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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Aug 26. 2021

나라 구한 늙은이

- 효도 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옛날에 한 정승이 아버지가 일흔 살이 되어서 고리장을 하게 생겼어. 자기가 법을 다루는 사람이니 자기가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할 거 아냐. 그래 자기 아버지를 고리장 한다고 참 음식도 많이 마련해서 남보란 듯이 잘하는 척했는데 사실은 고리장 하는 것처럼 흉내만 낸 거였어. 감쪽같이 사람들 눈을 속이고 집 뒤에 토굴을 파서는 그 안에 아버지를 모신 거야. 그 뒤로 이 효자 정승은 집을 드나들 때마다 아버지께 안부를 묻고 식사를 챙겨드리고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했지. 이렇게 잘 모시면서 살았는데, 이 사실은 정승 부부 외는 아무도 몰랐어.


그러다가 어느 날 중국에서 사신이 수수께끼를 던지고는 답을 내놓으라는 거야. 소국에는 인재가 없을거라 얕봐서였지. 수수께끼는 이랬어. 꼭 같이 생긴 암말 두 마리 중에, 어느 것이 어미이고 어느 것이 새끼인지를 맞춰 보라는 거야. 그런데 중국에서 보냈다는 요 말 두 마리가 어찌나 똑같이 생겨 먹었는지 아무리 뜯어보고 훑어봐도 구별이 안 가. 삼정승 육판서 슬기를 죄다 모아 보아도 알 재간이 없어. 이걸 며칠 만에 알아 보내라 했는데 참 큰 일이 난 거야.


효자 정승이 그래 집에 와서 자기 어른 토굴에 인사드리러 들렀어. 이 사람이 지극 효자라 언제든지 조정에 다녀오면 다녀왔다고 꼬박꼬박 인사를 드렸거든. 문안 인사를 드리고 나서 그 수수께끼 얘기를 재미 삼아 드렸지.


“야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알 도리가 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보거라.”


그래 정승이 조정에 들어갈 때 목수를 데려가서는 큰 나무를 베어 여물통을 깊이 파라고 했어. 잘 파서는 콩을 많이 넣고 또 여물도 잘게 썰어 넣고, 겨도 넣어 죽을 끓였다 말이야. 구수한 냄새가 나는 죽을 들이미니까 한 마리가 자꾸 나머지 한 마리에게 콩을 밀어주네. 그래 그 자리에서 사람을 시켜 어미랑 새끼를 구별하는 표시를 써 붙여서, 중국으로 되돌려 보냈어. 그랬더니 얼마 안 있어서 중국에서 기별이 오기를, 조선같이 작은 나라에도 이처럼 큰 인물이 있다니 참으로 존경스럽다며 상을 보내왔어. 임금이 무척 기뻐하면서 정승을 불렀어.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었냐고 물었지.


“소신의 늙은 아비가 가르쳐 주었나이다.”


정승이 사실대로 아뢰었지. 우리나라에는 나이가 일흔에 이르게 된 늙은이를 산에 내다 버리는 것이 인습이 되어 있는 것과 자기가 그것을 어긴 바 있음을 밝히며 벌을 청했어. 국록을 먹는 자로서 남의 눈을 속여 고리장을 한 것처럼 하였으나, 늙으신 부모를 버려두고서는 차마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잠도 이룰 수 없어서 집에 토굴을 파놓고 모셔 왔음을 자백했지. 그러다가


“마침 나라의 걱정거리에 당하여 제 아비에게 물은즉 제 아비가 일러준 바가 바른 해답이 되었습니다. 저는 젊디젊었으나 슬기는 늙으신 제 아비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옵니다.”


정승은 다 아뢰고 난 뒤 죽기를 각오하였으나, 정작 아버지가 어찌 될까 더 걱정이었어. 그런데 임금은 오히려 정승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임금 스스로도 고리장이 악습이라고 여겨 왔다고 해. 그러면서 이참에 이 풍습을 바로 잡아 보자고 하는 거야. 사람이 이른 살이 되어도 그처럼 슬기로운데 어찌 늙어졌다고 무정하게 내다 버릴 수 있겠냐고 하면서, 자칫 좋은 효도 풍습을 해칠 뻔했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고리장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게 되었다는 거지. 이후로 얼마든지 오래 살도록 하면서 온 나라의 딸아들 들이 그 슬기를 배우고, 또한 거룩한 효도로써 모시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 겨레의 아름다운 효도 풍습으로 이어 온다는구나. 

* 원전: [고려장 없앤 이인 아버지, 장천면 상림동, 천혜숙외 조사, 곽형규 구연, 한국구비문학대계  7집16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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