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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Apr 23. 2021

마고할미 이야기

2. 마고할미와 지리산 <옛이야기 속으로>

지리산은 겨레의 삼신산 가운데 하나이고, 통일신라의 오악 가운데 하나였다. 자락 둘레 팔백 리에 아흔아홉 골짜기를 지닌 채 고대 삼한을 품어 거느리고 몇 천 년에 걸쳐 이룩한 온갖 삶의 자취가 가득하다. 그 가운데 첫손 꼽을 하나가  바로 지리산의 임자 마고할미 이야기다. 그렇다 보니 지리산과 그 둘레 고장 곳곳에 마고할미의 자취가 남아 있다.


금서면 방곡리 <공개바위>는 피사의 사탑을 떠올리게 하는 5층 바위탑이 얼마 전부터 알려졌다. 산청군과 함양군을 아울러 가까운 이웃 마을에는 이 바위를 삼베 구만 필을 허리에 두른 마고할미가 공기놀이를 하며 놀다가 공깃돌을 쌓아놓고 갔다고 해서 ‘공개바위’라고 부른다는 전설이 꽤 널리 퍼져 내려오고 있다. 


덕산면 중산리 <신성너덜>에서 산청군은 해마다 평화제를 벌일 때에 지리산 산신께 제사를 올린다. 그럴 적에 꾸미는 제단이 바로 <신성너덜>다. 이 너덜은 마고할미가 장독 바닥에 깔려고 모래를 치마에 싸서 오다가 해진 치마 구멍을 모래가 흘러 내려서 생긴 것이라 한다. 


금서면 수철리에 <당너더렁>이 있었는데, 일제가 들어와 불태워 없앴다. 옛날 큰 전쟁이 났다고 해서 마고할미가 혼자 성을 쌓던 때의 이야기다. 마고할미가 바위를 말에 싣고 머리에도 이고 모래를 치마에 싸서 올라오는데 절골 즈음에서 이미 전쟁에 지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 수 없이 말에 실었던 바위 두 개를 절골에다 내려놓으니 양쪽을 형제바위가 되고, 말은 그 자리에서 굳어져 말바위가 되었다. 그래도 혹시 쓰임새가 있을까 해서 거기서 마고할미가 제 눈으로 전쟁에 져버린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치마에 싼 모래를 그 자리에 쏟아 버리니 당너더렁이 되고, 머리에 이고 오던 바위를 거기다 내려놓고 여태 참았던 오줌을 누었더니 오줌발이 바위를 파서 지금도 파인 자리가 남아 있다.


지리산 곳곳에는 마고할미를 우러러 받들고 매달려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여기저기 땅이름에 ‘당’이라는 말이 붙어서 남아 있을 따름이다. 백무당(아랫당), 제석당(가운뎃당), 천왕당(윗당) 따위가 그 보기이다.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모신 남악사,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모신 성모사, 남원 소의방 산자락으로 내려앉은 남악사, 승려에게 짓밟혀 불태워진 남악사, 일제가 허물고 구례군민이 다시 세운 남악사 등을 보더라도 당집에 모신 성모상이 얼마나 많은 수모와 수난을 당하여 왔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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