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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Apr 19. 2021

되살아난 솟대패의 신바람

4. 신바람이 다시 일어나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오후 2시가 되자, 진주성 야외공연장에서는 풍물소리가 가득하였다. 두 길 남짓한 솟대가 세워진 놀이판 바깥에서 풍물패 차림의 놀이패가 풍악을 울렸다. 태평소의 간드러지는 소리는 모처럼 피어난 햇살사이로 경쾌하게 내달리며, 누가 들어도 거나한 한 판이 벌어질 것 같은 잔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나는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 공연의 순서를 살폈다. 놀이는 전체 세 부분으로 진행될 것이었는데, 들머리판이 노래마당, 가온누리판이 재주넘기마당, 회두리판이 놀음놀이마당이었다. 


춤노래마당은 당산굿·길놀이·넋전춤이 차례로 진행되었다. 당산굿은 말하자면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에서 공연을 알리는 굿을 뜻했다. 당산굿이 길놀이로 이어지면서 놀이패가 일제히 놀이판 안으로 들어왔는데, 긴 나무다리를 탄 사람이 긴 나발(대취타)를 뿌우 뿌우 불며 앞장 서 들어와 놀이판 주변을 학의 걸음으로 한 바퀴 휘 돌았다. 뒤이어 모든 놀이패가 어울려 한바탕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는데, 눈에 띄는 것이 넋춤이었다. 넋전을 들고 춤을 추는 여인네는 두 사람이었고, 솟대쇠 한 사람이 두 손에 넋전을 들고 솟대줄을 걸어 솟대 위까지 올랐다가 반대쪽으로 걸어서 내려 왔다. 예상했던 사위보다는 훨씬 조촐하여 다소 실망스럽긴 하였다. 


넋전 만들기와 넋춤을 몸소 배워 봤던 나로서는 자신도 모르게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9월 13일 진주탈춤한마당 공연에서 넋춤을 한 마당으로 배치하였다가 좋은 평을 받지 못해 크게 줄인 것이었다고 한다. 넋춤을 이렇게 줄일 것이었다면 무동춤이라도 더 넣어 좀 더 다채롭게 꾸몄다면 어땠을까 하였고, 들머리판의 작은 세 마당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재주넘기마당은 전체 놀이의 핵심이 되는 본놀이 마당으로 몸재주, 재주넘기 위주로 짜여진 공연이었다. 솟대놀이를 큰 줄기로 삼아, 그 밖의 재주를 ‘사잇놀이’로 넣어 이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솟대타기1(중심잡기), 사잇놀이1(죽방울놀이), 솟대타기2(물구나무서기), 사잇놀이2(버나놀이), 솟대타기3(악기연주하기), 사잇놀이3(얼른), 솟대타기4(재담치기), 사잇놀이4(살판), 솟대타기5(쌍줄백이)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실제 공연에서는 순서가 좀 달라져 있었다. 실제 공연은 솟대타기1(중심잡기), 죽방울놀이, 버나 돌리기, 살판(두팔 걸음, 외팔걸음, 앞곤두, 뒷곤두), 풍물(설장구, 북춤, 상고 돌리기), 얼른(찢어진 부채 붙이기, 젖은 종이 날리기, 동전 꺼내기, 종이돈 만들기, 달걀부화하기), 매호씨 재담과 소리, 솟대놀이(솟대 오르기, 솟대에 매달리기, 솟대 위 중심잡기, 솟대위에 서서 장고치기, 쌍줄백이, 솟대 줄에서 물구나무서기) 순이었다. 차례가 이렇다보니 구경꾼들이 체험할 수 있는 땅줄 타기 같은 것이 들어갈 겨를이 없어졌다. 대신 마련된 풍물마당은 노는 시간이 다른 마당에 견주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12차 농악으로 기우는 듯한 인상마저 받게 되었다.

그러함에도 여섯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이만한 성과를 내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마루에서 갈고 닦아온 죽방울놀이나 버나 돌리기는 솜씨가 다소 서툴기는 했어도 보기에 좋았다. 솟대 타기는 누가 보더라도 놀라운 재주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들을 하였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다 짠해진다. 흔들리는 솟대 위에서 장구 치는 솜씨는 아찔한 쾌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쌍줄 백이는 세상에 나고 처음 보는 희한한 재주였다. 나는 손바닥이 뜨끈해질 때까지 힘껏 손뼉을 쳐 주었다.


끝으로 놀음놀이마당에서는 솟대쟁이놀이 가락의 정수를 모아 풍물 판굿을 벌였다. 일명 바래굿으로 놀이꾼들이 공연을 마무리하며 구경꾼들에게 인사한 뒤 펼치는 회두리판이었다. 구경꾼 여럿이 놀이판으로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마무리 판을 신명나게 놀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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