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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Oct 15. 2022

설화3

- 한국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풍습(인습)에 따라 하나같이 부모나 자식을 버리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늙은 부모를 산에 내버려야 하는 주인공이나 철부지 아이를 묻어야 하는 주인공이나 그들이 처한 사정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먹거리가 없는 형편에 한 입이라도 줄여 보려고, 식구를 내버려야 하는 처지라는 점에서 닮았다. 버리려고 했던 식구가 부모였든 자식이었든 그들은 서사 맥락에서 인격체라기보다 서사적 기능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굶어 죽는다는 것의 비애감이 식구를 제 손으로 죽여야 하는 비통함과 다르지 않음을 비유한 것일 터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의문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우리에게 효도란 무엇인가? 효도는 우리를 어디까지 시험하는가? 자식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   

   

한편 위기를 대처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풍습이 달라서라는 말도 될 것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전령사 같은 굶주림을 맞닥뜨린 상황이 ‘운명(검님)’에 빗댈 수 있다면, 이를 맞아 대처하는 의지의 총화는 ‘풍습’에 비유할 수 있을 터이다. 가난으로 말미암은 굶주림, 굶주림 때문에 맞이할 식구의 죽음 앞에서 어떤 주인공은 늙은 부모를 버리려 하고, 어떤 주인공은 어린 자식을 버리려 한다. 또한 주인공의 위기에 맞설 힘을 얻는 방향도 서로 어긋나며 교차한다. 부모를 되살리는 이야기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에 기대어 인습에 대항하는 것과 달리, 자식을 되살리는 이야기 주인공은 검님을 향한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물려받은 효 이야기에는 크게 두 갈래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늙은 부모를 내버리려고 하다가 다시 모시게 되는 이야기이고, 나머지 하나는 어린 자식을 버리려고 하다가 부모를 모실 더 좋은 길이 생겨 다시 살려오는 이야기이다. 앞 갈래는 한반도의 북부, 서부, 남부에 걸쳐 널리 퍼져 있으니 북방 이야기라고 하고, 뒤 갈래는 제주, 한반도의 남부, 동부, 중부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남방 이야기라고 부를 만한 하다. 그 분포 범위에도 차이가 있는데, 북방 이야기는 현재의 북한 지방에서부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전역에 두루 전승되고 있지만, 남방 이야기는 제주도를 포함한 남부 지방과 중부 지방에 갇혀 있어, 북방문화의 우세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북방과 남방은 자연 지리적 방위라기보다는 문화 역사적 방위를 가리킨다.      


효도 이야기 가운데 북방 이야기에는 <나라를 구한 늙은이>와 <저승길에서도 자식 걱정>, <고려장 없앤 강감찬> 등이 있다. 남방 이야기에는 <손순 이야기>와 <감청이 이야기>, <시부 살린 효부> 등이 있다. 다 같이 효도를 지향하는 이야기지마는 부모 희생 화소와 자식 희생 화소가 대립적인 속성을 띤 채 다른 갈래의 이본 속에 들어있다. 이는 우리 문화의 역사적 지형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 문화의 대교류 현상은 한반도를 넘어서 북으로는 만주와 요동, 바이칼 호수에 이르고, 남으로는 유구와 대만, 남인도에까지 가 닿는다. 하지만 한반도에 국한해서 본다면, 북방 이야기는 북부여에서 비롯하여 고구려, 백제를 거쳐 탐라에 이르는 북방문화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고, 남방 이야기는 탐라에서 비롯하여 가야, 신라에 퍼진 남방문화의 지배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태극 문양을 시계 도는 방향으로 90도 돌렸을 때 양극과 음극이 지향하는 방향은 우리에게 작은 일깨움을 준다. 음극인 파랑은 완전한 위쪽에서 출발하여 왼쪽 길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리다가 완전한 아래쪽에 이르면 그 기운이 쇠한다. 이에 견주어 빨강은 완전한 아래쪽에서 피어올라 오른쪽 길을 따라 위로 솟구치다가 그 기운이 점점 졸아들면서 완전한 위쪽에 다다른다. 물과 불의 성격을 시각화한 이 태극의 이치에서 왼쪽이 백두대간의 서쪽 지방이요 그 오른쪽이 동쪽 지방임을 대치해 본다. 찬 공기는 아래로 내리고 더운 공기는 위로 오르듯이, 우리 문화 역시 북방의 문화적 기류는 남쪽으로 내려오고 남방의 문화적 기운은 북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방문화의 힘이 더 세었던지 남방문화의 북방 한계선이 중부 지방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흐름의 대세는 이야기들이 분포하는 모습에서도 엇비슷하게 잘 드러날뿐더러, 문화의 곳곳에 잘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끝>     


- 이 글을 읽기에 앞서 저의 브런치  <옛이야기 속으로> "효도이야기"에 올라 있는 이야기 네 마리

(저승길에서도 자식 걱정, 나라구한 늙은이, 손순이 이야기, 감청이 이야기)를 먼저 읽고 오시면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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