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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Aug 25. 2021

저승길에서도 자식 걱정

- 효도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옛날 고리국 시절에는 늙은이가 나이 일흔이 되면 산에 갖다 버리는 것이 풍속이었다지. 그런 풍속을 고리장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그랬는지는 잘 몰라도, 그런 얘기는 많이 전해 와. 그 고리장이라는 것이 산중에 동굴 속이나 아니면 임시로 움막을 지어서는 노인을 거기다 모셔두고 며칠 분 양식을 드리고는 마을로 내려와 버리는 것이지. 몹시 무정한 풍속이야.


어느 한 마을에 어떤 사람이 제 어머니가 나이가 일흔이 다 되어서 고리장을 해 드려야 되었어. 늙으신 분을 산에다 내다버리려 하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어. 아들 마음이야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데, 그래도 어쩌겠어? 풍속이 그렇고 나라 법이 그러니 효자 마음이 무슨 소용이야. 그래 하루는 지게를 튼실하게 만들어서 그 위에 어머니를 태워 지고서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어린 아들놈이 할머니 마지막 길이라면서 끝내 따라 나서는 걸 말릴 수가 없어야지. 하는 수 없이 함께 가기로 했단다.


깊은 산을 찾아 멀리 멀리 가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 쉬엄쉬엄 갔지. 그런데 지게 위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짬짬이 나뭇가지를 꺾어서는 길에다가 버리는 거야. 아들은 어머니를 지고 가느라고 그것을 못 봤지만 손주 놈은 그것을 똑똑히 보았지. 그래 가던 길에 손주 놈이 할머니에게 물었어. 할머니는 무엇 때문에 나뭇가지를 꺾어 땅에다 버리냐고 말야. 그랬더니.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네 애비가 나를 데리고 깊은 산에 들어가게 되면, 돌아갈 때는 길 잃기가 십상이라구, 날이 저물면 산짐승도 겁나 그런다구 해. 이 말을 듣으면서 꾸역꾸역 산을 오르는 동안 아들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렀지.


그렇게 쉬엄쉬엄 높은 산을 오르고 깊은 숲으로 들어갔어. 가다 보니 마침 좋은 자리가 눈에 띄어 그곳을 자리로 정했지. 햇볕도 잘 들고 바람도 잔잔하고 물소리도 새소리도 좋은 명당자리야. 주변에 나무를 자르고 돌을 나르고 해서 자그마한 움막을 지어 놓고 자리를 펴서 어머니를 모셔 놓고 이제 마지막을 절을 올렸어. 아들하고 손주 놈은 눈에 눈물이 가득하고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데, 정작 어머니는 아까부터 자식 놈들 돌아갈 길이 걱정이야. 내가 오다가 나뭇가지를 던져두었으니 잘 보고 잘 찾아가라고 말야. 그러고 나서 움막 앞에서 아들이 이제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온 지게를 불사르려고 했어. 자기 손으로 손수 만든 것이지만 제 어미를 내다 버리는 데 썼으니 그 지게가 얼마나 보기 싫었겠어? 한시라도 빨리 태워버리고 싶었겠지. 그런데 갑자기 아들놈이 소리를 냅다 지르면서 불 지르지 못하게 해.


“아버지, 그 지게 왜 불 질러요?”

“이건 불 질러야 한다. 그러는 법이다.”

“아버지, 이 지게 두었다가 저도 아버지 늙으시면 고리장 해야지요, 우리 할머니처럼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정신이 번쩍 든 게지. 풍속이 다 무엇이더냐, 세상이 뭐라하든 내 어머니는 내가 모셔야겠다 다짐했지. 아들에게 자기가 잘못 했다 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 처음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지 않으려고 해. 나이 많은 늙은이가 이대로 살아 돌아가면, 마을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것이고, 아들 식구들에게도 짐 덩어리라면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거야. 참 부모는 늘 자식 잘되기만을 바란다는 게 맞는 말이야.


그러자 손주 놈이 나서면서 할머니를 냅다 업고는 앞장서서 마을로 내려왔다지. 그 후로는 남들이 뭐라 하든 열심히 잘 모시고 살았는데, 나중에 차차 마을 사람들이 이 식구들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샌가 고리장이 없어졌다는 거야. 참 아름다운 이야기지. 아 참, 이 고리장을 고려장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야, 그건 틀린 소리야. 고려장이 아니고 고리장이라고 해야 맞아요. 고려 때보다도 훨씬 더 먼 옛날에 고리국이라는 나라에서 있었던 얘기란다.

* 원전: [고려장유래, 웅천면 성동리, 박계홍 외 조사, 고정숙 구연, 한국구비문학대계 4집4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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