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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r 21. 2021

배달말을 심은 사람

-빗방울 선생이 국어심의회에 남긴 자취 4 <내가 읽은 책과 세상>

그러나 삐뚤어진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바르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끝내 ‘짜장면’은 ‘자장면’을 누르고 대중말(표준어)로 인정받았다. 2011년(국립국어원장 권재일) 8월 국어심의회는 ‘제1차 국어심의회 전체 회의’를 열어 국민 실생활에 많이 사용되지만 대중말로 인정받지 못했던 ‘짜장면’과 ‘먹거리’ 등 39개 낱말을 대중말로 인정하였다. 선생의 눈은 이처럼 어떤 누구보다 멀고 깊은 곳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은 바쁜 와중에도 중국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도 참석하였다. 그동안 한국과 북한과 중국 세 나라의 국어학자들이 ‘겨레말큰사전’을 만드는 일로 종종 만나던 무렵이었다. 2007년 11월 16일부터 내리 사흘 동안 중국 연변대학교 학술보고청에서는 ‘민족어 발전의 현 실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한국, 북한, 중국의 국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가 열렸다. 거기서 선생은 ‘겨레말을 하나로 가꾸는 일’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였다. 겨레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였던 자리인 만큼, 선생의 가슴 뜨거운 연설은 한층 더 깊은 울림으로 분위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2008년 2월 25일 대통령이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바뀌고, 2월 29일 장관 또한 김종민에서 유인촌으로 바뀌게 되면서 국어정책의 방향이 예전과 사뭇 다르게 변화된다. 문화관광부였던 이름도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로 바뀌게 됨에 따라 국립국어원의 분위기 또한 저절로 탈바꿈되어 갔다. 이 무렵부터 선생의 국어심의회 발자취가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때마침 국어심의회 소식이라든지 각 분과위원회의 소식이 점점 들리지 않게 되더니 결국에는 국어심의회 전체 위원회라든지 국어심의회위원장이라든지 하는 이름들이 사라지다시피 된다. 예컨대, 국립국어원의 계간 소식지 ‘새국어생활’을 살펴보더라도 예전에는 종종 ‘국립국어원 소식란’에 국어심의회 소식이 실리곤 했었지만 이즈음 이후로는 급격하게 줄어들다가 결국엔 거의 이름조차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정권이양이라는 시대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아직까지 정치적 힘겨루기에 휘둘리는 우리의 국어 정책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 주무관에 따르면 선생의 흔적이 국어순화분과위원회 회의록에 2008년 6월 정도까지는 나타나고 있다고 전해 주긴 하였다. 하지만 국어원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나 기타 언론 같은 것들을 고려해 보면 선생의 심의회 활동이 눈에 띄게 위축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국립국어원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에는 언제든지 달려갔다. 2009년 4월부터 국어원장을 맡았던 권재일 전 국립국어원장의 증언(전자편지)에 따르면 선생은 국어문화학교에서 달마다 빠짐없이 특별강연을 맡아 주었다고 한다. 선생의 마음속은 늘 배달말로 가득 차 있었고, 온 겨레가 오롯이 배달말을 부려 쓰는 날을 꿈꾸었을 뿐, 다른 바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은 비록 하던 일이 중도에 털어지더라도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할 줄 몰랐다. 더 바르고 굳은 길을 찾으려고 애쓸 뿐이었다.


이것으로 김수업 선생이 국어심의회에 남긴 발자취를 되짚어보았다. 이 글이 선생의 값진 발걸음에 더러운 떼를 입히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크다. 국립국어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여기저기를 쑤셔대며 자료를 모으는 동안 한국의 부피에가 살다간 삶을 뒤쫓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문득문득 만나는 선생의 이름이며 직함들이며 선생이 남긴 말과 글과 살아있는 동영상 들이 나에게는 마치 부피에의 나무와 같이 여겨졌다. 살아생전에 선생이 심어둔 배달말이라는 나무가 얼마나 많고 그 뿌리 또한 얼마나 깊은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어심의회란 곳은 국어정책을 제대로 펼 수 있도록 바로잡아주고 도와주는 곳인 만큼, 선생으로서는 국어심의회 활동이야말로 배달말을 뿌리 깊게 심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나니 선생이 어쩌면 부피에보다 더 거룩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는 일과 겨레의 가슴에 배달말을 심어 이룩하고자 했던 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값지고 거룩하다 말할 것인가? 프레데릭 바크가 부피에를 두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왠지 나에게는 마치 선생을 두고 한 말 같아서 자꾸만 고개가 숙여진다.


“주인공은 나무를 심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종요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친 자신의 노력이 헐벗은 대지와 그 위에 살아갈 사람들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대지가 천천히 변해 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보내준 일꾼이었습니다.”  <끝>


* 김수업선생 1주기 추모사업회, 새벽을 열어 길이 된 사람 빗방울 김수업, 도서출판 피플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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