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민 Apr 19. 2021

되살아난 솟대패의 신바람

3. 놀이판 터를 닦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

11월 1일 아침, 서장대 아래에 차를 세우고 서문 버텅으로 올라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열 시부터 있을 학술발표회를 들을 참이었다. 학술발표회 자리에 들어서자 곧 솟대쟁이놀이 보존회장이 반갑게 맞이하는 말을 하였고, 이어 심우성 스승이 북돋우는 말을 하였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솟대쟁이놀이의 연행방식과 놀이전승의 양상’이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연구발표와 토론을 보고 들었다.


첫 번째 발표 주제는 ‘매호씨의 입담과 너름새의 바탕(남성진)’이었다. 매호씨는 ‘놀이판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더해주는 구실을 하는 사람으로, 몸의 언어인 너름새와 입의 언어인 입담을 내지르며 놀이꾼과 구경꾼을 이어주었다고 한다. 매호씨의 입담에는 말장난과 말꼬리 물고 가기, 과장을 부려 자기 과시하기, 거친 말법으로 놀리거나 모욕주기, 우스개와 비꼼으로 밝은 기운 자아내기 들이 있고, 매호씨의 너름새로는 우쭐거리며 뽐내고 잔재주 부리기, 흉내 내고 다툼 벌이기, 숨김없이 있는 대로 드러내기 들이 있다고 했다. 토론자(조정현)는 초라니와 매호씨의 관련성, 두 명의 매호씨가 맡은 구실, 매호씨와 창부씨의 관계 들을 들어가며 토론을 벌였다.


두 번째 발표 주제는 ‘솟대놀음의 변화와 공연미학에 관한 시론(한양명)’이었다. 연구자는 감로탱 28점과 기타 그림 5점을 면밀하게 살펴 본 후 솟대와 솟대쟁이놀이가 변해온 모습을 탐구하였는데, 솟대의 갈래는 솟대단독형에서 솟대-놀잇줄 연계형으로 변해왔으며, 그런 과정에서 기예는 줄고 공연 경향이 짙어졌다고 보았다. 또 쌍줄타기의 영향으로 쌍줄백이가 생긴 것으로 보아오던 선행 연구에 반박하여 줄의 기울기나 탄력성을 근거로 쌍줄백이가 쌍줄타기와 나란히 전승되어 온 것으로 보았다. 이밖에 놀음판의 운영원리와 공연 미학에 관한 발표가 이어졌다. 토론자(허용호)는 서툴러 보였던 9월 13일 공연이 좋았다고 보는 까닭, 솟대쟁이놀이 ‘병신굿’에서 탈을 쓰는지 쓰지 않는지, 솟대 줄의 기울기를 시간적 변천이 아니라 지역적 차이로 볼 수는 없는지 들을 토론거리로 내세웠다.


세 번째 발표 주제는 ‘죽방울놀이의 역사적 변화양상과 복원 가능성(정형호)’이었다. 먼저 죽방울놀이를 시대별로 살펴보았다. 그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주로 여러 개의 공을 공중에 던져 받는 놀이이며, 때에 따라 발이나 온몸을 쓰기도 했다. 한편 공 이외에 수레바퀴, 막대기, 쇠갈퀴 따위도 같이 사용하기도 하다가, 18세기에 이르러 죽방울로 공 던져 받기가 나타났다. 또 한 사람일 경우에는 양손에 쥔 죽방울로 공을 공중으로 쳐서 되는 모습이었으며, 두 사람일 경우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서 세 개정도의 공을 서로 주고받았다. 되살릴 모습으로는 농환 모습과 죽방울 모습으로 나누고, 죽방울은 다시 죽방울로 공 던져 받기와 줄로 죽방울 돌려 던져 받기를 제안했다. 토론자(한남수)는 죽방울놀이 되살기의 방안, 되살려야 할 죽방울의 모습, 죽방울놀이의 통일된 이름(죽방울 놀이, 죽방울 받기, 죽방울 던지기) 들을 가지고 토론을 벌였다.


끝으로 좌장(서연호)은 총평하는 자리에서 젊은 학자들의 패기와 열의를 칭찬하고 우리 공부를 바탕으로 외래 학문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힘껏 북돋워 주었다. 한편 솟대쟁이놀이가 한국을 대표하는 놀이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중국이나 일본의 놀이복원전문가를 불러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거나 놀이재주꾼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재주를 눈여겨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라고 충고하였고, 그렇게 하면 나라의 도움을 받기에도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나는 솟대쟁이놀이가 바뀌어온 모양새가 재미있었다. 오늘날로 올수록 솟대 위 놀이가 점차 줄어들고 솟대 밑 놀이가 늘어났다는 것에 마음이 쏠렸다. 왜 그래 바뀌어 왔을까? 솟대는 본래 거룩하고 신성한 곳, 소도에 세웠던 표식이었으니, 솟대 위를 서낭의 세계, 솟대 아래를 사람의 세계로 보면 어떨까?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서낭님을 떠받드는 사람의 믿음이 깊어서 주로 솟대 위에서 노는 재주를 좋아하고 또한 우러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세월이 갈수록 사람의 마음이 온갖 더러움에 물들어 마침내는 서낭님마저 밀쳐내기에 이르러 재주꾼의 신바람에도 풀이 죽어지고 죽음마저 두렵게 되면서 솟대는 더 낮아지고 솟대 위 재주도 점차 줄어들지는 않았을까?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볼품없는 상상만 잠시 파닥거리다가, 두어 시간 뒤에 구경할 솟대쟁이놀이 잔치 생각에 다시금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계속>  

                                           




















작가의 이전글 되살아난 솟대패의 신바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