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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r 21. 2021

배달말을 심은 사람

- 빗방울 선생이 국어심의회에 남긴 자취 3 <내가 읽은 책과 세상>

국립국어원에서는 해마다 네 번 ‘새국어생활’이라는 간행물을 발행한다. 국립국어원의 인사동향이나 행사소식, 국어논문, 문학작품, 국어생활 등을 싣는 일종의 계간 소식지이다. 2007년 봄호 그러니까 제17권 1호에 선생은 ‘전문용어의 순화 방안’이라는 글을 실었다. ‘전문용어’라는 특집 주제에 맞추어 쓰신 글이 아닌가 한다. 선생은 이 글에서 당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섯 꼭지로 나누고 꼭지마다 물음으로 작은 제목을 삼았다. 평소 선생이 좋아하는 방법이었다. 순화가 뭡니까? 순화를 왜 합니까? 전문용어가 뭡니까? 전문 용어를 왜 순화합니까? 전문 용어를 어떻게 순화합니까? 초등학생도 넉넉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내는 선생의 ‘전문용어 순화론’은 선생의 말과 글이 늘 그랬듯이 그야말로 글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글의 표현이나 문장 자체가 순화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었다. ‘전문 용어를 가다듬고 길들이는 까닭은 전문용어를 오만 사람의 품에 안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는 선생의 말에는 따뜻함과 통쾌함이 함께 묻어난다. 따뜻함은 어떤 잣대로도 사람을 재지 않고 오만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 했던 선생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요, 통쾌함은 그러한 진리를 가로막는 헝클어진 온갖 궂은 실타래를 단칼에 잘라버리는 선생의 단호함에서 뿜어진 것일 터이다.


 ‘워크숍을 겸한 국어심의회 전체 회의와 분과회의’가 2007년 8월 17일부터 18일까지 서울시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8월 17일 선생과 홍윤표 부위원장이 먼저 발표를 하고 난 뒤, 4시부터 6시까지 3개 분과별로 분과위원회를 따로 열었다. 국어순화분과 위원회는 3층 소금실에서 선생을 비롯하여 12명의 위원과 4명의 위임으로 진행되었다. 논의 안건으로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 운영과 외래어 남용 개선정책, 그리고 국어심의회 활성화 방안이었다.


저녁 8시부터는 분과별로 흩어졌던 위원들이 다시 모여 전체 회의를 하였다. 전체 회의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 언어 통일을 위한 협의체 구성에 합의해 줄 것을 건의하는 건의문과 국어심의회가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장관과 원장에게 보내는 건의문을 만들기로 의결하고 몇 위원이 대표로 초안을 만들기로 하고 회의를 마무리하였다.


10월 9일에는 국립국어원장 주재로 개최한 561돌 한글날을 맞아 선생은 김계곤 한글학회 이사장, 김석득 외솔회 이사장과 함께 2007년도 한글발전 유공자들에 대한 포상 전수식과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였고, 11월 2일에는 ‘바람직한 외래어 정책 수립을 위한 학술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이 토론회 또한 국립국어원에서 급변하는 국어 환경, 특히 외래어 남용 및 표기 혼란에 대처하는 종합적인 외래어 정책 수립의 모색을 위하여 마련한 것이었다. 한글문화연대 고경희 대표의 주관으로 한국정책방송(KTV)에서 선생은 제2부 이성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외래어 및 외국어 남용과 오용’이라는 발제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토론의 자리가 마련되면 문제를 살피고, 고칠 부분은 고치겠다는 자세가 필요한데 처음부터 고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나왔다면 이런 자리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선생은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전제하고 국립국어원 관계자에게 뼈아픈 소리를 하였다. 선생은 이 토론회에서 외래어 표기 오남용의 실태와 이를 사실상 조장하고 있는 당시 외래어표기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러나 그날 토론회를 후원한 국립국어원 측 토론자는 어문 정책의 일관성을 들어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못을 박았다. 결국 마지막 종합토론 때도 국어원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국민은 “짜장면”이라고 말하는데 국어원만 ‘자장면’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국민들의 언어생활이 틀렸다고 손가락질하고 있는 셈이었다. 11월 6일자로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는 그날 토론회는 언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공급자 중심의 어문 정책’을 여실히 보여준 현장이었다고 강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계속>    

* 김수업선생 1주기 추모사업회, 새벽을 열어 길이 된 사람 빗방울 김수업, 도서출판 피플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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