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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r 21. 2021

동유럽에서 문득  낯선 나를 만나다

- 동유럽여행기 4 <사로잡힌 생각들>

- 크로아티아의 심장 자그레브에서 민족의 영웅 요시프 옐라치치를 만나다


시박이 일방통행 도로를 잘못 나서다 반대편 차량에 밀리면서, 좁은 길을 한참동안 후진을 하고나서 출발하였다. 우리는 자그레브 대성당 광장에서 엠마를 만나, 백 미터에 이르는 쌍둥이 첨탑을 지닌 자그레브 대성당(성 스테판 성당)과 성당 입구의 황금 마리아상을 보면서 해설을 들었다. 성당은 1102년에 완공된 이래 전쟁, 지진, 화재 등으로 온갖 수난을 당하였고 지금도 복원공사 중에 있었다. 첨탑은 네오고딕 양식이었으며 외관은 바로크 양식이 묻어나고 있었다.

   성당을 잠시 둘러보고 난 후 우리는 엠마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접어들었다. 성실한 설명과 안내로 우리 길잡이님을 감동시킨 그녀는 시골에서 유학 온 대학생으로 교사를 꿈꾸고 있었다. 골목길을 걷다가 문득 돌락 시장을 만났다. 울긋불긋한 파라솔의 빛깔들이 아직도 고운 머릿속 그림으로 남아있는 풍경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한창 꽃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고운 파스텔톤의 외벽과 붉은 지붕을 한 건물들이 늘어선 라디체바 거리를 따라 조금 경사진 거리를  오르던 끝에 투구를 벗어든 기마상을 만났다. 그 곁으로 아치형의 돌문이 있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스톤게이트다. 13세기 그라덱 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이 성문은 17세기 대화재 이후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대화재가 났을 때 모든 것이 불타 없어졌지만 오로지 성모마리아 그림만 온전하게 되면서 스톤게이트는 전 세계 가톨릭의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성문 바로 안쪽에는 그림을 모신 제단이 있었다. 경사진 길을 조금 더 올라 간 오른쪽에 마르코 대성당의 지붕문양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깨어진 관계 박물관(정말 특이하지 않은가? 난 박물관 이름에 반해 버렸다)’ 앞을 지나 로트르슈차크탑에 이르니 자그레브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로트르슈차크는 도둑의 종이라는 뜻으로, 이곳에 있던 종을 도둑맞으면서부터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오스만투르크 군대를 대포 한 방으로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요즘도 매일 정오에 대포를 쏜다고 한다. 자그레브를 사랑한 시인의 동상을 지나 우리는 옐라치치 광장으로 내려갔다. 광장 중앙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점령 당시 총독을 맡았던 반 옐라치치 백작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반 옐라치치는 헝가리로부터 크로아티아의 자유와 주권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 농노제를 없애는 데 성공한 크로아티아의 민족 영웅이라 한다. 광장 한편에는 만두셰바츠 분수가 있는데, 자그레브라는 도시의 이름 또한 ‘물을 떠 준 곳(자그리바)’이라는 뜻으로 군인에게 물을 떠 준 ‘만다’라는 처녀의 전설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 헝가리의 마자르족에서 흉노족을 거쳐 한무제의 장건에 이르기까지

또 한 번의 엄격한 국경검문을 지나 헝가리로 가는 동안, 우리의 길잡이님은 훈족이 유럽사에 미친 영향과 한나라 장건이 13년 동안의 고초를 겪으며 개척한 비단길 이야기들을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창 바깥은 산 같지 않은 구릉 곳곳에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었고, 그러한 그림 뒤에는 파란 하늘이 맑고 투명하였다. 일곱 마자르 족이 단결하여 세웠다는 헝가리 왕국의 수도 부다패스트로 가는 길은 아련하면서도 구수한 옛 역사이야기 속으로 빨려 가듯이 길레 드러누워 있었다.


부다패스트에 접어들었을 즈음 길잡이님은 헝가리의 천재 피아니스트 리스트를 소개했다. 체르니가 처음 리스트의 연주를 보았을 때의 놀라움, 신적인 연주솜씨로 대중의 우상이 되었던 리스트의 인기, 그리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빠져들었던 헝가리 민속음악과 그로 인한 영감으로 작곡한 헝가리 광시곡 20편 등의 일화는 또 다른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길잡이님은 헝가리 사람들의 체형에 주목하여 주변국 사람들과의 차이점이 긴 허리에 있지 않느냐고 하였고, 긴 허리야말로 말을 달리며 뒤돌아 활을 쏘는 기술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부다패스트는 자살찬가 ‘글루밍 선데이’의 레조 세레즈가 생각나게 하고, 최근에 보았던 ‘그랜드부다패스트호텔’이라는 영화도 생각나게 했다.


헝가리 평야의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이 도시는 야경이 아름다운 도나우강을 경계로 언덕 쪽의 구시가 부다 지구와 반대쪽 평야지대에 위치한 패스트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부다패스트에 도착하자마 우리 일행은 한국식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한국에서 유학 온 의대생 양동주의 안내를 받았다. 영웅광장은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896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삼십육 미터 높이의 중앙 첨탑 위에는 헝가리의 수호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고, 아래로 마자르족의 아라파트 족장을 비롯한 7개 부족장의 기마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 이중 십자가를 든 헝가리의 건국영웅 성 이슈트반 대왕을 기리며


이어 우리 버스는 겔레르트 언덕을 올라갔다. 상인들이 한국말로 손님을 부르는 계단을 지나 성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중십자가를 들고 있는 헝가리 최초의 국왕 성 이슈트반 동상이다. 이중십자가는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동시에 지녔던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바로 그 동상 앞에 있는 어부의 요새는 어부들이 적의 공격을 막는 요새로, 1902년 완성되었고, 도나우강의 전경이 일품인 7개의 탑 역시 마자르족의 일곱 부족을 뜻한다고 한다. 세체니 다리는 너무도 멀고도 가냘프게 보여서 지쳐 있듯 했다. 날씨가 좋을 때면 멀리 헝가리 평야지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고 옛 마자르 족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듯하였다.


 

거기서 조금 위쪽으로 보이는 교회가 마차시 사원이다. 13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후 14세기에 접어들면서 현재의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되었으며 이후 마차시왕의 시대에 88미터(현재는 80미터)의 마차시 탑이 세워지면서 마차시 교회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867년 헝가리 왕으로 즉위한 합스부스크가의 프란츠 요세프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열렸고 헝가리의 대표 작곡가 리스트는 헝가리 대관 미사곡을 직접 작곡, 지휘하기도 했다고도 한다. 조금 떨어진 부다 왕궁은 13세기 몽고 침입 이후 벨라 4세가 에스테르곰에서 피난 왔을 때 지었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고려무신 최씨집권기 즈음이 될 것이다. 지금은 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 국립도서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 자유 시간동안 왕궁 안을 쏘다니다 길을 잃었다.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해 결국 갔던 길로 돌아 나왔다. 아마도 길잡이님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2014년 922() 온종일 흐릿하였다

[자그레브 숙소(05:50~07:52)-자그레브 시가(08:20~10:10)-부다패스트 시가(14:30~21:30)-부다패스트 숙소(22:10~01:30)]

 * 식사(점심: 한국식 비빔밥, 저녁: 현지식 굴라쉬), 숙소(헝가리 부다패스트 숙소 이비스호텔)


* 참좋은여행사 ‘2014년 이달(10월)의 베스트 여행후기’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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