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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Oct 02. 2022

설화2

- 한국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내가 읽은 책과 세상>

굶어 죽는 일을 피하는 가장 효율적인 길은 무엇이었을까? 애당초 늙은 부모를 내버리려고 했던 주인공은 이웃의 비난을 피할 수 없어서였다고 말한다. 이웃의 비난이 정당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그것은 풍습이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비난을 감수하고 그것을 인습으로 재인식하며 대항하여 마침내 승리한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의 힐난이나 국법의 지엄함을 감수하고 부모를 버리지 않는 무모함(?)을 감행한다. 이 무모함으로 말미암아 이야기는 사회 개혁적인 메시지를 잠재하고, 동시에 개인의 효도 의지는 진득하게 이야기의 표피 밖으로 배어 나오는 것이다.

      

오랜 관습(인습)이나 전통이 때로는 신처럼 거대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네 유교적 관습을 떠올려보면 쉽게 와 닿지 않는가? 그런데 부모를 버리려고 했다가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오롯이 주인공의 효도 의지에서 비롯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이 세계에 도전하여 끝내 이기는 이 이야기의 미학은 조동일 교수가 말한 ‘우아미’에 얼마나 가까울까? 할리우드 영화처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들을 가로막는 적(장애)을 물리치고 끝내 승리를 이룩한 해피엔딩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이에 견주어, 아이를 버리려고 했던 주인공은 부처님에게서 자식을 대신할 선물을 받는다. 돌종이나 동삼이 그것이다. 자식을 죽이지 않고도 효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부모를 살리기 위해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주인공은 말한다. “아이는 또 낳으면 그만이지만 어머니는 그럴 수 없으니 저놈을 묻어 버립시다.” 이때 주인공의 자식은 ‘철부지 철이’가 아니라 어머니의 고기반찬을 빼앗아 먹고 있는 ‘걸신 혹은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의식은 냉혹하리만큼 이지적이고 셈 빨라 보인다. 감청이 부모에 견주면 그래도 손순은 점잖은 편이다. 감청이 부모는 병든 노부를 살리기 위해 자식을 솥에 넣어 삶아 약으로 드린다. 물론 그것이 아이가 아닌 동삼이었음이 후에 밝혀지긴 하지만, 이야말로 잔혹(엽기)의 절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 눈으로 보았을 때의 모습일 뿐이다. 한때 북경원인 발굴에도 참여했던 프랑스의 신부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5.1.~1955.4.10)은 창세기의 엿새는 진화론의 320만 년에 맞먹는다고 주장하면서 하느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다름을 역설하였다. 인본주의 바람이 불고난 이후 우리는그 이전보다 에덴동산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 떨어져 나오게 된 셈이다. 같은 대상일지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 서낭 눈과 사람 눈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그 이상이 아니겠는가.   

  

자식을 버리려고 했던 이야기도 검님(地神) 즉 신의 눈으로 본다면 어떨까? 주인공이 종요롭게 여기는 믿음, 아이는 또 낳으면 그만이지만 부모는 한번 죽으면 되살릴 수 없다는 믿음은 자연의 섭리이자 검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이다. 부처님이 감동하여 아이를 죽이지 않고도 어머니를 잘 모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도 신앙적 티프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이다. 따라서 자식을 버리려고 하는 이야기들은 부모를 버리려고 하는 이야기에 견주어 주술적인 뿌리가 훨씬 더 깊이 벋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밀레종을 만들 때나 월지 우물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이를 희생 제물로 바쳐 거룩한 일을 이룩하고자 한 흔적들은 분명 검님을 우러르는 일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이때 아이는 개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존재한다. 아이는 이야기를 통하여 청중에게 전달하려는 교훈의 매개체로서 허구화되어 있을 뿐 인격체로 보기 어렵다. 주인공의 효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플롯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계속>     


- 이 글을 읽기에 앞서 저의 브런치  <옛이야기 속으로> "효도이야기"에 올라 있는 이야기 네 마리

(저승길에서도 자식 걱정, 나라구한 늙은이, 손순이 이야기, 감청이 이야기)를 먼저 읽고 오시면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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