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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Sep 29. 2022

설화1

- 한국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어느 식구에게 위기가 닥쳐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한다면, 과연 누구를 버려야 할까요? 어린 자식일까요? 늙은 부모일까요?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이 위태로운 질문에 대하여 어느 민속학자는 ‘다소 망설이기는 하겠지만 대개 서양인들은 늙은 부모를 버리겠지요.’ 하지만 그는 전통적인 동양인의 결정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닫았다. 이 학자의 대답과 침묵 속에는 어떤 문화적 속뜻이 숨어 있을까?


우리 조상은 밤하늘의 수만큼이나 많은 옛이야기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우리만큼 이야기가 많은 겨레도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는 효도 풍습의 뿌리가 깊이 박힌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효도는 조선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교화정책의 풀무질을 받아오긴 했지만, 조선의 효도 정책만으로 우리 겨레의 효도 풍습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우리의 효도 풍습은 조선을 넘어 훨씬 앞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출발점을 확정할 수 없을지는 모르나, 신라의 효녀 지은 이야기나 효자 손순 이야기는 적어도 상고시대까지는 잘 견인해 준다. 따라서 우리의 효도 풍습은 최치원이 난랑비서에서 알려준 풍월도에도 일찌감치 그 알을 슬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려장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고려장은 옛날에 늙은이가 너무 나이 들어 일흔이 넘으면 그 늙은이의 자식이 몸소 외진 곳에 내버렸다는 인습이다. 더러는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두보 시의 구절 중 ‘고래희’가 그 뿌리라고 들먹거리기도 하고, 또 더러는 강감찬 장군을 불러오기도 하며, 어느 이야기꾼에 따르면 소국이 대국을 이긴 슬기를 노인에게서 배운 데서 왔다고도 한다. 하지만 고려 시대의 풍습을 기록한 그 어떤 책을 살펴보더라도 우리 겨레에게 고려장 같은 풍습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어찌 된 일일까?


한편 기로국(棄老國)이라는 나라가 실재했다는 문헌이 한때 발견되었다. 옛날 몽골에서는 유목을 위해 거주지를 쉼 없이 이동했던 탓인지 기로 풍습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노인이 나이 들어 노환이 들거나 거동이 불편해지면, 다음 거주지로 가기 전 온 가족이 어른을 따로 모실 채비를 한다. 짐을 싸서 한번 떠나면 해가 바뀌어야 그 자리로 돌아올 것이므로, 한 달포 즈음 드실 만큼의 음식을 마련해 드리고 잠자리도 단단히 잘 챙겨드리는 의식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로장’라 하는데 기로국이라는 이름도 기로 풍습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또 고려장이 기로장과 소리가 닮은 점을 악용하여 고려 시대에 기로 풍습이 실재했다고 왜곡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고려장이란 말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실이 이 견해를 잘 뒷받침해 준다.


설사 기로장이 실재했다고 해도 현대를 사는 우리가 비난할 일은 아니다. 2020년 4월 7일 경향신문에 실린 ‘경주 월지 우물에서 발굴된 세 아이의 유골’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에밀레종 주물을 뜰 때 아이를 공양했다는 기록은 또 무엇인가? 이로 미루어 볼 때 손순이 노모를 모시려고 아이를 땅에 묻으려고 했던 것은 단순한 허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인류의 어떤 문화나 풍습도 좋고 나쁨이 없다. 그들이 처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 생겨나고 이어져 온 최선의 생존 방식이요 문화양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도에 관련한 풍습 또한 같은 눈으로 보아야 한다. 효도 이야기가 허구 갈래에 속해 있다는 점도 더불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


- 이 글을 읽기에 앞서 저의 브런치  <옛이야기 속으로> "효도이야기"에 올라 있는 이야기 네 마리

(저승길에서도 자식 걱정, 나라구한 늙은이, 손순이 이야기, 감청이 이야기)를 먼저 읽고 오시면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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