자리에서 여성의 진솔한 반려자가 되어 줄 것이다. <끝>

                                                                                                                                   - 202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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