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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Jul 22. 2021

삼인봉 이야기

- 합천군의 옛이야기 2 <옛이야기 속으로>

태조 이성계가 등국한 후 전국의 팔도감사에 영을 내려 무학대사를 찾아 모셔 오도록 지시했으나 일 년이 넘도록 찾지 못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하는 수 없이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관찰사 등 삼인에게 무학대사를 꼭 찾도록 엄한 영을 내렸다.


어느 날 곡산 곡달산 아래 초가에 고승이 혼자 수양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세 사람의 관찰사는 함께 찾아 나섰다. 곡달산 밑에 도착한 관찰사 세 사람은 산언덕 소나무 가지에 신분증명인 마패를 걸어두고 헌 옷과 짚신으로 갈아 신고 걸어서 초가 암자에 도착해 보니 스님 한 분이 채마밭을 매고 있었다.


관찰사가 “ 이 초가 암자는 누가 지었소?”하니 노승이 대답하기를 자기가 얽어 지은 집이라고 했다. “어인 일로 이런 산중에서 수도하고 계시오?”하니 저 언덕 넘어 삼인봉(三印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왜 삼인봉 때문이오?”하고 물으니 “이 곳에 암자를 짓고 수도를 하고 있으면 세 사람의 관찰사가 와서 저 언덕 넘어 소나무에 세 개의 마패를 걸어둔다고 했소. 그래서 세 관찰사는 삼이오, 마패는 도장이니 삼인봉이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제서야 세 관찰사들은 무학대사를 알아보고는 손을 잡고 기뻐하며 “이분이 바로 우리가 찾는 무학대사이시다.”며 태조대왕께서 찾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함께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그리하여 세 관찰사와 함께 돌아온 무학대사는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의 도읍지를 한양에 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산수비기(山水秘機)에 의하면 신라의 의상대사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들으면 5대(200년)를 넘기지 못할 것이요, 중의 말을 들으면 5백년은 갈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중은 무학을 말함이며 정씨란 정도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합천군 대병면)


출처 : 박환태, 합천의 전설과 설화, 합천문화원, 2008, 341~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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